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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4)
교수의 착각(4)
  • 박구용
  • 승인 2022.04.1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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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대학은 학문 하는 곳이다. 학문 하는 능력, 수학능력이 필요한 곳이다. 수학능력 평가에 따라 대학으로 가는 문이 갈리는 까닭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수학능력은 변할까? 증가나 감소가 가능할까?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수학능력 평가는 한번만 치를까?

모든 능력은 발전하거나 퇴보한다. 발전은 앞에선 빠르게 이루어지다가 점점 느려진다. 퇴보는 반대다. 처음엔 느리게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급격하게 진행된다. 신체적 능력, 정신적 능력 모두 그렇다. 수학능력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중등교육은 수학능력을 키우는가?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가혹하게 말하면 이 나라 중등교육은 상벌과 선별의 과정을 통해 인력을 배치하는 통치체계의 근간이다. 수학능력평가 시험 역시 그 이름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말과 사태가 기이하게 뒤틀린 부조리의 극치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은 어떤가?

대학이 수학능력을 키운다면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사한 교육체계를 가진 나라에선 대학이 수학능력교육을 맡는다. 글쓰기교육센터, 교양교육센터, 교수학습센터, 기초교육기관 등이 이런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수학능력은 그야말로 기초다. 비판적 사고능력, 합리적 의사소통능력,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공감적 협업능력의 발판을 다지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을 함께 한다. 교양교육이 수학능력 교육에 집중한다면 전공교육은 전문지식과 수행능력 향상을 지향한다. 둘 다 학문을 한다기 보다는 이미 축적된 학문의 성과를 체득하는 과정에 가깝다. 대학원에서야 비로소 학문하기가 시작된다. 

대학원은 연구자와 학자를 배출하고 재교육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소수의 대학교가 이 역할을 독점해왔다. 그러다보니 학계 내부의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이 많아지면서 수학능력의 퇴행이 진행되어 왔다. 독점 체계 내부에서 이루어진 개개인의 노력만큼 건강한 후속세대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나마 퇴행을 지연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해외유학을 통해 다양한 이질적 학문전통을 유입해서다. 문제는 유학파와 근친상간 구조의 도착적 화해의 강화다. 

유학파들도 그 뿌리를 파보면 근친상간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소수의 대학교 출신이 다수다. 근친상간은 두 가지 경우에 일어난다. 첫째, 자연적·사회적 조건이 강제하는 경우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비극이다. 둘째, 권력독점을 위해 술책을 부린 경우다. 대부분의 왕조는 이 때문에 망했다. 우리의 경우 신라가 그랬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학자와 연구자 배출에서 나타나는 근친상간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권력독점을 위해 근친상간을 일삼는 권력자는 자식조차 위협으로 간주한다. 오이디푸스(Oedipus)의 아버지 라이오스(Laius)가 그 전형이다. 라이오스는 새로 태어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대개 그것을 받는 자의 내면이다. 자식까지 의심하고 죽음으로 내몬 아버지 라이오스는 결국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라이오스 콤플렉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재생산한다. 사랑스런 학문을 제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학능력이 뛰어난 제자들을 근친교배 시키거나, 수하로 제자의 발목을 묶고 못질을 한 다음 외국으로 보낸다. 권력독점을 노린 교수들은 라이오스처럼 추방했던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나마 다행일까, 착각일까? 누구누구 사단·군단을 들먹이며 세를 과시하는 교수들, 라이오스 콤플렉스에 빠진 교수들과 제자들의 수학능력의 퇴행이 빨라지고 있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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