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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수들 “나태했다” 자성의 목소리… “교수, 학생의 ‘스승’ 아닌 ‘동반자’”
정교수들 “나태했다” 자성의 목소리… “교수, 학생의 ‘스승’ 아닌 ‘동반자’”
  • 윤정민
  • 승인 2022.04.20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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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집 설문조사
교수 517명이 말하는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

교수 517명 중 227명(43.9%)은 이번 <교수신문> 설문조사에서 ‘대학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제대로 양성하고 있다’라고 답한 교수(70명, 13.5%)보다 약 3배 더 많은 수치다.

대학이 사회 수요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점은 교육정책과 인프라 문제도 있지만,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수의 책임도 크다. 교수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이번 설문 중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 문항에는 교수의 역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이들의 의견에는 사회 변화에 맞게 기존 전공의 벽을 허문 융복합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융복합 교육 강화의 필요성은 ‘미래 사회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이 강화해야 할 교육’ 문항에서도 드러났다. 응답자 중 74.5%가 융복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사립 일반대 자연계열 A 정교수는 “이웃 학문도 공부해야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감당할 수 있다”라며 “공부를 폭넓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답했다. 충북 국공립 일반대 공학계열 B 정교수도 “연구년, 안식년이 아니라 타 학문을 공식적으로 익힐 수 있는 ‘교수 재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융복합 교육 활성화를 위해 교수 임용 시 최소 2가지 이상의 전공 학위를 채용 조건으로 달아야 한다는 교수도 있었다.

교수법 혁신도 많이 언급됐다. 광주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C 정교수는 “교수법 혹은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었다”라며 “교육자로서의 역할과 교육기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안이한 교수사회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대부분 정년 보장을 받은 정교수나 명예교수들의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D 정교수는 본인마저 정교수가 된 뒤에 안이해졌다고 반성했다. 충남 사립 일반대 의약학계열 E 정교수는 정교수들의 나태함에 대해 5년 주기로 교수 역할에 대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에게 자리 내주면 혁신 가능성 커질 것”

조기 퇴직 장려를 주장하는 교수도 있었다. 대전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F 명예교수(62)는 미래 변화 흐름에 맞도록,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교수 정년을 60세 이하로 낮추거나 한 전공에 교수가 20년 이상 자리를 지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G 정교수(63)도 “60세 이상 교수에게 조기 퇴직의 길을 열어 열정 있는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면 혁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의 권위를 내려놓거나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하라는 조언도 나왔다. 경남 국공립 일반대 사회계열 H 정교수는 대학교수로서의 책임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가, 정치인, 행정가 등 교수직 외의 다른 직업 활동을 위해 교수직을 단순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전북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I 정교수도 교수들이 기득권과 권위 의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빌미로 삼아 본인의 밥벌이와 명예를 충족하는 수단이 아님을 인식하고 본분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소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낸 만큼 교육의 기회를 정당하고 공정하게 제공할 생각이 없으면 교수를 그만두고 연구원으로 지내야 한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 사립 일반대 공학계열 J 부교수도 학생 성장과 관련해 교수의 위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의 교수는 예전처럼 존경받는 스승보다는 학생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동반자”라며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많은 것들을 찾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관심에 기반한 교수 혁신 필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얼어붙은 취업문은 청년들에게 ‘대학 학위가 꼭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 분석」에 따르면, 1999년생 청년 8천179명이 평가한 일반대와 전문대 학위 가치는 각각 4.18점, 2.97점(6점 만점)이었다. 청년 중 81.7%는 현재 일반대 학위 가치를 ‘높다(매우 높다, 높다, 약간 높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10년 뒤의 이 학위 가치가 현재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4.8%로, 높아질 것이라고 답한 청년(16.7%)보다 많았다.

결국, ‘대학 무용론’을 종식하려면 대학은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을 혁신해 학위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번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대전환 시대에 대학이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종합해보면, 크게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 △규제 완화를 통한 창조적인 대학교육 혁신 △교수의 자성과 꾸준한 자기 계발로 정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학을 국가경쟁력의 산실로서 바라보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전북 사립 전문대 자연계열 K 정교수의 의견에도 이를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교수는 “전문대는 대부분 환경이 열악해 교수진이 새로운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 하려 해도 부족한 교원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지 못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능인력을 배출해 산업현장을 견인하기 위한 전문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교수들의 혁신과 함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의 소중한 의견을 모두 기사에 싣지 못했습니다. 기사에 소개하지 못한 교수들의 다양한 자성의 목소리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교수 스스로 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

“전공을 뛰어넘어 타 학문과 분야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폭넓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정교수(60대)“다양한 학문과 융복합을 위한 재교육 및 권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서울 국공립 일반대 인문계열 정교수(50대)“학과 체제의 사고에서 벗어난, 융합과 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정교수(50대)“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산학연 교육, 단과대학, 학과의 벽을 허물고 융복합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공학계열 정교수

