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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위기에 처한 ‘민중신학’, 신학적 비판이론으로 재구성
이론적 위기에 처한 ‘민중신학’, 신학적 비판이론으로 재구성
  • 정용택
  • 승인 2022.04.13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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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⑤ 다시,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위하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향후 민중신학의 과제는 3세대 민중신학과 포스트-3세대 민중신학에서 
활발히 수행된 고통에 대한 민중신학적 접근을 
금융화된 자본주의 시대의 위기구조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고통에 관한 비판적인 이론화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달려 있다.”

민중의 시대에 탄생한 민중신학

유신시대라 불리는 1970년대 초중반의 한국 자본주의는 축적체제론의 시각에서 국가주도 고도성장체제, 즉 개발독재 발전양식으로 규정된다.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진행된 도시화 과정이 거대한 규모의 자본축적과 가파른 경제성장을 견인했지만 동시에 1970년대는 자본순환이 도시로 집중됨에 따라 과잉생산 및 과잉축적의 모순이 고조된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위기의 여러 경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잉여노동자의 증가와 노동력 착취도의 강화였다.

전태일 사건이 보여주듯, 1970년대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로 대변되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노동쟁의가 끊임없이 발생했던 ‘대중봉기’의 시대였다. 특히 도시를 중심으로 과잉축적된 자본의 흐름이 공장의 계급투쟁뿐만 아니라 ‘도시에 대한 권리’ 투쟁까지 촉발하면서 이 흐름과 관계 내에 체현된 모순은 광주대단지 사건 같은 도시위기를 넘어 YH사건에서 부마항쟁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정권의 안녕마저 위협하는 사회위기로 발전했다.(관련 도서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실제로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하여 노동자와 학생 간에 소위 노학연대가 결성되었고, 이후 도시의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결집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서 ‘민중’(民衆)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을 헤게모니적으로 접합하는 정치적 주체의 기표로 사용되면서, 마침내 한국 자본주의의 적대와 모순이 민중운동의 전선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응축되기에 이른다. 그 시대 민중운동에 대해선 여러 형태의 학문적 응답들이 출현했지만, 그중에서도 민중이라는 개념을 존립 기반으로 삼았던 독특한 학술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이 곧 민중신학(民衆神學, Minjung Theology)이다.

하여 민중신학의 출현은 철저하게 한국 민중운동의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론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민중신학은 한국 근대화 과정 전반, 더 정확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동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수반되는 위기의 현상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신학적 비판이론으로서의 성격을 갖추어 나갔다.

1970년대 민중신학의 산실이 되었던 갈릴리교회의 모습. 민중신학 1세대를 대표하는 문동환(文東煥), 서남동(徐南同), 문익환(文益煥), 현영학(玄永學), 이우정(李愚貞), 안병무(安炳茂) 등의 모습이 보인다. 1975년 해직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진 갈릴리교회에는 민중신학자들 외에도 이문영(李文永), 함석헌(咸錫憲), 김대중(金大中), 이희호(李姬鎬), 박영숙(朴英淑), 한승헌(韓勝憲), 허병섭(許炳燮) 등의 지도적인 당대 재야인사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사진=심원안병무아키브(www.simwon.org)

세대론의 안과 밖 사이에서

올해는 바로 그러한 민중신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1922~1996) 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안병무는 죽재(竹齋) 서남동(徐南同, 1918~1984) 목사와 더불어 민중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자신이 만든 한국신학연구소와 학술지 『신학사상』을 기반으로 1970년대 민중신학의 초기 형성과정과 1980년대 전성기를 이끌면서, 민중신학을 제도화하고 그 성과를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와 한국민중신학회, 한신대학교 등이 중심이 되어 올해와 내년에 걸쳐 “한국 민중신학의 새로운 목소리”라는 주제로 안병무 탄생 백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준비 중이다. 

공교롭게도 2002년 <교수신문>이 “한국지성사에서 ‘우리 이론’의 면모를 갖추면서 가장 빼어난 문제의식을 보여준 논의는 무엇”이 있었는지 찾아보려는 취지에서 기획한 “우리 이론을 검토한다”에서 민중신학은 “경제사학, 동양학논쟁” 그리고 “분단사학, 분단체제론, 온생명, 우리 학문하기, 탈식민주의 글쓰기”과 함께 “‘우리’에 걸맞은 독창적 이론작업과 그 이론의 ‘현실성’”이라는 기준을 충족시켰던 ‘자생담론’의 하나로 공인된 바 있다.(관련 기사)

