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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쟁
정치 전쟁
  • 최승우
  • 승인 2022.04.1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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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348쪽

2022년 대선은 ‘정치 전쟁’이었다
“정치는 왜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전쟁이 되었을까?”

2022년 대선은 끝났다. 이 전쟁을 치렀던 양 진영은 ‘저들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쳐댔다. 상대편을 원수처럼 여기는 비난과 마타도어도 난무했다. 이들은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오직 반대편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선거는 편 가르기에 근거한 진영 전쟁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늘 열정이 들끓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선 이후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더욱 극심해질 거라는 것이다. 정치를 전쟁으로 만드는 것은 승자 독식이다. 그래서 대선은 열정의 수준을 넘어 목숨을 건 전쟁이 되고 만다. 그러나 승자 독식은 이성과 소통과 타협을 가로막는다.

2022년 대선은 진보의 자해극이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원초적 비극은 팬덤 정치에 의한 ‘편 가르기 부족 정치’에 있었다. 팬덤의, 팬덤에 의한, 팬덤을 위한 국정 운영을 하면서 두 개로 쪼개진 나라를 만들었다.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권의 DNA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심했다. 자신들을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무오류의 존재로 여기면서 대화와 토론을 거부하는 독선과 오만을 범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권은 촛불 민심을 전유하거나 횡령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고, 정권 재창출도 실패했다.

강준만은 『정치 전쟁』에서 2022년 대선이 왜 ‘정치 전쟁’이 되었는지 비판한다. 오늘날 정치가 ‘무혈의 전쟁’이라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벌어졌고, 가족 내에서도 벌어졌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을 포함한 진보 진영 전체가 신앙으로 정치를 대했고, 정치적 삶을 꾸려온 것은 아닐까?

강준만은 그런 신앙으로 인해 빚어진 2022년 대선은 ‘진보의 자해극’이 누적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자행 경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정치적 신앙이 없거나 비교적 약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권자들이 오늘의 관점에서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을 벌하는 ‘응징 투표’가 한국 정치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의 『정치 전쟁』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슈를 다룬다. 제1장은 윤석열의 과제다.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은 ‘충성 경쟁’을 물리치고, ‘윤석열판 내로남불’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2장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상처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치를 ‘이권 투쟁’으로 만든 ‘캠프 정치’와 ‘아무 말’ 대선 공약이 난무했다.

제3장은 ‘정치 교체’는 가능한지 묻는다. 하지만 정치를 전쟁으로 만드는 ‘승자 독식’ 체제를 깨부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요원하다. 제4장은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의 ‘만불독침’에 대해 비판한다. ‘팬덤의 CEO’이자 ‘SNS 대통령’인 이재명의 ‘안면몰수’ 화법은 온당한가? 그리고 이재명은 과연 ‘진짜 실용주의자’인가?

제5장은 문재인 미스터리다. 한국 정치사에서 레임덕 없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10가지 비밀을 파헤친다. 제6장은 정치는 끝없는 타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에는 타협을 불온시하는 교조주의자가 진보 쪽에 많다. 제7장은 책임은 권력의 기능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권은 ‘최선’을 빙자해 ‘최악’의 길을 열어젖혔다. 특히 무주택자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던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상처

흐루쇼프는 “정치인은 어느 나라에서건 똑같다. 그들은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2022년 대선에서도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드리겠다고 경쟁했다. 급기야는 ‘공약 베끼기, 물 타기, 숫자 지르기’ 등 낯 뜨거울 정도로 ‘아무 말’ 공약이 난무했다. 선거판이 도박판을 닮아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이 벌어졌다.

더구나 2020년 4ㆍ15 총선의 학습효과도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19 긴급 재난지원금 덕분이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 재정 문제와 같은 국가적 중대사에는 양당 두 후보 모두 굳게 침묵했다.

‘캠프 정치’는 정치를 ‘이권 투쟁’으로 만든다. 캠프는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당면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 조직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면 ‘닥치고 승리’ 이외의 다른 사고 능력이 사라지거나 유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죽했으면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이 “캠프라는 곳은 이른바 폴리페서, 자리 사냥꾼, 정치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그것을 선거운동이라고 착각하는, 그리하여 정권이 바뀌면 한자리 꿰차려는 욕망에 들뜬 사람들의 임시 정류장과 같은 곳이다”라고 했겠는가? 또 2011년 6월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한 정치 개혁 관련 세미나에서 ‘캠프 민주주의 타파’를 주장하기도 했다.

캠프 정치의 핵심은 ‘세(勢)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자기 캠프로 더 많은, 더 나은 실력이나 스토리를 가진 인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 시즌만 되었다 하면 ‘인재 영입 쇼’가 벌어진다. 그러나 캠프 정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캠프 정치는 국정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둘째, 캠프 정치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의 정치’를 불러온다. 셋째, 캠프 정치는 집권 후 논공행상에 따라 자리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전리품 정치’를 정치의 기본 모델이 되게 만든다. 특히 ‘전리품 정치’는 정치 지망생들마저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 불신과 혐오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긍정적 개념으로 대접받아야 할 ‘정치 참여’가 전리품에 눈독을 들이는 ‘이권 투쟁’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문재인의 임기 말 높은 지지율의 10가지 비밀

