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20 (금)
'대학 자율화' 갑론을박…‘법인’ 그림자 지우지 못해
'대학 자율화' 갑론을박…‘법인’ 그림자 지우지 못해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7-11 09:48:29
 
사립학교법 개정논란, 국립대학발전계획 추진, 지방대학 운영여건 악화, 교수 계약·연봉제 실시 등 대학가의 지형을 변화시킬만한 굵직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의 대학총장들이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3일 동안 제주도에서 머리를 맞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이기준 서울대 총장)가 마련한 ‘2001 하계 대학총장세미나 및 임시총회’의 공식적인 주제는 ‘국가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정부·기업·대학의 역할’. 그러나 국립대와 사립대 별로 당면한 사안들이 달라 본 행사보다는 대학별 분과토론시간에 보다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고, 간간이 고성도 오고 갔다. 또한 총장들은 공식행사 틈틈이 생기는 짬 시간에 행사장 주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학의 소식을 나누고, 쟁점사안들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그러나 임시총회까지 가면서도 대교협 차원에서 성명서나 결의서를 채택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총장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은 대학들이 저마다 처한 입장이 첨예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총장들이 가장 관심을 보였던 부분은 대학재정의 확대와 자율화. 그러나 대학자율화의 방향만큼은 교수사회와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2박3일 동안 제주도 현지에서 총장들의 논의를 엿보았다.

국립대 총장, ‘발전계획’일단 동의

국립대 총장들은 “‘국립대학발전계획’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대학별로 세부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은 꺼려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해서는 발전계획을 추진하면서 내부구성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요구했고,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 부총리도 ‘총장과의 대화’에서 “발전계획이 너무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이를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립대 총장들은 한 부총리가 2002년 시행을 앞둔 교수 계약제·연봉제의 구체적인 시행지침을 밝혀 커다란 짐을 덜었다는 표정이었다.

사립대 총장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민주당이 상정한 사립학교법 개정안. 일부 대학의 총장들이 법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대세는 ‘반대’로 모아졌다.

사립대 총장분과에서 주제발표를 한 윤형섭 호남대 총장은 “사립대학의 자율화는 정치·경제·시민 권력 등 외부로부터의 자율화와 법인, 노조, 학생집단 등 내부구성원들로부터의 자율화”라고 전제하고 특히 외부로부터의 간섭뿐만 아니라 “학내 제 집단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대학당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대 교수, 사학법인 이사장, 교육부 장관까지 거친 윤 총장은 자율화의 주체로 대학당국과 교수단을, 이를 위협하는 집단은 법인, 노조, 학생집단으로 규정됐다.

“교수가 운영에 참여하면 대학이 혼란스러워 진다”

그러나 윤 총장의 발표이후 사립대 총장들은 기자들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1시간 동안 분임 토론을 가진 뒤 대학의 자율을 침해하는 집단에서 ‘법인’을 슬그머니 빼버렸다. 반면에 ‘교수’들은 자율화의 주체에서 자율화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포함시켰다.

“교수가 운영에 참여하면 대학이 혼란스러워 진다”는 것이 그 이유. 일부 총장들이 “법인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사립대학 총장들은 9월 정기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 총장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소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0일 일간지에 사립대학총장협의회 총장일동으로 발표된 ‘사립학교법 개정안 반대 성명서’의 광고료는 대학별로 학생 수에 따라 분담하기로 했다.

‘그림의 떡’, 기여입학제

국·공립대학총장분과에서 논의된 정보통신대학원 대학의 학부과정 신설과 관련해서는 국·사립대 총장 모두 반대 입장으로 정리했다. 특히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대전·충남지역 대학의 총장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논의결과 총장들은 “인력양성 통합정책, 대학원 대학 당초의 설립취지 등에 위배되며, 2003년부터 고교졸업학생수의 감소 추세 등을 감안하면 학부과정 신설보다 기존 학과의 개폐 및 대학의 관련학과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반대의 뜻을 모았다.

한편 사립대 총장들은 연세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여우대입학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예년의 경우를 고려해 볼 때 대교협 차원에서 기여입학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절대적인 학생수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기여우대입학제를 도입할 경우 대학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대학간 격차를 넓힐 수밖에 없다는 우려 속에 공식적인 의제로는 채택하지 않았다.

이밖에 총장들은 대교협 차원에서 △졸업인증제 도입 △국제인턴쉽프로그램 운영 △국제교류위원회 구성 등을 결의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현장인터뷰 : 사립학교법개정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개정되면 대학이 황폐해 집니다"

● 반대 : 장상 이화여대 총장(사진왼쪽)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반대입장을 당론으로 정하기 이틀 전 “민주당의 개정안이 교육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발표해 개정논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이번 하계 대학 총장 세미나에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법인의 전권 하에 놓여있는 대학들보다는 비교적 역사가 있고, 재단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학사운영권을 보장받고 있는 대학의 총장들이 법개정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
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회장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분과토의에서 사회를 맡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낸 장 상 이화여대 총장(사진)은 개정안 반대가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 “법개정에 대해 자체 개정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위원회를 꾸려 의견표출을 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 반대 이유에 대해 장 총장은 “개정안에 따르면 교원 임면권을 총장에게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사립대 총장들도 현재 대학에서 법인의 비리는 극히 일부이고, 오히려 교수 등 구성원이 학사운영에 참여함으로써 혼란에 빠질 것이기에 소유와 운영의 분리보다는 운영과 구성원의 참여를 분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이러한 논리로 총장들은 개정안에 사립학교법의 목적 가운데 ‘민주적 학교운영’이라고 표현한 것 마저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대 총장들은 법이 개정돼야 한다면 “사립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육성책이 포함된 내용으로 수정보완 돼야 한다”며, 사학법인과 관련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

“민주화·자율화 위해 꼭 필요합니다”

● 찬성 : 윤덕홍 대구대 총장

사립대학총장협의회 총장일동으로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성명서가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하계총장세미나에서 법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총장들도 있었다. 법인의 비리로 극심한 분규 끝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이후 대학이 정상화되고, 발전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윤덕홍 대구대 총장(사진)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윤 총장은 “어느 정도 역사와 규모가 있는 대학은 예외일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현재 대학은 법의 사각지대이다. 아직도 신임교수 임용에서 1~2억원씩 돈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가의 비리가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윤 총장 이외에도 재단비리로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의 총장들과 직선으로 선출된 총장들은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화를 위해 사립학교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윤 총장은 “민주당안의 일부조항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지적해야지 왜 전체를 반대하냐”며 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발표한 성명서에도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사립대 총장들이 모인 토론회에서 윤 총장과 같이 법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은 소수에 그쳤다. 일정에 잡히지 않았던 시간을 따로 할애해 토론한 끝에 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법개정에 반대한다는 공식입장을 택했다. 윤 총장은 “반대하는 총장들의 의지가 의외로 강경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동의하지도 않는 성명서의 광고료를 대학별로 학생수에 따라 나눠 지급하기로 한 결정에 “단체에서 결정한 사항을 거부할 수 는 없지 않느냐”고 답변한 윤 총장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