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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스쿨보다 ‘평생교육’을 혁신모델로 꼽아
미네르바 스쿨보다 ‘평생교육’을 혁신모델로 꼽아
  • 윤정민
  • 승인 2022.04.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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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집 설문조사
교수 517명이 뽑은 혁신대학과 차기 정부 최우선 고등교육 과제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공존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서울 사립 일반대 인문계열 C 조교수(57)
“문제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잠재력과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교육도 필요하다.”
- 서울 국공립 일반대 자연계열 D 정교수
“도전과 시도를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게 대학 혁신 핵심인데, 규제와 평가 중심의 교육부는 이를 지원하기보다 억제한다.”
- 부산 사립 일반대 사회계열 E 정교수

 

<교수신문>이 진행한 ‘대학의 미래’ 설문조사에서 교수들은 대학의 혁신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에 적용하기엔 규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고등교육 과제’ 설문 결과에도 드러난다.

<교수신문>은 세계 각국의 고등교육 혁신 사례로 △미네르바 스쿨 △애리조나 주립대 △에꼴42 △싱귤래리티 대학 △ 올린 공대 △스탠퍼드대 디스쿨 △스킬스퓨처를 소개하고, 이중 우리나라에 필요한 모델을 전국 대학교수 517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싱가포르 평생교육시스템인 ‘스킬스퓨처’의 긍정 답변(‘매우 필요’ + ‘필요’) 비율이 88.0%로 가장 높았다. ‘매우 필요’도 38.1%로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스킬스퓨처가 운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묻는 문항에도 83.4%로 일곱 모델 중 가장 높았다.

교수들은 ‘올린 공대’와 ‘에꼴42’가 대학 혁신에 참고할 모델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도입하기에는 다른 모델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린 공대와 에꼴42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74.5%, 76.8%였으나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65.8%, 66.3%로 나타났다. 에꼴42의 필요 응답 비율과 가능 응답 비율 간 격차는 10.4%p로 일곱 모델 중 가장 높았다.

물리적인 캠퍼스가 없는 ‘미네르바 스쿨’의 지표도 다른 모델보다 상대적으로 다소 낮게 나타난 게 눈에 띈다. 미네르바 스쿨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9.1%,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3.3%였다. 미네르바 스쿨이 대학 혁신 사례로 교수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대학설립요건 등 제도 개선 없이는 미네르바 스쿨이 우리나라에 등장할 수 없다는 점도 교수들이 인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의 한 사립 일반대 조교수 F씨(사회계열·35)는 “졸업학점(기간), 교육 공간, 교원평가제, 대학설립운영기준 등 대학 규제를 유연화해야 대학 혁신이 더 촉발할 것”이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 조직체제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교육규제부가 아닌 ‘교육지원부’를”

결국, 정부 주도의 획일화된 ‘막힌 규제(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깨고 대학이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도록 정부가 도와야 대학 혁신이 가능하다는 게 교수들 다수의 의견이다. 교수들의 ‘열린 규제(네거티브 규제)’와 ‘재정 확대’ 목소리는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고등교육 해결 과제와 윤석열 당선인의 고등교육 공약 평가를 묻는 문항에도 돋보였다.

‘차기 정부 최우선 고등교육 해결 과제’ 6가지 중 교수들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분야는 ‘고등교육 재정지원 확대’(39.8%, 복수응답)였다. 대학 규제 완화가 35.8%, 고등교육체계 근본적 개편이 34.8%로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 분석하면 30·40대(78명), 50대 교수들(240명)은 재정지원 확대를 1위로 꼽았다. 각각 47.4%, 44.2%가 응답했다. 60대(171명)와 70대 이상 교수들(28명)은 고등교육체계 근본 개편을 첫 손에 꼽았다. 각각 42.6%, 50%가 선택했다.

대학가에서 말하는 열린 규제의 핵심은 교육부의 고등교육 정책 기능 분리다. 윤 당선인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교육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교육부 해체 이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교육부의 ‘기능 축소’, ‘대학 규제 폐지’를 주장하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

