UPDATED. 2024-03-28 20:10 (목)
책들의 풍경 : 한국을 사랑한 두 일본인에 관한 평전
책들의 풍경 : 한국을 사랑한 두 일본인에 관한 평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12.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美’ 부각시켜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다카사키 소지 지음 | 김순희 옮김 | 효형출판 刊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 나카미 마리 지음 | 김순희 옮김 | 효형출판 刊 ©

조선을 조선인보다 더 사랑했던 두 일본 미론가에 대한 평전이 나란히 번역·출간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답지 않게 조선을 흠모했던 이들은 조선의 美를 통해 조선을 인식한 아사카와 다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다.

야나기는 조선의 미를 ‘비애의 미’로 읽으며 이후 한국인들이 조선의 미를 읽는데 하나의 잣대를 제공했던 이고, 다쿠미는 조선시대 가구의 미나 조선의 소반 연구자로서 오늘날까지도 그만한 연구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정도로 둘 모두 조선인의 생활과 정신에 귀 기울였던 이들인데, 이들 일본인의 생이 다시금 일본인 저자들에 의해 풀어져 나옴으로써 두 평전은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거리를 더욱 좁혀 놓고 있다. 

우리에게 다쿠미는 야나기에 비해 덜 알려졌으며 심지어 “아사카와가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배웠다”라고 오해하는 이도 적지 않으나, 실은 다쿠미가 야나기에게 조선의 매력을 알려준 장본인이었으며, 인간적으로 야나기보다는 아사카와를 마음에 품었을 조선인들이 많을지 모른다. 다쿠미의 직업은 조선의 산림자본을 수탈했던 기관인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의 기수였다.

그러나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던 형 노리타카에 의해 다쿠미 역시 조선의 도자기에 빨려들게 된다. 그는 야나기와 더불어 조선민족관을 설립했고,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 등의 책을 쓰며 조선공예연구가로 활동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은 다쿠미의 공예수집과 연구에 관한 활동을 되짚고 평가하는데, 특히 그의 일대기적 삶 속에서 조선인, 그리고 조선에 애정을 보여줬던 일본인들에 비춰진 그의 ‘인간미’를 부각시킨다.

평전 속의 많은 부분은 ‘비애의 미’론을 펼쳤다던 야나기 무네요시와 겹쳐지거나 어긋나면서 진행된다. 다쿠미와 야나기가 조선에 대해 어떤 애틋한 마음을 함께 품었고 일본제국을 비판했는가를 펼쳐보이는가 하면, 둘의 미론과 식민지정책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랐는가를 보여주는 등 둘의 비교·대조가 평전쓰기의 준거가 될 정도다.

가령, ‘조선미의 발견’이라는 5장만 봐도 다쿠미의 저서와 연구를 되돌아봄에 있어 저자는 야나기의 평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른 한편 “다쿠미는 조선 민족이 융성할 때, 각 시대마다 전세계에 독보적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도자기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야나기는 도자기가 훌륭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의 역사를 ‘비참한 역사’의 연속이라고 파악하고 ‘비애의 미’ 이론을 전개했다”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야나기보다는 다쿠미의 시선이 조선을 바라봄에 있어 왜곡되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이 다쿠미의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에 초점을 뒀다면,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은 야나기의 커다란 사상을 총체적으로 짚어보고, 그 틀 내에서 야나기의 미론을 재평가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국제관계사상연구가로서 저자가 야나기를 17년 동안 연구해왔던 이유는 그의 평화사상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평전의 흐름은 야나기가 ‘약육강식’론과 대비되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보조’사상에서부터 모든 것을 긍정하는 휘트먼 사상, 블레이크 사상, 제임스의 다원적 우주론, 이질적인 종교를 받아들이는 신비사상, 나아가 불교적 不二觀을 어떻게 흡수하여 자신의 사상을 형성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야나기는 ‘복합의 미’라는 평화사상을 주창했다고 말하는데, 즉 “모든 지배·피지배 관계를 부정하는 넓은 의미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품었던 이로 야나기를 “미학적 아나키스트”로 위치 지운다.

따라서 야나기를 조선의 민예품을 보고 ‘비애의 미’를 강조한 미론가로 규정하기보다는 일본문화의 확립만큼 여타 아시아 민족들의 고유문화를 억압하지 않았던 가운데, 조선 미의 특징을 규정한 ‘복합의 미’론자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일본인이 조선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지녔다 하더라도 일본인이라는 존재현실 때문에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걸 배제할 순 없을 것이다. 야나기의 경우 조선문화의 독자성을 인정하며 일본의 對 조선정책에 비판적이었을진 몰라도 조선의 독립운동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런 야나기의 약점을 들춰내면서도 그러나 “모든 군사력 행사를 부정하는 야나기의 절대평화사상 때문”으로 받아들인다.

즉 야나기에게서 보이는 일부 약점은 바로 평화사상이 폭력을 쓸 수 없다는 약점으로 귀결되고 만다.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에 대해서도 비판의 끈을 놓을 순 없다. 1982년 일본에서 초판이 출간됐을 당시 조선사 연구가인 가지무라 히데키의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쓴 경험 끝에 탄생한 아사카와 다쿠미의 매력적인 삶에 의지하여 쉽게 일본인의 면죄부나 구원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어떤 이들은 이 책에서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숱한 일본인들 가운데서도 조선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다쿠미와 야나기가 지난 ‘반짝이는 정신’은 이 책들 내내 가장 눈을 끌어당기는 부분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