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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환경, 뇌만큼이나 인지에 영향을 준다면
몸과 환경, 뇌만큼이나 인지에 영향을 준다면
  • 김봉억
  • 승인 2022.05.0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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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⑦ 체화된 마음 이론과 신경법학

 

고등 인지 기능의 뇌신경학적 기반에 대한 연구는 인간 행위에 대한 종래의 철학적, 윤리적, 법적 논의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뇌과학의 철학적, 윤리적, 법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신경윤리학과 신경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형성되었다. 한편, 고등 인지 기능에 대한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의 기본 전제인 뇌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체화된 마음 이론(embodied mind theory, 이하 EMT)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체화된 마음 이론가 중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옹호자들은 마음이라는 내부 과정의 기능에 초점을 두어 마음이 인공물이나 제도와 같은 환경으로 확장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음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확장된 마음 이론의 전제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또한 확장된 마음에 대한 급진적 입장이 참이라면 고등 인지 기능에 관한 뇌신경학적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둔 신경법학의 많은 쟁점들이 논의 실익을 잃게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체화된 마음 연구’ 일곱 번째 연재에서는 ‘체화된 마음 이론과 신경법학’을 주제로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장대익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가 만나 확장된 마음 이론가들의 주장처럼 환경을 마음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EMT가 신경법학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강태경(이하 강):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은 고전적 인지주의나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으로 제안된 EMT와 신경법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EMT의 핵심 견해는, 인지가 당면 과제와 관련된 맥락에 상황 지워져(situated) 있고 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환경은 인지 작업을 분담하며 인지 체계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지 작업을 분담하는 환경이 인지 체계의 일부라면, 우리의 인지는 암산이나 기억 인출에서 나아가 계산할 때 쓰는 종이와 연필로, 전화번호를 검색하는 스마트폰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까요? 앤디 클락(A. Clark)과 데이비드 차머스(D. Chalmers) 같은 확장된 마음 이론가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이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떤 입장이신가요?

장대익(이하 장): 저는 두 가지 이유로 EMT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내부 과정과 외부 과정이 같은 종류의 인지 과정이라는 EMT의 ‘등가성 원리(parity principle)’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령, USB와 같은 외장 메모리와 인간의 기억을 비교해 봅시다. 외장 메모리의 상태 또는 과정이 인간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기억 과정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뇌와 외장 메모리의 구성 물질이 다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계산 과정이 일어나는 추상화 수준에서 공히 튜링 기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아닙니다. 외장 메모리와 인간의 기억 과정이 동일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기억 과정은 진화와 발생 과정의 산물로서 그 자체가 수많은 유관 정보들의 총합이지만, USB와 같은 외장 메모리에는 그런 식의 배경 정보들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둘의 기능이 유사하더라도 그 기능이 수행되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 몸, 그리고 환경이 결합된 체계(coupled system)로서 하나의 인지 체계를 형성한다는 주장인 ‘결합 논변’(coupling argument)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가령, 컴퓨터의 발열장치도 다른 요소들과 인과적으로 결합하여 있긴 하지만, 그것을 ‘계산하는 과정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즉, 인지과정에 외부 요소가 아무리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지를 구성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뇌는 인지를 구성한다고는 할 수 있죠. 이렇게 EMT 옹호자들은 인과적 결합(causal coupling)과 구성(constitution)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강: 저도 기능에 치중한 나머지 기억 인출과 스마트폰 검색, 즉 내부 과정과 외부 과정을 같은 종류의 과정으로 보는 등가성 원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스마트폰이 전화번호 검색에 필요하다고 해서 스마트폰 자체를 전화번호를 찾는 과정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합 논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등가성 원칙과 결합 논변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EMT 핵심 주장 전부가 문제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EMT의 급진적 버전과 온건한 버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앤서니 케메로(A. Chemero)의 입장처럼 급진적 EMT는 인지의 본질을 표상이 아니라 뇌, 몸, 환경이 불가분하게 결합한 역동적 체계라고 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온건한 EMT에는, 마음의 본질을 표상의 형성과 저장 그리고 이를 활용한 계산 과정으로 보면서도 그 표상의 원천을 감각-운동 정보에서 찾으려는 입장이 있습니다.

저는 온건한 EMT가 인지를 뇌 신경계에만 국한된 추상적 표상의 계산 과정으로만 보는 뇌 중심적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는 급진성은 없지만, 인지 과정에서 몸과 환경의 역할에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과 단절된 오프라인 인지도 몸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전제하는 인지언어학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감각-운동 경험으로부터 획득된 이미지 도식(image schemas)이 문법, 의미, 추론, 문제해결 등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다양한 경험적 방법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온건한 EMT가 뇌, 몸,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온건한 EMT를 진화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까요?

장: 저는 뇌가 몸과 환경의 영향 아래서 인지를 구성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합니다. 즉, 강 선생님이 말씀하신 온건한 EMT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환경도 인지에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제가 반대하는 것은 그것들이 뇌만큼이나 동등하게 영향을 주며 인지를 구성한다는 견해입니다.

