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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_『여공1970: 그녀들의 反역사』 김원 지음| 이매진 刊| 860쪽| 2005
논쟁서평_『여공1970: 그녀들의 反역사』 김원 지음| 이매진 刊| 860쪽| 2005
  • 김귀옥 한성대
  • 승인 2005.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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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익명적' 연구인가...계보학적 서술법 성공적

2003년 김원 선생의 상당히 두꺼운 박사학위논문을  밤새 읽으면서 받았던 모순적 감동과 혼돈을 잊지 못하는데, 마침 그 논문은 ‘여공1970: 그녀들의 反역사’라는 대작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책은 11개의 신화를 풀어헤치고 있는 장들, 양파처럼 섬세한 의미의 도구들로 겹겹이 에워싸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는 계보학적 방법론으로 신화에 접근하는 과정과 각 장이 쓰여진 배경, 저자 자신의 고민을 배치하고 있다. 그의 중심 주제는 지식인의 지식에 오염된 당위로서의 지식을 걷어내고 ‘여공’ 자신으로 서있게 하는 것이다.

한편 격론이 사라진 채, 개인의 아성만 쌓여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계에 김원은 혼신의 힘을 다해 글쓰기를 통한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말걸기는 10여년의 넓이와 깊이를 담은 탐구와 사색, 고민의 일기장 같은 개인적 기록을 올곧게 드러냄으로서 시작한다. 사실 노동사 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김원 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방대한 정보와 헌신적으로 수집한 기록으로 가득 찬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같은 초보의 엉터리 노동사 연구자조차 동경어린 시선으로 주옥같은 자료들을 퍼담기 바빴고, 선생의 수고에 미안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말 달랑 한 자 적어놓고 올 정도였으니까.

이름 없는 여공은 어디에?

그런데 요즘 우리 학계는 왜 이리도 조용한 것일까.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격정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다들 너무 바빠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쟁이나, 강정구 교수의 ‘통일전쟁’ 논쟁을 댓글 게릴라들과 선정성으로 황폐 일로를 가고 있는 언론에 내맡긴 채, 학계는 그들에게 공공영역을 스스로 내주고 있다.

그래서 비록 나는 결코 적당한 상대가 될 수 없지만, 김원의 말걸기에 다시 말걸기를 함으로써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싶다. 다만 나 역시 김원 선생과의 광의의 동업자임을 밝혀두며 다시 말걸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선 이 글이 전제하고 있는 계보학적 방법론의 정수로서 ‘여공’에 대한 익명적 지식이 과연 ‘익명적’이었고 이름 없는 여성들에 관한 지식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가이다. 저자가 익명적 지식으로 수집하고 정리한 지식은 이미 탈익명화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름 없는 여공’의 이름이 현재에 이르러 국회의원이나 오늘날 유력한 인사가 될 만큼 세상에 회자하는 새로운 권력이 되어 있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당대에도 민주노동조합의 지도자였던 점은 1970년의 여공을 저자의 희망대로 1970년에 세워 놓기는 쉽지가 않다. 저자는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모아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입장에서나 동업자의 입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이름 없는 여공’에 관한 지식이 어디에 있는가는 궁금할 따름이다.

다음으로 저자가 쓰고 있는 그 지식을 이름 없는 여공에 관한 것이었다고 인정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이미 그러한 지식은 기존의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차용되고 분석되었다는 점이다. 정현백의 ‘여성노동자의 의식과 노동세계’(1985)나 신인령의 ‘한국의 여성노동 문제’(1985), 박기남의 ‘여성노동자들의 의식변화 과정에 관한 한 연구-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1988) 등은 그런 여공들의 수기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쓰여 졌다.

또한 이 책에서 동원되어 있는 국가에서 발간하는 통계자료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 없이 차용되고 있는 점 또한 이름 없는 여공의 환경을 살펴보는데 커다란 한계로 남는다. 따라서 저자가 강조해 마지않는 이름 없는 여공의 익명적 지식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이름 없는 여공에 대한 저자 자신의 진정성이 담긴 접근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끝나지 않은 논쟁-여공의 투쟁성

다음으로 만일 저자의 이름 없는 여공에 대한 접근을 전적으로 저자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 전망에 맡겨둔다면 이제 남는 것은 해석의 익명성이다. 나는 이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열려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해석은 최근 노동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저작들과 많은 대화와 논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전순옥의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 刊, 2004)나 이원보의 ‘경제개발기의 노동운동 : 1961~1987’(지식마당 刊, 2004)이나 성공회대 노동사 팀의 ‘1960~1970년대 산업화와 노동자 정체성’(한울 刊, 2004)과 ‘1960~70년대 노동자의 작업장 경험과 생활세계’(한울 刊, 2005) 등과 함께 읽고 논해져야 한다. 김원의 저서는 그들 각각과 한편으로는 (경험의 차이는 논외로 하고) 해석의 탁월성과 자료의 진정성에 있어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보완하며 상생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하는 주제 가운데 가장 걸리는 것은 여공들의 투쟁성에 두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많은 연구들은 1970년의 여공들을 ‘투사’이거나, 정치의식이 부재하여 1980년대 민주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노동자로 그려놓았다.

나의 짧은 노동사 연구과정에서 만났던 수십 명의 1970년대 여공들에게 묻는 질문의 목록에는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때가 언제인가?”, “1970년대 노동자로서의 삶이 이후 자신의 인생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이 들어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0년대라고. 그 시절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라도 그 때는 자신의 청춘기였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십인십색이다. 그 중 비슷한 점을 끄집어낸다면 ‘종종 그 시절을 떠올리면 고통 속에서도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1980년대 폭압적 노동정책 하에서 부당해고 당해 임금은커녕 블랙리스트에 걸려 다시 노동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의 정신이 아로새겨진 ‘인간’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는 없었다고 한다. 비록 대부분의 1970년 여공들이 해방된 여성으로서는 고사하고, 노동계급이라는 인식마저 획득하지는 못했고, 간혹은 노동자였던 사실 조차도 감출지라도 그건 여공 개인의 잘못만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내가 발견한 여공 정체성과 김원 선생이 말하는 익명적 여공의 차이이다.

계보학적 글쓰기의 장점

마지막으로 계보학적 방법론에 따른 글쓰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다. 계보학적 방법론을 글쓰기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글의 진행 과정 자체를 계보학적 글쓰기로 수행할 때 저자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타자를 밝혀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 글쓰기의 경우 시간 전개의 순서대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됨으로써 결과지어진 사람과 사물만 좇기 마련이다. 그러나 계보학적 글쓰기는 현재로부터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사라진 사람과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부모의 혈통을 추적할 때 사라진 무수한 어머니, 아버지의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이 책에는 식모 이야기로부터 새마을, 종교단체, 노학연대, 여공의 타락한(?) 문화 등 중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이제 우리 학계가 진정 한국 학문의 자율성과 성찰성, 풍부함을 키우고자 한다면, 현재와 같은 냄비 끓듯 끓는 연구 분위기를 지양하고 무쇠 솥에 장시간 고아 깊이 우러난 학문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로 바꿔나가야 한다. ‘여공 1970년’과 같은 대작은 결코 가벼운 냄비에서는 나올 수 없다. 깊은 고민과 인간에 대한 깊고 섬세한 성찰과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는 무쇠 솥 같은 연구가 내일도 나와야 한다.

김귀옥 / 한성대·사회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정착촌 월남인의 생활경험과 정체성 : 속초 '아바이마을'과 김제 '용지농원'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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