특히 이 기획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정치학자는 민중신학을 두고 “가장 서구적 주제인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토착화·한국화한 최초의, 동시에 가장 성공적인 시도로서 […] 연구와 실천을 일치시키려 노력함으로써 신학이 현실과 유리된 추상의 학문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과 얼마나 밀접히 연결돼 있는가를 보여줬다”고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관련 기사)

필자 역시 이 기사들이 나오던 시기에 민중신학에 입문하였다. 당시 기획연재의 일환으로 어느 민중신학자가 기고한 글에서도 소개되고 있듯이, 필자가 민중신학과 조우하던 그 무렵 민중신학을 “‘민중사건’에 바탕한 현재진행형 신학”으로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던 이들은 ‘민중신학의 제3세대’를 자임한 일군의 소장 민중신학자들이었다. 사실상 민중신학의 세대론 자체가 3세대 민중신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관련 기사)

이에 따르면, 민중신학은 민중문제에 대한 관심을 통시적으로나 공시적으로나 폭넓게 공유하되,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주요한 위기구조 파악 및 시대진단 방식의 차별화를 통해 (연령대 구별이나 사제 관계와 무관하게) 세대론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 민중운동의 맥락에서 출현한 민중사건에 대한 ‘증언’을 통해 민중신학의 초석을 놓은 1세대, 1980년대 한국사회의 지식계와 운동사회를 지배했던 체제 변혁운동의 지평에서 민중신학과 마르크스주의의 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른바 ‘운동의 신학’을 자임했던 2세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지구화의 제도화 과정 속에서 전개된 3세대 민중신학을 세대론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민중신학이 한국 자본주의 시대구분(periodization) 및 시대진단(Zeitdiagnose)의 논리에 대응하여 세대론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신학 3세대는 세대를 초월하여 지속되는 계보학적인 연속성을 그 내부의 특정 분파에 국한된 일개 방법론이 아니라 민중신학이라 불리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신학담론의 학문적 고유성이자 지속 가능성의 이론적 토대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1990년대 이후로 민중신학 3세대 담론의 진원지가 되었던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민중신학 관련 출판물들. 사진=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https://3era.kr/)

물론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에 관해선 신중한 부연 설명이 요구된다. 1세대 민중신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에 관해선 굳이 세대론적 접근을 취하지 않더라도 ‘모두’의 스승으로 인정하기에 별다른 이견 없이 그 용어가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 2세대 민중신학 또한 그 대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이견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 흐름을 ‘물(物)의 신학’으로 표현되는 이른바 유물론적 세계관과 기독교 신앙의 종합으로 한정하지 않는 한에서, 즉 서구신학과 민중신학의 동일성에 무게를 두고 정통교회의 신조와 교리에 비판적이었던 민중신학의 탈(脫)신학‧반(反)신학적 기조를 순치시키려 했던 입장들까지 포괄하는 한에서, 2세대 민중신학으로 불릴 만한 새로운 경향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진 않는다.

문제는 민중신학 3세대이다. 3세대 민중신학이 출범한 지도 이제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민중신학계에선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3세대 민중신학으로 귀결되는 3세대 특유의 세대론적 민중신학 해석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민중신학자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00년대 초반 3세대 민중신학 담론의 자장 안에서 민중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 연속선상에서 민중신학자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는 필자가 민중신학계 전반의 학문적 동향과 미래에 관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민중신학 3세대에 의해 정립된 세대론적 민중신학 이해를 전제로 한 것임을 밝혀둔다.

세대론적 전개의 중단, 민중신학의 이론적 위기

민중신학을 다른 신학담론과 구별짓는 종차(種差)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신학이 한국 근대화에 대한 일반적인 시대구분의 논리에 대응하여 세대론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대론적 구분이 시대별로 민중신학 전개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접근법이라 인정한다면,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착상해볼 수 있다.

첫째, 한국 자본주의 시대구분이다. 한국의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1960~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이후’의 세 개의 시대로 변별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파악했을 때, 한국 근대성의 이러한 세 단계의 시대적 전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민중신학의 각 세대들이 독자적 담론을 구성해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시대구분이 이루어짐으로써 그때그때의 시대, 곧 당대에 적합한 신학적 사회비판의 과제를 수행하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세대가 계승과 단절 가운데 출현하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둘째, 한국사회 비판담론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학하기이다. 특히 2세대와 3세대 민중신학의 출현 과정에서 발견되는 의미심장한 대목은 민중신학적 세대론의 발전 경로가 당대 한국사회 지식계를 선도했던 비판담론의 흐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회진단의 새로운 성과를 내놓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비판담론과 대화하면서 신학의 비판이론적 전회를 도모하고, 결국 민중신학을 서구신학의 전통과 구별되는 ‘신학적 비판이론’으로 구성해나갔음을 시사한다. 처음부터 서구신학의 전통으로부터 탈식민화를 지향해온 탈(脫)신학‧반(反)신학적 기획인 민중신학을 정통교회사 및 서구신학사의 계보 안에 정위하는 세대론 바깥의 신학주의적 해석들은 여기서 기각된다. 