다만, 교육부가 타 부처로 흡수되는 등의 ‘교육부 폐지’에 관한 문항에는 반대율(41.0%)이 다른 공약 문항과 비교했을 때, 찬성률(54.9%)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조직을 축소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폐지까지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교수들의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의 사립 일반대 G 정교수(자연계열)는 “교육부가 교육 규제가 아닌 교육 지원에 전념하도록 부처명도 ‘교육지원부’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폐지는 직위별로 비교했을 때, 정교수에서 조교수로 갈수록 반대율이 높았다. 정교수 284명 중 98명(34.5%)만 반대했던 반면, 부교수는 96명 중 46명(47.9%), 조교수는 49명 중 29명(59.2%)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령대별로 비교했을 때도 반대율이 60대(34.5%)에서 30·40대(46.2%)로 갈수록 높아지는 성향을 보였다.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는 사립대 교수들(379명)의 열렬한 지지 속에 69.0%라는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특히 국공립대 교수들(138명)의 ‘매우 찬성’ 비율이 17.4%인데 반해 사립대 교수들의 ‘매우 찬성’ 비율이 42.7%나 차지했다. 부산의 사립 일반대 H 정교수(예체능계열)도 이 사안에 매우 찬성한다고 밝혔는데, “지방사립대의 비정상적인 등록금 동결과 저조한 고등교육지원이 대학교육을 하향평준화했다”라며 “속히 대학 발전을 담보할 수입원에 대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중장기적으로 대학등록금을 매우 낮은 수준으로 인하하거나 무료화하고, 사립대 공공성도 제고해야 한다”라며 등록금 자율화를 반대한 서울 사립 일반대 I 정교수(인문계열)의 주장도 있었다.

 

“과감한 대학 구조조정 필요”

교수들이 2순위로 가장 많이 뽑은 고등교육 우선 과제는 ‘한계·부실대학 퇴로 마련’(499표 중 20.2%)이었다. 앞서 대학협의회, 총장협의회, 교수단체 등은 정부가 한계 대학들의 체계적인 폐교와 청산을 지원하도록 차기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대구의 한 전문대 J 부교수(공학계열)는 “한계·부실 대학 퇴로 또는 기업 전환 등을 통해 학령인구 감소세에 맞춰서 전국 대학 정원을 감축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퇴로 마련을 꼽은 서울 소재 사이버대 K 정교수(사회계열)도 대학이 너무 많다며 “과감한 통폐합과 전문화로 대학을 100개 정도만 남겨두는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한계 대학 활용 방안으로 ‘기업 대학’ 공약을 내걸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교육 공약 발표 때 “한계·부실 대학을 기업 수요에 맞는 교육기관으로 활용해 연구개발센터, 데이터센터, 회사벤처 창업 전진기지로 활용하도록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교수들의 생각은 찬성(‘매우 찬성’ 포함) 57.5%, 반대(‘매우 반대’ 포함) 38.7%로 다른 공약보다 다소 높은 반대율을 보였다.

특히 국공립대 교수들의 반대율이 46.4%로, 사립대 교수들의 반대율(35.9%)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 사안에 대해 ‘매우 반대’한다고 밝힌 대구 국공립대 L 부교수(인문계열)는 “대학을 기업의 기술교육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진정한 교육과 학문적 성숙을 저해하는 현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대학이 왜 필요한지부터 고민하자”

‘대학의 미래를 위한 혁신 방향’을 묻는 주관식 문항에 교수들 대다수는 장문을 남기며 대학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중 일부 교수들은 대학 혁신을 고민하기에 앞서 ‘고등교육의 본질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학이 왜 필요한지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사립 일반대 M 명예교수(인문계열)도 혁신대학 모델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대학의 기본 기능은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 제공보다는 ‘교육이 무엇인지’, ‘교양, 지식, 정보가 무엇인지 배우고 가르치는 것’, 즉 메타인지능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대구 국공립 일반대 N 명예교수(자연계열)는 “국민이나 국가가 왜 대학, 고등교육이 필요한지 근본부터 깊이 고민한 뒤에 혁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사립 일반대 O 정교수(사회계열)는 <교수신문>이 소개한 혁신대학들의 교육방식이 “참신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적 상황과 정서상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O 교수는 “일류대학을 선호하고 경쟁적인 한국 정서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시도하고 정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려면 모두 동일한, 획일화된 삶을 사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걸 국민에게 알리고 가치관도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① [교수들이 말하는 ‘대학의 미래’] ‘학생 성장’이 우선이다

[교수들이 뽑은 혁신대학·차기 정부 고등교육 과제] 미네르바 스쿨보다 ‘평생교육’을 혁신모델로 꼽아

③ [교수들이 뽑은 향후 10년간 지배할 한국 사회 키워드] 저출산고령화·사회통합·4차산업혁명의 시대

[교수들이 뽑은 대통령의 덕목]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 ‘공정성·소통·정직·통찰력’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의 미래’] “나는 교육자, 시대에 뒤쳐졌다”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 정체성’] 교수 52.8% “교수 미래 어두워”…조교수는 ‘신분 불안’ 이직 고민

[교수들이 말하는 ‘교수 스스로 혁신해야 할 과제’] 정교수들 “나태했다” 자성의 목소리··· “교수, 학생의 ‘스승’ 아닌 ‘동반자’”

[‘교수 정체성’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_서혁 이화여대 교수] 흔들리는 ‘교수 정체성’과 대학의 위기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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