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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서양학과 번역의 중요성
학이사: 서양학과 번역의 중요성
  • 송기형 건국대
  • 승인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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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형/건국대·프랑스문화

필자는 전생의 인연 덕분인지 몰라도 1985년부터 간송미술관에 출입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전공하는 필자가 한국 역사와 미술 연구의 한 중심에 출입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 간송미술관과 그 연구진은 필자의 공부는 물론이고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다만 그 귀중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공부와 삶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잘못이다.

간송미술관에서 필자가 배운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해 본다면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문학은 다른 무엇보다 문사철(文史哲)을 아울러야 한다. 엉뚱하지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겠다. 프랑스 사회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서 프랑스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인문학계에서 ‘비정상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캉이나 들뢰즈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서양학은 이제 겨우 60년을 넘었을 뿐이다. 서양의 문사철을 아우를 수 있는 연구자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시급히 서양학의 위상을 점검하고 적합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간송미술관에서 배운 또 하나는 임모(臨摹)의 중요성이다. 임모는 걸작 그림이나 글씨를 베끼고 또 베끼면서 자신의 실력을 쌓는 과정을 가리킨다. 임모는 혹독하기 짝이 없는 훈련이다. 똑같은 그림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베끼면서 방불(彷佛)의 수준에 올라선 연후에야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옛것을 공부해서 새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의 법고창신(法故創新)이 바로 그렇다. 임모나 법고창신의 중요성은 서양 사람들도 알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전범으로 삼았고, 루브르 박물관의 원래 용도는 미술가들이 선배들의 걸작을 베끼는 작업실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서양학은 서양의 문학, 사학, 철학 분야의 고전을 성실하게 번역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문을 전공하는 사람이 공자나 맹자의 말씀을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프랑스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서 먹고 사는 필자가 읽은 프랑스 고전이 몇 권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식은땀이 흐른다. 날림과 엉터리 수준을 넘어서 사기에 가까운 번역과 논문들이 득실거리는 현실을 새삼 들먹이지는 않겠다. 번역의 중요성은 모든 학문에 공통적이지만, 특히 서양학에서는 성실한 번역을 장려하는 제도와 지원이 절실하다.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보겠다. 첫째, 석·박사과정에서 고전 주해와 번역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한다. 프랑스어로 쓰인 명작을 번역하고 주해하는 작업만큼 프랑스의 문사철을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은 드물 것이다. 둘째, 학술번역서 1권을 SCI급 논문 1편으로 쳐준다. 학내외의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심사자와 본인 이외에는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 논문을 양산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와 보람이 있는 일이다. 셋째, 학술번역을 인문학 연구비 지원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학술번역연구비를 획기적으로 늘린다. 이런 관점에서 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학술명저번역 지원 같은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말 더 늦기 전에 서양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번역작업에 대한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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