셋째, 동시대의 구조화된 위기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다. 1세대 민중신학이 1970년대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사회적 모순(특히 민중의 소외와 인권의 유린)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이른바 ‘소외론적 접근’을 추구했다면, 1980년대 2세대 민중신학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적 접근’을 좇아 자본-노동의 모순을 당대 한국사회의 기본모순으로 파악하면서 계급착취의 현실을 변혁하는 이론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반면에 1990년대의 3세대 민중신학은 1997년 말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 자본주의 근대성을 전반적으로 특징짓는 위기구조를 ‘고통 구조의 확대재생산 체제’이자 ‘고통의 불균등한 배분 체제’로 인식하는 데 도달했다. 

요컨대, 한국 자본주의 시대구분 및 시대진단의 수용, 신학적 비판이론의 구성, 위기구조의 이론화라는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1970년대 제1세대 민중신학에서 1980년대 2세대 민중신학을 거쳐, 1990년대 이후의 제3세대 민중신학으로 세대론적 전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히 이루어졌던 3세대 민중신학을 끝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중단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날 민중신학이 처한 이론적 위기의 요체를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의 중단으로 규정한다. 바꿔 말하면, 앞서 말한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현재의 민중신학이 이론적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릇 비판이론의 전통에서 자본주의 시대구분의 목적은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연속적 시기들로 이루어진 한 시대의 고유한 시간성과 그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행을 식별하기 위해, 사건이나 과정을 내부적 친화성과 외부적 차별성의 관점에서 분류함으로써 미분화된 역사적 시간의 흐름을 해석하는 데 있다. 특히 마르크스에게 시대구분에 바탕을 둔 역사서술이란 하나의 원리에 근거한 빈틈없는 연역의 규칙을 의식적으로 폐기하는 가운데, 세계의 파편화와 역사의 단절 과정을 다루는 철학적 접근을 말한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가 놓인 시공간의 역사적 특수성을 읽어내는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에 따라 당대의 주요한 위기구조를 변별하고자 했던 신학적 비판이론인 민중신학이 더 이상 자본주의를 시대구분하지 않으며, 그러한 시대구분에 입각하여 현단계의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구조에 대한 시대진단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민중신학이 특정한 형태의 사회적 고통을 산출하는 사회적 조직화의 특수한 양식을 구조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신학자들의 일부가 시대의 위기구조에 대한 비판담론의 문법 변화와 이에 수반된 사회과학의 새로운 연구성과의 출현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민중신학적 사회비판의 내용과 논리를 재구성해나갔기 때문에 (비록 세계관 논의에 집중했을지라도) 1980년대 말 유물론적 신학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2세대 민중신학이, 그리고 1990년대 중반 문화정치학적 비평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3세대 민중신학이 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가 중단된 것을 신학적 비판이론으로서의 민중신학의 학문성 상실의 문제로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중신학이 비판담론과의 대화를 더 이상 전면에 내걸고 있지 않은 결과는 내적으로는 민중신학이 지녔던 독특성의 소멸로 나타났고, 외적으로는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민중신학자들의 작업이 보수개신교 또는 기독교 극우주의 분석 외에는 사회비판의 자원으로서 거의 참조‧인용되지 않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민중신학이 개신교 신학의 영역에 한정된, 그것도 여러 다양한 진보적 상황신학의 한 갈래로 남아버린 셈이다. 

필자가 민중신학 연구단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비평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연구자‧활동가 플랫폼에도 참여하고 있는 이유 역시 비판담론과의 대화를 신학하기의 본령으로 삼는 민중신학 연구자로, 정확히 같은 의미에서 ‘신학적 비판이론’(theological critical theory) 연구자로 자신을 정체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최근 들어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재(再)전개를 장기적인 연구과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 비판과 비판적 사회이론 분야에서 제출되는 자본주의 시대구분과 사회학적 시대진단을 전유하여 상품 중심의 ‘소비사회’에서 금융적 자산투자 중심의 포트폴리오-사회로 이행 중인 동시대 한국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고통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탐구 중이다.

