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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는 생계부터 불안, 이공계는 고용불안
인문·사회는 생계부터 불안, 이공계는 고용불안
  • 강일구
  • 승인 2022.04.11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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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비정규 연구자 59.4%, ‘생계부담’ 가장 큰 어려움
“이공계 포닥 4천 명, 공공기관 비정규직 떠돌 것으로 추정”
인문·사회계열 비정규직 연구자의 40.2%는 '생계를 위한 기타 활동'으로 연구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이공계 신진연구자들은 지원이 많기는 하나 불안정한 연구환경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비정규직 연구자의 40.2%는 ‘생계를 위한 기타 활동’으로 연구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생계부담’을 연구활동의 첫 번째 어려움이라고 답한 연구자 비율은 46.4%였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학술실태 현황조사에 참여한 346명의 연구자가 답한 결과다. 「새로운 인문사회 학술정책 거버넌스 구축과 과제」(2021)에 포함된 내용이다. 

조사에 따르면, 비정년트랙 연구자의 58.6%, 비정규직 연구자의 59.4%, 가계소득 3천만 원 미만의 연구자의 64.8%는 연구 활동에서 경험하는 첫 번째 어려움을 생계부담이라고 답했다. 또한, 비정규직 상태의 응답자들은 강사법 시행 이후 ‘소득의 안정성 향상으로 연구환경이 제고’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70.1%가 ‘개선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대학 내 지위 안정화에 대해서는 73.2%가 부정적이었다. 대학원생과 신진박사에 대한 지원 부족에 대해서도 76.3%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인문·사회 분야에서 비정규직과 열악한 처우 문제는 곧 학문후속세대와도 직결된 문제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인문·사회분야 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그는 지난달 열린 고등교육 학술토론회에서도 열악한 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을 주장하며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더 많이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연구재단 집계에 따르면, 2021년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에 지원한 사람은 1천889명이지만 선정된 사람은 312명밖에 되지 않았다. 선정률은 16.5%다. 반면, B유형의 선정률은 60.5%로 3천545명이 신청해 2천145명이 선정됐다. 하지만 B유형의 경우 1년짜리 지원이고 연간 지원액 또한 1천400만 원이다. 5년(2+3) 동안 연간 4천만 원을 지원하는 A유형에 비해서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 학술실태 현황조사에서도 76.9%의 연구자들은 단기 사업 위주이기에 장기적이고 지속적 연구 설계가 어렵다고 답했다.

이 외에도 2021년 인문·사회분야 신진연구자사업의 경우 2천161명이 지원해 469명(21.7%)이 선정됐으며,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은 2천113명이 신청해 524명(24.8%)이 선정됐다. 저술출판지원사업에는 686명이 지원해 52명(7.6%)이 선정됐고,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은 773명이 지원해 84명(10.9%)만이 선정됐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교육부는 올해 1월 ‘2022년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안)’에서 학문후속세대의 생애주기별 연구자 지원을 추진한다며, 학술연구교수지원사업 A유형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00개였던 과제를 올해에는 896개로 늘리고, 지난해 10개였던 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신규과제를 올해에는 16개로, 해외 한국학 지원사업 예산 규모 또한 지난해 73억6천800만 원에서 올해에는 94억4천400만 원으로 늘린다고 했다. 

하지만 ‘2022년 고등교육 현안 토론회’에 참여했던 박치현 대구대 교수(성산교양대학)는 이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는 “인문·사회분야 후속세대 지원사업은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비정년트랙 교원 증가, 확대되고 있는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무마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지원 규모도 작다”라며 “학계에 진출하지 못하면 생활비도 벌기도 힘든게 현실이다. 이런 선배의 모습을 본 후배들은 대학원 진학을 꺼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BK21, SSK, HK 같은 집단연구의 양적 증가가 인문·사회문제 해결에 온전한 해답인 것은 아니다. 학술실태 현황조사에서 연구자들은 대형사업은 안정감은 있지만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단 내의 관료화, 연구 책임자들이 봉급을 ‘하사’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 사업 내에서의 단기계약과 교수의 갑질 등이 인터뷰 조사에서 제기됐다. 무엇보다 대형사업 위주 연구는 소수연구를 어렵게 한다는 의견이 80.3%에 달했다.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 36.2%가 비정규직

인문사회계의 경우 노동시장이 학계에 한정돼 있다면 과학기술분야는 학계를 비롯해 기업,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인문사회 분야에 비해 기회가 좀더 많기는 하다.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연구재단의 최근 3년간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사업(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 박사후 국내·외연수)의 수혜를 받는 후속세대는 증가했다. 2019년 후속세대 지원사업의 선정률은 26.4%였으나 이후 30.0%(2020년), 44%(2021년)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된 과학기술 분야에서 불안정한 연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21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박사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8월부터 2020년 2월 공학계열과 자연계열 박사학위 취득자 5천174명 중, 공학계열 박사학위의 취업률은 67%였고 자연계열 박사의 취업률은 64%에 그쳤다. 또한, 학업전념자의 경우도 학위 취득 후 바로 노동시장 이행에 성공한 경우는 61%였다.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 당시 직장은 2020년 기준 대학이 33.9%, 민간기업이 27.3%였는데, 이 중 36.2%는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박사후연구원의 현황과 지원 방안」(2021)에서는 박사후연구원의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을 수급 구조에서 찾고 있다. 매년 8천 명 이상의 이공계 박사 인력이 배출되는데, 이들이 희망하는 공공부문 연구인력 일자리 증가는 천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대학원 구조조정을 통한 공급 조절과 민간 부문 진출 등 수요의 확대가 동반돼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해당 연구의 책임자였던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과학과 기술> 10월호에서 “노동시장 진출과 관련해 박사후과정을 거칠 경우 매년 최소 2천~4천 명 규모의 박사학위자가 원하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일자리에 계속 누적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원생에게 연구환경이 비교적 잘 갖춰진 카이스트에서도 충분한 경제적 보장과 휴식 보장이 안 된 것으로 나왔다. ‘2021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원생이 한 달 동안 받는 급여는 중윗값이 150만 원으로, 주 52시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평균 시급이 7천211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의 주중 연구실 체류 시간이 평균 9.94시간이고, 주말 연구실 체류 시간은 3.06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환경 보고서를 작성한 김주영 연구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박사과정)은 “이공계 학과가 많고 국립이라 지원도 풍부해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라며 “이번 조사에서는 학교에서 지향하는 도전의식보다 안정적인 직군으로도 많이 우회하는 경향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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