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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6] 말라테스타의 아나키즘에서 네그리의 자율주의 운동까지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86] 말라테스타의 아나키즘에서 네그리의 자율주의 운동까지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4.11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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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테스타
그람시
노바토레
네그리
토리노의 공장평의회를 중심으로 한 ‘붉은 2년’(biennio rosso, 1919-1920) 시대에 정교화 됐던 그람시의 산업민주주의 개념에는 아나키즘의 영향이 깊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 1891~1937)의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및 생디칼리스트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지만 간과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젊은 그람시의 비정통적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적 사회주의 전통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었다. 또한, 토리노의 공장평의회를 중심으로 한 ‘붉은 2년’(biennio rosso, 1919-1920) 시대에 정교화되었던 그람시의 산업민주주의 개념에는 아나키즘의 영향이 깊었다. 

공장평의회는 노동자들의 자기 관리를 준비하기 위해 개혁주의 노동조합을 대체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아나코-생디칼리스트의 가르침에 따라, 평의회는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집합체로 간주되었다. 이 단계에서 그람시는 20세기 후반에 수정주의적 유로코뮤니스트 서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입증할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켰다. 관료적 국가와 개혁주의 노동조합 운동에 반대되는 공장평의회와 소비에트를 위한 조정 기구로서 알려진 그람시의 정당은 말라테스타의 초기 개념인 아나키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뒤에 스페인 혁명 중에 죽는 젊은 아나키즘 지식인 카밀리오 베르네리(Camillo Bernerii, 1897~1937)도 이 단계의 소비에트 체제를 자치(자치)의 하나로 보았다.

 
말라테스타 이후의 이탈리아 아나키즘

최근의 이탈리아 아나키즘 운동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등으로 대표되는 자율주의 운동이다. 사진=위키미디어

1921-22년, 그람시와 그의 친구들은 곧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이탈리아 공산당을 설립했다. 1924년 말라테스타는 레닌의 사망 기사를 보고 그의 죽음을 애도의 날이 아니라 휴일로 축하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을 더욱 소외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아나키스트들은 특히 북부 지역에서 저항을 위해 싸웠다.

제2차 대전 후, 환멸을 느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아나키즘이 부활했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ederazione Anarchica Italiana)은 1945년에 반항적인 대리석 절단기의 전통적인 요새인 카라라에서 조직되어 <신인류>(Umanitd Nova)지를 부활시켰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신좌파가 등장했을 때 그것은 철저히 마르크스주의적이었고, 테러리스트 조직인 ‘붉은 여단’은 특히 권위주의적이었다. 

1968년 카라라에서 열린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는 그해 초 학생 봉기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70년대에 평화, 녹색, 페미니스트 운동이 부상하면서 주로 학생과 중산층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신디케이드 연합>(Unione Sindacale Italiana)은 1983년에 다시 시작되었으며 현재 모든 지방에 지부가 있다. 1984년 베니스에 열린 아나키즘 국제회의에 3천 명이 참가해 아나키즘 사상의 부활을 알렸다. 한국에서도 하기락이 참석했다. 

최근의 이탈리아 아나키즘 운동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등으로 대표되는 자율주의 운동이다. 196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등장한 자율주의 운동은 여러 가지 분파를 보이지만 영어권의 혁명적 좌파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이 국가, 노동조합 또는 정당으로부터 독립된 자본주의 체제의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다. 자율주의자들은 다른 마르크스주의보다 정당 정치 조직에 관심이 낮은 대신 전통적인 조직 구조 외부의 자기 조직적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자율주의는 ‘상향식’ 이론으로, 결근, 느린 노동, 직장에서의 사회화, 방해 공작 및 기타 전복적 활동과 같이 자본주의에 대한 일상적인 노동계급의 저항으로 간주하는 활동에 주의를 기울인다. 

 

<사랑과 아나키> 속 아나키즘의 모습

1973년 리나 베르트뮐러(Lina Wertmüller, 1926~)가 감독한 <사랑과 아나키>(d'amore e d'anarchia)는 이탈리아 아나키즘의 특징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진=위키미디어

자율주의 운동은 노동계급에 임금을 받는 노동자(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모두)뿐만 아니라 무임금자(학생, 실업자, 주부 등)를 포함시킨다. 그들은 현대 사회의 부가 무책임한 집단 노동에 의해 생산되었으며, 이중 극히 일부만이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재분배된다고 주장한다. 그중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중요성과 무급 여성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다. 자율주의의 핵심 이론가인 네그리가 제자인 마이클 하트와 공저한 <제국>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다. 네그리는 1997년 자율주의 운동으로 인해 수배되었고 망명했던 동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돌아갔으나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가택 연금되었다가 2003년 4월에야 자유롭게 된 네그리는 말라테스타와 그람시를 잇는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상에서 네그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이탈리아 예술에서 아나키즘이 차지하는 몫은 크지 않다. 20세기 초엽 마리네티 등을 중심으로 한 미래파 운동이나 무솔리니의 초기 사상에서 아나키즘의 영향을 볼 수 있고 그것들을 우익 아나키즘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앞에서 보았듯이 이탈리아 아나키즘의 주류는 말라테스타나 노바토레를 비롯한 좌파 아나키즘이었고 그들은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대항했다. 

1973년 리나 베르트뮐러(Lina Wertmüller, 1926~)가 감독한 <사랑과 아나키>(d'amore e d'anarchia)는 이탈리아 아나키즘의 특징을 보여주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무솔리니를 암살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경찰에게 죽임을 당한 아나키스트 친구를 대신해 무솔리니를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주인공 투닌이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 파시즘에 대한 증오와 환멸, 죽음에의 공포, 임무와 사랑 사이의 갈등 등을 그린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나키스트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아나키즘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보여줄 뿐이어서 문제가 많은 작품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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