문재인의 취임 초기 지지율은 한동안 80퍼센트대 중반까지 치솟을 정도로 높았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며 지지를 보낸 국민이 80퍼센트를 넘었다. 이런 높은 지지율이 취임 100일까지 이어지자 문재인 지지자들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외쳐댔다. 문재인의 임기 말 지지율도 수개월째 40퍼센트대로 전례 없이 높았다. 그래서 ‘문재인은 레임덕 없는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말과 함께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문재인은 ‘집토끼’를 확실하게 지키는 ‘편 가르기 정치’를 했다. 문재인의 대통령 취임사를 읽어보면 한 편의 개그 원고를 방불케 한다. 문재인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문재인이 한 일은 일관되게 분열과 갈등을 키움으로써 ‘두 개로 쪼개진 나라’를 만든 것이었다. 반면 집토끼 지지율만큼은 임기 말까지 지켜내는 업적을 이루는 데에 기여했다.
둘째, 강력한 팬덤과 노무현 학습효과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우파와 그 언론은 물론 ‘좌파’로부터도 협공을 당하여 실패하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인식”(성균관대학교 교수 천정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문재인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수용하거나 용납하지 않았다. 또 문재인은 노무현의 원혼을 달래줄 역사적 사명을 띠고 대통령에 차출되었기에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셋째, 친인척 스캔들과 측근의 부패 게이트 부재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친인척 스캔들이나 측근의 부패 게이트가 없었다. 그러나 친인척 스캔들이나 측근의 부패 게이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밝혀질 수 없는 은폐 시스템이 있으며, 이는 이전 정권들에서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넷째, 정권 비리를 은폐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과 문재인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취업 의혹 사건을 비롯해 문재인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사건들은 어떤가? 이런 사건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대장동 사태를 비롯해 여권에 불리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다섯째, 코로나19가 초래한 국민적 위기의식이다.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대응 정책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코로나에 대한 국민적 위기의식은 늘 문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위기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문재인은 ‘코로나 위기’의 최대 수혜자였다.

여섯째, 정당과 대선 후보에 대한 정서적 비교우위다. 문재인은 ‘야당 복’과 ‘여당 복’은 물론 역대급 비호감 대선 후보인 이재명과 윤석열에 대한 정서적 비교우위를 동시에 누렸다. 그러나 문재인의 레임덕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발적 레임덕’이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결정을 한사코 외면하는 문재인의 ‘책임 회피’ 성향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일곱째, 욕먹을 일은 하지 않는 책임 회피다. 문재인은 “생색나는 일엔 앞장서고, 고통이 수반되는 폼 안 나는 일은 뭉개거나 다음 정부에 뗘넘긴다”.(『중앙일보』 논설실장 이정민) “검찰 개혁으로 욕먹은 사람은 추미애다. 부동산 실패는 문 대통령보다 김현미가 욕 더 먹었다.”(단국대학교 교수 서민) 문재인에게 법적 책임은 없을망정, 대통령 권력의 속성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이 자신으로 인해 고위 공직자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수사·재판을 받는 상황이 벌어져도 침묵만 굳게 지켰다.

여덟째, 집요하고 공격적인 자화자찬 홍보다. 부동산이나 코로나 문제에 대해 성급한 자화자찬을 했다가 발목이 잡혀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문재인의 자화자찬은 그칠 줄 몰랐다. ‘긍정과 낙관’이 문재인 개인의 ‘인간 승리’에는 큰 도움이 되었을망정 국가적 차원에서는 비극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홉째, ‘일중독’에 가까운 문재인의 헌신이다. 물론 이것을 좋게만 보기는 어렵다.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것은 좋은데, 문제는 오히려 이런 성향이 서류로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의 갈등 상황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문재인의 헌신은 탁현민의 탁월한 이미지 관리술을 통해 국민에게 잘 전달되었기에 임기 말 높은 지지율에 기여했을 것이다.

열째, 긍정적 이미지 위주의 이벤트 정치다. 문재인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자주 눈물을 흘렸으며, 2017년에도 유가족 2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2시간 동안 위로하며 눈물을 훔치는 등 ‘눈물 메시지’를 잘 활용했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눈물도 있고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인자한 대통령으로 각인되었다.

정치는 끝없는 타협이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끝없는 타협이다”고 말했고, 클레멘스 메테르니히는 “정치가는 고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유연하여야 하며, 교조주의나 쇠막대기가 아니라 원칙들에 있어서는 확고하고 일상정치에 있어서는 적응적인 강철 용수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풀브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인내와 양보가 가능해지고 광신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으로 가득찬 사람들과는 타협이나 협치가 어렵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 확신의 과잉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한국 정치에서 타협은 실종되었다. 내 편, 네 편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상황에서 ‘타협과 협치’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 방식은 승자 독식이었다. 이런 승자 독식은 소통과 타협을 죽인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터무니없는 계획이 많이 나왔지만, 권력 핵심부에 소극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제기한 사람은 있었을망정 반대 의견을 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동안 언론이 즐겨 쓰던 말이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였다. 이견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던 민주당 풍토에서 용감하게 소신껏 쓴소리를 냈던 4인방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금태섭은 사실상 팬덤에 의해 민주당에서 쫓겨났고, 조응천과 박용진은 이재명 선대위 체제로 흡수되었으며, 김해영은 원외라는 한계 때문에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당 5선 의원 이상민은 침묵하지 않았다. 친문 당원들의 문자 폭탄 등에 시달려왔던 이상민은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화를 위해 애쓰는 이상민이야말로 민주당의 체면을 지켜준 은인이다. 이상민은 ‘타협의 예술’로서 정치를 제대로 아는 인물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권력의 속성상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면,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 제도라도 원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비공식적으로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재인은 ‘원조 친노’로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유인태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했던 애정 어린 쓴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실패했고 정권 재창출도 실패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이 옹졸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바로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꿔놓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견제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깨닫기 어려워진다. 우선 대통령의 ‘인(人)의 장막’을 해체하는 것이 급선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의 이런 비극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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