“교수는 과거의 지식에서 새로운 선진지식을 습득해야 함이 필수적이나, 특히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전문대학은 대부분 환경이 열악해 교수진이 새로운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려 해도 부족한 교원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지 못하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고, 결국 경쟁력이 약화했습니다. 기능인력을 배출해 산업현장을 견인하기 위한 전문대 본래의 목적 달성이라는 국가적 사명이 이루어지지 않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교수 개개인의 혁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전문대학 교수의 기능적 지식의 혁신을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북 사립 전문대 자연계열 정교수(60대)“사회는 변화하는 듯하면서 변화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듯 보여도 변화해갑니다. 이 변화 속에서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와 관련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성찰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입니다. 열정과 호기심은 청년의 덕목입니다. 교수가 연구자로서, 또 교육자로서 이 청년의 덕목을 유지하고 키우고 있다면 혁신해야 할 과제 운운할 필요 없이 혁신을 실천하고 있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수에게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가 제시되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않을까요. 반대로 마음이 청년인 사람은 과제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 혁신하고 있지 않을까요.”
-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명예교수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들의 고등사고능력(창의적 사고 포함)과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교수법 개선을 위한 노력과 변화하는 시대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광주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부교수

“포스트코로나 이후 대학교육도 많은 변화가 올 것이기 때문에, 우선 수업 방법의 다양화(플립러닝 등)를 위해 스스로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잘 가르키는 교수라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대학의 학생 수준을 수도권 일류대학 학생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기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교육하고 창의적인 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혁신이라 생각합니다.”
- 경남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정교수

“테뉴어 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의약학계열 명예교수

“정교수도 주기적으로 평가해 역량 부족시 탈락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경기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정교수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에서 진실을 강의하는 것이 교수의 덕목이라고 배웠습니다. 대학의 미래를 위해 ‘혁신’이란 단어는 부적합합니다. 대학의 미래를 위해 ‘교수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더 어울리는 질문입니다. 대학은 청년들의 꿈과 비전 그리고 희망을 마음껏 발휘하고 품을 수 있는 교육 공동체여야 합니다. 대학 교육의 핵심은 동료와 경쟁이 아닌 협동, 단결, 배려, 희생 등을 느끼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인 젊은 청년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이루어 갈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국가 정책이 중심이 되길 바랍니다.”
- 경남 국공립 대학원대학 예체능계열 부교수

“교수사회 역시 대학 조직의 주요 형태라는 점에서 교수 각자가 조직에 대한 인식을 갖고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이나, 리더십의 적절한 운용 등을 통한 조직 효율성이 증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체로 교수사회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 등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바로 이러한 교수사회의 조직적 혁신이라는 점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정교수

“자기 전공을 자기 독점 영역으로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 인식을 타파해야 합니다.”
- 경기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정교수

“전공과 관련하여 다양한 분야의 현장 체험을 통한 체득이 필요합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명예교수

“자신만의 입신양명 더 이상 하지 마세요. 학교는 학생들의 것임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셔요.”
- 인천 사립 전문대 사회계열 정교수

“교수는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교수가 너무 많습니다. 본인도 박사 과정 시절에 지도교수의 무능 때문에 절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교수는 학생의 입장에서 정말 큰 재앙입니다.”
- 부산 사립 대학원대학 예체능계열 명예교수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정교수

“인터넷으로 지식이 공유되는 시대로 교육의 기능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한국 사회, 글로벌 사회의 모순과 그 해법을 찾는 연구가 중요합니다. 대학교수와 대학이 사회 문제의 해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교수들이 노동자의 권한만 찾고 대학이 정부 지원만 바라고 있는데, 그동안 혜택과 지원을 받으면서 사회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자문해 볼 때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교수의 권위가 실추되고 대학의 위기가 초래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 서울 국공립 일반대 융복합계열 부교수

“교수는 연구자이기 전에 사회적·국가적 소명 의식이 전제된 교육자입니다. 보편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연구 업적을 내세워 대학 내에서 자기중심적 권력을 휘두르는 교수들이 들끓어 걱정입니다.”
- 대전 국공립 일반대 사회계열 명예교수

“외부 기준에 맞춘 연구실적 산출을 스스로 지양하고, 스스로 재미있는 분야에 관해 자유로운 연구를 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교수업적평가체제 개선과 함께 진행돼야 하겠지요.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대학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데도 힘써야 합니다.”
- 충남 사립 대학원대학 융복합계열 정교수

“교수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과제를 지녔습니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책임감 있는 지식인으로서, 삶의 풍부한 경험자이자 선배로서의 역할을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현 사회는 교수로부터 직업인 산출이라는 소명을 내리고 다그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라는 명목하에 실은 기능인으로서만 길러지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모범상’을 통한 배움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래의 대학이 먹거리를 해결해줄 직업교육의 장소가 돼서는 안 되며,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사유하고 통찰하고 생산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 자기의 잠재성을 깨닫고 양성하는 능력, 삶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력도 함께 배양시켜야 합니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정교수


① [교수들이 말하는 ‘대학의 미래’] ‘학생 성장’이 우선이다

[교수들이 뽑은 혁신대학·차기 정부 고등교육 과제] 미네르바 스쿨보다 ‘평생교육’을 혁신모델로 꼽아

③ [교수들이 뽑은 향후 10년간 지배할 한국 사회 키워드] 저출산고령화·사회통합·4차산업혁명의 시대

[교수들이 뽑은 대통령의 덕목]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 ‘공정성·소통·정직·통찰력’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의 미래’] “나는 교육자, 시대에 뒤쳐졌다”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 정체성’] 교수 52.8% “교수 미래 어두워”…조교수는 ‘신분 불안’ 이직 고민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 정교수들 “나태했다” 자성의 목소리··· “교수, 학생의 ‘스승’ 아닌 ‘동반자’”

[‘교수 정체성’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_서혁 이화여대 교수] 흔들리는 ‘교수 정체성’과 대학의 위기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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