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6:30 (금)
인사를 받지 않고 외면하는 교수들
인사를 받지 않고 외면하는 교수들
  • 김병희
  • 승인 2022.04.19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모든 교수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교수들은 인사에 응하는 방식을 오해하는 듯하다. 교수들은 강의하러 오가며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다른 교수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게 보통이다. 전공 분야의 학술대회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하며 건네는 한 마디는 반가움의 표시일 수 있고, 별일 없이 잘 지내느냐는 안부의 성격을 띠기도 하고, 수고하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스쳐가기 뭐해 의례적으로 건네는 형식적인 말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인사를 건네면 잠깐 말을 나누거나 가벼운 목례를 하며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응대법이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 않은 교수끼리 딱 마주치면 무척 해괴한 국면이 전개된다.

첫 인사나 작별의 멘트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우정의 신성한 본질을 나타내거나 사람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례로 해석한다. 가장 가벼운 형태의 의례인 눈짓에 따라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조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의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Goffman)은 얼핏 보면 별다른 뜻이 없어 보이는 눈짓 하나가 고도로 정제된 의미를 전달하고, 대화 참여자의 사이에 같은 의미를 공유하도록 하는 상호작용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교수들이 눈짓 인사를 주고받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상호작용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미세한 계산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은 평소에는 인사를 잘도 주고받다가도 자신과 말다툼을 했거나 어떤 사안에 의견 차이가 났다면, 그때부터 인사를 해도 못 본체 하며 상대방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도 그렇고 학회에서도 그렇다.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교수 집단이 둘로 나뉘면 상대편의 인사를 싸늘하게 외면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물론 있다. 이때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은 앞장서서 어떤 주장을 하거나 그에 대한 반대 주장을 해서 선봉에 선 사람들은 오히려 더 너그럽다.

그런데 중간 지대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며 숨어있던 사람들이 전세(戰勢)의 유불리에 따라 평소 가까이 지내던 교수들을 더 냉대한다는 점이다. 해당 쟁점에 대해 반대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고, 자신의 속내를 공론장에서 단 한 번도 표출하지 않고서도, 전세가 유리해보이면 선봉에 섰던 사람들보다 더 설치기도 한다.

우리가 별 뜻 없이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몸짓들조차 실제로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눈인사 같은 의례적 태도도 마찬가지인데, 비록 의례적이라 할지라도 그런 태도는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의 접착제’ 기능을 발휘한다. 이런 맥락에서 고프먼은 일상생활에서 상호존중과 바른 처신을 실천할 때 사회의 접착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으리라.

어떤 경우이든 간에 상대방의 인사를 받지 않고 외면하는 행위는 상호존중과 바른 처신에서 벗어나는 태도다. 싸늘한 시선으로 외면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런 태도는 그릇 크기가 그만큼 작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 사회를 지성의 광장이라고 하지만 전혀 지성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입만 열면 학생들에게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토론은 하지 않고 오로지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피아의 구분만 가지고 인사를 받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는 현실이다. 오히려 기업에 근무하는 분들이 토론문화에 더 능한 경우도 많이 보았다.

어디까지나 인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그것을 관계 종결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인사를 받으면 좋은 관계요, 인사를 받지 않으면 너하고는 놀지 않겠다는 나쁜 관계임을 암시할진대,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지성이 어떻고 아카데미가 어떻고 하며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인사를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 아닌 종결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의사소통의 여지가 더 이상은 없다.

모든 교수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교수들이 인사의 의미를 커뮤니케이션의 종결로 생각하고 있어 안타깝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교수들이 그 옹졸한 태도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