고통의 현상학을 넘어, 
사회적 고통의 체계적 비판이론으로

민중신학 3세대는 민주화‧소비사회화‧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세 가지 요소를 1990년대 한국 민중신학이 지향해야 할 시대진단의 결정적 문맥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그러한 시대구분 및 시대진단이 더 이상 통용되기는 어렵다. 예컨대, 노동시장에 대한 규범적 규제가 점점 더 산업적 봉건성으로 대체되고 고용관계가 계급적 착취관계를 넘어 인격적 예속관계 또는 봉건적 주종관계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에서 ‘87년 체제’ 또는 ‘민주화’라는 의념은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파악하는 데 더 이상 적절한 분석틀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사회,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개념들 역시 난점을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필자는 현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구조를 상품화(commodification)-자산화(assetization)-자본화(capitalization) 국면으로 이루어진 포괄적인 금융화(financialization) 과정의 맥락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타깝게도 대략 2000년대 후반부터 ‘3세대’ 민중신학이라는 논쟁적인 용어 대신에 세대론적 문제의식 바깥에서 현존하던 다양한 민중신학‘들’까지 민중신학으로 포괄하기 위해 ‘고통의 신학’으로 그 지평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민중신학의 세대론은 3세대에서 더 이상의 진전 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분명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에 단절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여 3세대에서 4세대로 전환되는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는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3세대 민중신학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우리 시대의 고통의 장소들에 주목하는 민중신학의 다양한 결들이 나타났다.

필자는 이를 ‘포스트-3세대 민중신학(적 경향)’이라 명명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 1~3세대를 관통하는 민중신학의 고유한 주제인 ‘고통’을 안출하고 이를 ‘사회적 고통’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성과를 이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에서 일차적 요소인 변화된 시대상황에 대한 첨예한 인식, 필자의 관점에선 자본축적 논리와 구조적 위기의 시대구분을 통한 한국 자본주의적 현대성에 대한 역사적 분절의 감각을 오히려 퇴화시키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한 부동산 가격이 자산 불평등 확대의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다양한 통계 자료를 통해 입증했던 2021년 한겨레 기사(https://url.kr/dtuvie). 그러나 부와 불평등의 자산화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의 생산과 분배가 부의 불균형에 핵심적이며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계층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회적 부정의(不正義)의 문제를 넘어 사실상 주택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수익 흐름에 기초하여 현재 가치로 할인한 ‘자본화된 소유물’, 즉 ‘자산’으로 변형시키는 이른바 자산화 과정이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에서도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2000년대 이후의 민중신학이 ‘고통과 폭력의 신학적 현상학’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출발점에 자리 잡은 고통의 ‘사회적’ 전환에 관한 문제의식은 민중신학을 신학적 비판이론으로 재구성해 나가는 데 여전히 중요한 자원이다. ‘고통의 신학’으로 대변되는 포스트-3세대 민중신학에서 사회적 고통은 민중적 존재의 삶, 즉 사회적 고통에 더욱 취약한 존재의 삶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징후로서 해석된다.

특히 고통이 일차적으로 사회적 관계의 조건하에서 사회적 강제력이나 상징폭력에 의해 생산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산된 고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증언하는 이의 목소리와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고통이 더욱 심화되거나 확장된다는 것, 즉 고통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포스트-3세대 민중신학의 기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그 덕분에 민중신학은 한편으로 능력은 있되 의지가 없어서 인간의 불행과 비참을 방관하고 있는 하느님과 투쟁을 불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정치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의지는 있되 능력이 없어서 인간의 불행과 비참에 대해 애도(哀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하느님을 구원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전과 다름없이 ‘윤리적’인 신학적 비판이론의 일면(一面)을 성공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고통의 개념화가 자본주의 시대구분의 맥락에서, 즉 현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드러난 위기구조와의 연관 속에서 정교한 체계적 비판이론의 형태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3세대 민중신학이 발견한 사회적 고통의 불균등한 배분 체제 같은 한국 자본주의 근대성의 일반적 위기구조와 1990년대 이후로 민주화와 지구화의 제도화 과정에서 초래된 사회적 고통의 양상들(차별과 배제, 무시와 모욕, 불평등과 불안정성, 취약성과 잉여성 등), 그리고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최근 자본주의 단계에서 출현하고 있는 소외와 고통의 다양한 양상들을 분석적으로 구별하는 동시에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이론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향후 민중신학의 과제는 3세대 민중신학과 포스트-3세대 민중신학에서 활발히 수행된 고통에 대한 민중신학적 접근을 금융화 시대의 위기구조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고통에 관한 체계적인 동시에 비판적인 이론화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필자의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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