이런 주장은 발생계 이론(developmental systems theory)을 떠올리게 합니다. 발생계 이론이란, 발생 과정에서 유전자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이기에 유전자를 다른 발생 자원과 구분하는 것은 여러 구분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은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테제이긴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과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존 메이너드 스미스(J. Maynard Smith)가 일갈했듯이, 발생 자원들 중 유전자만이 진화의 역사를 가진 정보 담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몸도 진화의 역사를 가진 정보 담지자이긴 하지만, 뇌에 비하면 감각과 운동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반면 환경에는 진화 역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지의 위계를 뇌, 몸 순으로 나누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이 점이야말로 온건한 EMT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진화적 관점입니다.

강: 이제 화제를 신경법학으로 돌려 볼까 합니다. 신경과학적 연구 성과를 법학에 접목함으로써 법제도와 법적 판단을 개선하려는 신경법학에서는 뇌 프라이버시(brain privacy), 뇌 강화 프로그램(brain enhancement), 자유의지에 관한 신경 결정론(neural determinism) 등이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어집니다. 뇌 프라이버시는 뇌 이미지 기술을 통해 반사회적 행동 등을 예측하려는 시도와 관련된 문제이고, 약물을 통해 뇌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정의의 문제와 인격의 문제를 낳고, 신경 결정론은 형사책임 인정과 관련된 쟁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EMT의 등가성 원리와 결합 논변이 참이라면 신경법학의 중요한 쟁점인 뇌 프라이버시 문제, 뇌 강화 프로그램 문제, 자유의지에 관한 신경 결정론 문제는 더 이상 논의의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장: 우선 뇌 프라이버시 문제부터 생각해보죠. 뇌에 대한 집착을 끊는 EMT의 관점에서 뇌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뇌는 인지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몸, 그리고 환경과 어떻게 결합하여 있는지가 알려지지 않은 이상은 아무리 뇌영상 정보나 뉴런 정보가 노출되어도 정체성의 해킹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분산되어 있어서 뇌에만 정보적 특권을 줄 수도 없지요.

EMT는 뇌 강화 프로그램에 대한 윤리적 쟁점에도 함의가 있습니다. 현재 뇌 중심적 패러다임 내에서는, 정신약물들을 통해 수면, 식욕, 성욕 같은 자율신경 기능이나 기분을 조절하고. 주의력 결핍 같은 인지 장애를 치료하거나 인지 기능을 강화시키는 행위가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령, 뇌 강화 프로그램이 일반화된다면 뇌를 향상시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차별 문제나 약물로 인지 장애나 정서 장애를 치료한 사람의 성과물이나 사람됨(personhood)을 평가하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EMT는 이런 쟁점에 대해서도 전제 자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즉, 약물을 써서 뇌를 향상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마음의 향상, 사람됨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EMT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에 대해서도 함의를 갖습니다. 우선, 자유의지에 관한 토론에서 더 이상 ‘신경 결정론’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뇌, 몸, 환경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EMT는 신경생리학적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결정된다는 신경 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 인지 체계 내에서 뇌가 몸과 환경에 비해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신경윤리학이나 신경법학의 주요 쟁점을 치열하게 논의할 이점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등가성 원리와 결합 논변을 받아들이지 않는 온건한 EMT는 신경법학에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을까요?

뇌 이미지 분석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미래에 충동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X가 심각한 폭력 범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죠. 뇌 이미지 분석 결과, X는 심각한 폭력 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인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법원은 X의 상태를 고려하여 징역형 대신 충동성 자체를 낮추는 약물 치료를 명령한 경우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충동 조절 기술을 훈련하는 인지행동치료를 명령한 경우를 비교해 보죠.

전자의 경우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피해야 할 상황’이 덜 발생하게 만드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몸에 기반을 둔 오프라인 인지 과정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자와 같은 EMT 접근이 X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닐까요? 

장: 기존의 신경과학과 신경윤리학은 마음에 개입하는 전통적 방법들, 가령, 환경(몸, 사회, 문화적인 환경)을 변화시키는 등의 방법들을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온건한 EMT는 이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이론 틀을 제공합니다. 우울증 사례가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신경과학이 우울증의 원인을 세로토닌 신경계의 기능 장애로 규정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대개 항우울제인 프로작(Prozac)이나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같은 신경 약물을 우울증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방식으로 치료합니다.

하지만 온건한 EMT가 참이라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마음의 질병들은 뇌 장애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뇌만큼은 아니지만, 몸과 환경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온건한 EMT는 정신 건강을 위한 개입 면에서도 다양성을 줍니다.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에서 심리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법학 석사과정을 거쳐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서울대 철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법적 사고의 개념적 은유 구조를 분석해 왔고, 최근 법이론과 경험과학의 통합 시도인 실험법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실험법학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증 연구를 직접 수행하기 위해 서울대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 『몸과 인지』(2015, 공저), 『법의 딜레마』(2020, 공저), 『법의 은유 구조』등이 있다. 제1회 한국법철학회 신진학자 논문상을 받았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생물철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했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에서는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했고, 미국 터프츠대 인지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진화이론뿐만 아니라 기술의 진화심리와 사회성의 진화에 대해 연구해 왔다. 저서로 『다윈의 식탁』(2015), 『다윈의 서재』(2015), 『다윈의 정원』(2017), 『울트라 소셜』(2017) 등이 있고, 역서로는 『종의 기원』(2018) 등이 있다. 제11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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