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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국립중앙박물관, 그 드러냄의 방식
특집: (1)국립중앙박물관, 그 드러냄의 방식
  • 방병선 고려대
  • 승인 2005.1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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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누르는 외형주의 유감…국박의 품격은 무엇인가

총독부 청사 시절의 국립중앙박물관은 묘한 곳이었다. 박물관의 2층 난간에서 1층 중앙 홀을 바라보면 순간 일본 귀족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기 때문이다. 총독부 건물도 엄연한 역사적 유물이긴 하지만 그건 도쿄 한복판에서 일본 기모노를 걸쳐 입고 한국식 전통 혼례를 구경나온 나그네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총독부 건물이 철거된 이후 세종로 시절의 박물관은 비록 단칸 셋방 같은 규모와 시설이었지만 몇 년 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이사한다는 희망에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여건에서도 그나마 전시와 교육을 나름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이제 오랜 인고의 기다림 끝에 초현대적 시설의 박물관이 용산에 문을 열었다.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듯이 규모면으로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은 세계 몇대 박물관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널찍한 주차장과 마당, 액자 속에 그림을 감상하듯 남산타워가 한 눈에 보이는 탁 트인 광장, 중국의 것이 부럽지 않은 웅장한 연못, 담장이라기보다는 중세 유럽의 견고한 성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외벽 등으로 전시장에 들어서지 않아도 박물관의 외관에서 경제대국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것만 보아도 박물관 외형에서 드러냄의 효과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경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외형뿐만이 아니다. 독립된 어린이박물관을 비롯해서 복합 문화공간을 표방한 캐치프레이즈를 그대로 구현한 극장과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은 어떠한 눈높이의 관람객이 몰려와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우월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적인 외형의 드러냄 가운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외형의 크기와 조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작지만 독특한 한국의 미를 발산하는 우리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하기에 건물의 거대성이나 기념비성은 역으로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실체는 시대 별로 다르지만 크기의 美를 추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외형의 추상적인 조형미나 거대함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의 분위기는 한껏 낼 수 있어도 한국의 박물관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박물관 마당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석탑과 부도가 전혀 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기념비적인 건물 외양을 내부에 전시된 유물의 성격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사에서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야외 전시물의 구성과 배치, 조경 등을 통해 크기와 추상의 거부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박물관 내부의 드러냄을 살펴보자. 이번 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전시유물의 양이다. 유물의 양을 전면에 내세워 관람객들에게 세계적인 박물관임을 각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시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을 친절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꺼번에 소화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박물관에서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요 유물 둘러보기(가령 ‘명품 100선’과 같은 것) 같은 몇 시간 코스의 안내가 있지만 이는 타의에 의해 편집된 유물 감상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이와 같은 과다한 전시 유물은 박물관의 역량이 자연 전시 분야에만 치중하게 만들고 전시 본연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게 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박물관이 맡고 있는 교육과 연구라는 다른 기능에도 자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시 공간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유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또한 연구와 교육에 소홀함이 없도록 현재의 인원을 탄력적으로 배치하고 인원 선발에서도 각 분야 별 최정예 인력을 선발할 수 있는 보다 자율적인 요구가 수용되어야 한다. 그나마 이번에 전시팀이 독립되어 역할 전담이 행해지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중앙박물관은 전시 유물의 성격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이뤄 나가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오직 우리 것만으로 가득 채우거나 질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외국 작품들과의 비교는 자칫 민족이라는 특수성의 그물에 걸려 문화 편식증에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보편적인 흐름을 알고 그 안에서 우리 것의 위치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알차고 다양한 비교자료가 필요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몽고, 그리스, 로마 같은 우리 문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국가의 유물 뿐 아니라 서구와 미주, 아프리카 등 다른 지방박물관에서는 근접하기 어려운 자료와의 비교 전시를 통한 우리 것 드러내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동아시아관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유물들을 접할 소중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어서 우리 미술에 대한 균형감을 갖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일부 유물의 질에 문제가 있고 너무 많은 설명 패널들을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을 자칫 이미 내정된 세계로 안내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박물관은 접근의 용이함이나 유물 설명의 교육적 기능에 무게를 두는 대중성 뿐 아니라 전문성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중앙의 구실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연구를 위해 국내외 희귀자료의 공개와 전시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전시 기법에 있어서도 유물의 공간 구성과 배치, 관람 동선의 운용에 있어 최고의 전문성이 발현되어야 한다. 대중의 눈높이에 연연하지 않고 한 단계 향상된 감상의 방법도 교육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중앙박물관으로서 품격과 위신이 설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 척도는 외형에서 간취되는 크기가 아니라 내면의 질에 달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건물 드러내기에서 유물 드러내기로,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에서 우선 한국의 박물관으로 정착하기 위해 박물관 식구와 박물관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 드러냄의 방식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방병선 / 고려대·미술사

필자는 동국대에서 ‘조선시대 후기 백자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일도자문화의 교류양상’,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백자’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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