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30 00:00 (토)
리더의 조건, 성실한 사유와 인정의 용기
리더의 조건, 성실한 사유와 인정의 용기
  • 김희정
  • 승인 2022.05.05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⑨_김희정 충남대 초빙교수·자유전공학부
[사진]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사진=독일 레지스탕스 기념관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사진=독일 레지스탕스 기념관

구스타프 라드브루흐(1878-1949)는 독일의 법학자이며 정치가이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대학에서 교수로, 그리고 법무장관과 국회의원으로 일하며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위해 고민했다. 법학계에서 라드브루흐는 친숙한 인물인데, 바로 ‘라드브루흐의 공식’ 때문이다. ‘공식’이라는 말 때문에 수학 기호가 연상되지만, 다행히 수학 기호는 나오지 않으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에 절대적 우위는 없다. 둘째, 평소에는 법적 안정성이 상대적 우위를 갖는다. 셋째, 그러나 정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위반이 발생한다면 정의가 상위에 있다.

‘라드브루흐 공식’은 그가 1946년에 발표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Gesetzliches Unrecht und ubergesetzliches Recht)」이라는 논문의 내용을 프랑크 잘리거가 ‘라드브루흐 공식과 법치국가’라는 글로 정리하면서 ‘공식’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법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지만, 법이 정의에 중대하게 반하는 경우 그럴 수 없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가 있기 때문에 라드브루흐의 공식이 체계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위한 라드브루흐의 노력

사실 라드브루흐의 공식 그 자체보다는 이에 이르렀던 라드브루흐의 고민과 실천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가 법학자로 활동하던 시대인 1900년대 초반은 법실증주의가 마치 절대적인 이념이나 신앙처럼 대세를 이루고 있던 때이다. 법실증주의는 오직 법 자체에서만 근거를 찾고, 존재와 당위를 엄격히 구분한다. 아주 단순화하면 오류가 생기지만, 이해를 위해 부득이 단순화하자면, 법과 도덕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고, 법으로 한번 정해지면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법학은 사회적 산물인데 어떻게 그런 이론적 고집이 가능했는지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는 법의 자기학문성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 법이 아전인수로 해석되지 않으려면 여타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법실증주의는 법이 사회적 힘, 권력, 정치에 흔들리지 않게 작동되도록 하려는 중요한 노력이었다. 라드브루흐 역시 공정하고 차별 없는 법의 적용을 위해 그러한 입장을 신념처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참상을 겪은 후. 그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에서 “수십 년 동안 독일의 법률가들을 지배하였던 실증주의적 법사상”의 건설적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법률가들이 법실증주의라는 한계에 갇혀 법률이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정의’, 혹은 ‘옳은 것’을 추구하지 못했고, 결국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을 때조차 그 문제를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해 나치 정권의 기상천외한 법률을 가능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정의라고 생각했던 형식적인 평등이 아무 기준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용감하게 인정했고, 죽을 때까지 ‘참을 수 없이 부당한 법’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통해 다양해진 가치관과 세계관을 배우지만, 모순된 가치로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정의나 가치에 대한 인내 있는 사유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비난에 의식을 곤두세우며, 남을 찌르며 살아간다. 이런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할까?

독단과 야만에 무서움 없이 돌진하던 라드브루흐처럼, 우리의 리더는 이 혼란하고 아픈 세상에 무엇이 정의인지 인내심 있게 성찰을 하고, 무게 있는 결정과 용기 있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김희정 충남대 초빙교수·자유전공학부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반테러리즘과 자유, 안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연구 관심 분야는 안전, 정당, 정보인권, 구금인권, 선거, 교육권 등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위원으로 구금, 군인, 국제인권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