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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는 감염병 사태의 주연 아니다”
“확진자는 감염병 사태의 주연 아니다”
  • 김재호
  • 승인 2022.04.0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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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국철학회 정기학술대회, 철학적 통찰로 팬데믹 분석
환자와 질병 분리 말고 개인의 자율권·주도권 확대하는 의료 체계 구축

환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걸쳐 있는 생물학적·실존적·사회적 존재로서 세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태다. 여 교수의 발표 「팬데믹 시대의 환자되기」에 따르면, 분자·원자는 병들지 않으며 질병을 앓는 것은 생명체만의 특권이다. 병듦은 세포에서 시작된다. 여 교수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질병과 인간의 신체 모두 자연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질병을 인간 자체로 간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질병은 실존적 차원에서 주체에게 의미를 발생시키는 사태이다”라며 인간의 존재적 측면도 살펴봤다. 실존적 측면에서 질병·환자는 이제 사회적 환자되기로 확장된다. 여 교수는 “환자가 된다는 것이 본인의 생물학적 기능이나 상태와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경우”라고 강조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인간의 실존적 측면, 즉 존재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 한국철학회의 학술대회에선 인간실존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논의했다. 중요한 건 사회적 존재로서 연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진=한국철학회

아울러, 여 교수는 환자됨의 주도권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환자(patient)’란 말은 ‘당하다, 견디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patior’에서 유래했다. 어원을 따져보면, 환자는 질병을 당하거나 견뎌내는 사람이다. 이는 환자됨의 절대적 수동성이다. 그런데 의학이 발전하면서 “환자가 질병에 대한 강력한 통제수단과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의료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관계의 수동성”마저 갖게 됐다. 하지만 환자와 질병은 분리될 수 없다. 코로나19 환자가 운반하는 바이러스는 전문의사들에 의해 추상화 한다. 그래서 여 교수는 환자 개인들이 자율권·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퍼전파자는 ‘감염연결점’에 가까워

강철 서울시립대 객원교수의 통찰 중 눈에 띄는 건 바로 코로나19 용어에 대한 문제점 제기다. 그는 「팬데믹 위기의 극복을 위한 철학, 니체」 발표에서 “감염병 상황에서 개인은 감염병 사태의 주연이 아니다”라며 “바이러스와 그 이동을 인식할 수도 따라서 통제할 수도 없다는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슈퍼전파자/확진자’ 대신에 ‘감염연결점’이라고 고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PCR 검사나 자가진단만으로 코로나19 확진여부를 알 수 있기에, ‘무증상 감염’이 아니라 ‘무자각 감염’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집단에 의해 수직적인 명령적 방식의 발화를 극복하기 위해 강 객원교수는 위와 같이 코로나19 용어들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전문가 집단을 왜 신뢰하는가

최훈 강원대 교수(자유전공학부, 철학)는 「팬데믹 시대의 의견의 불일치와 전문가 신뢰」를 발표했다. 의학·보건 등 전문가 집단을 왜 신뢰해야 하는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때 어느 쪽을 신뢰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는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신뢰해야 하는데, 신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하게 알아야 한다는 딜레마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시민들이 전문가를 따르는 건 ‘인식적 신뢰’가 있어서다. 효용성의 측면에서도 각자의 논리적 추론보다 전문가 신뢰가 낫다. 최 교수는 “전문가에게 의존한다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인식적인 자율성의 영역”이라며 “비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전염을 막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인식적 책임이 따른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그 책임은 스스로의 경험이나 비전문가가 아닌 전문가에 의존해야 한다는 책임이나, 의견이 충돌하는 전문가 중 더 신뢰성 있는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책임을 포함한다”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 허구설과 백신 거부 운동 등은 과연 어떤 전문가를 신뢰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당의 주술이나 비법보단 반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의사들을 더욱 신뢰한다.

전문가들끼리의 의견 불일치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는 지구 온난화 허구설과 백신(COVID-19 백신 이전의 주로 MMR)을 둘러싼 거부 운동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의료인 연합(가칭)’이라는 단체가 “코로나19 백신 의무접종 법안에 반대한다”라는 의료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의료인 19명 중 7명만 의사였다. 나머지는 치의사와 한의사였다.

심지원 동국대 교수(철학과)가 강 교수의 발표에 대한 논평에서 전문가 기준을 정리했다. 첫째,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지 판단해야한다. 둘째, 메타 전문가나 메타 기관에게 호소한다. 셋째, 해당 전문가의 주장이 동료 평가를 받는 학계 내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밖에서 이루어지는지 평가해야 한다. 넷째, 편향된 서비스나 누리집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출처에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정치사회 제도에서 공개된 진술(exoteric)은 전문 지식의 영역 밖에 있는 지식으로 비전문가가 접근 가능하게 짜여야 하며, 비전문가는 공개된 진술을 통해서 누가 대화적 합리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여섯째, 과거의 실적을 고려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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