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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오늘의 페루, 현대의 시지프 신화
[글로컬 오디세이] 오늘의 페루, 현대의 시지프 신화
  • 최명호
  • 승인 2022.04.06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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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최명호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오른쪽) 탄핵안이 발의됐으나, 끝내 부결됐다. 카스티요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본인의 탄핵과 관련해 의견을 밝혔다. 탄핵을 주도한 야당 대표 인물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왼쪽)다. 게이코는 지난해 6월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0.26%p 차이로 낙선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왼쪽), 페루 국회(오른쪽)

2022년 3월 그 자체로 시사적인 뉴스가 페루에서 흘러나왔다. 좌파 성향으로 알려진 현 카스티요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고, 일본계 대통령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사면되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의 경우 지난해 대선까지 3회에 걸쳐 결선까지 진출했고, 8개월 전인 지난해 대선의 경우 0.26%p 차이로 낙선하기도 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상징하는 것은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로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입각한 정부 규제 축소와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자본시장을 비롯한 시장 개방을 통해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꾀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라틴아메리카식 신자유주의 개혁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2021년 당선되어 지금까지 약 8개월 동안 집권한 카스티요 대통령은 페루 북부 오지라 할 수 있는 까하마르까 출신의 원주민 혈통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선택된 대통령이다. 이는 현재까지 지속해온 신자유주의 노선의 변화를 페루 민중이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후지모리의 가석방은 변화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프레비시 관점에서 바라본 라틴아메리카 정세

라틴아메리카는 세계 정치경제 구조를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로 해석하는 종속 주의 혹은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인 수입대체 산업화(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sation)라는 전략을 마련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관계를 국제관계에 적용한 것으로 라울 프레비시가 대표적 학자이며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 등이 주장한 제국주의 이론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수입대체 산업화의 주체가 정부였으며 정부 주도로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면에서는 케인스주의의 라틴아메리카식 변형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근대화 이론 혹은 근대화 발전이론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물론 1980년대 제3세계 부채위기와 1990년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지속적 경기침체는 종속 이론과 수입대체 산업화에 기반한 발전 전략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효율성의 문제, 경제 분야의 관료주의는 주요 비판 대상이 되었다.

현재 기준으로는 결국 실패한 전략이었다는 데에 그리 이견이 없다. 수입대체 산업화는 경쟁력 없는 자국의 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모멘텀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과 유럽 선진국과 우리나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 국내 복귀 기업 지원제도)과 구조적인 비교를 할 수도 있다.

초기 프레비시가 주장한 가설은 당시 혹은 현재 국제무역은 ‘주변부’인 원자재 생산 및 농산물 생산에 특화된 국가들과 공산품을 판매하는 ‘중심부’국과 사이의 불평등한 교역이 존재하고 원자재의 가격은 장기적 관점에서 공산품과 비교해 하락하기 쉬웠다. 이런 관계가 지속될 경우 주변부 국가는 수입품 양을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원자재를 수출하게 되고 이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초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국가 주도 산업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상의 해석에 대해서는 2022년 현재 공급 문제로 인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대안은 사실 대공황 및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주도 경제 발전을 꾀한 케인스주의 정책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뉴딜정책으로 실체화된 케인스주의가 무너진 것과 같은 시선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포스트 판데믹 시대에 다시 호출되는 정부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식 국가 주도 발전계획이었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의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

유엔 중남미-카리브 경제위원회(영어로 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ECLAC- 스페인어로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 CEPAL, 이후 CEPAL로 표기)에 의하면 1945~1972년까지 라틴아메리카 주요 여섯 개 국가(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우루과이)의 제조업 분야 경제성장 규모는 농산물을 비롯한 원자재 수출의 2배 정도였다고 한다. 적어도 1972년까지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이후 베트남전과 닉슨 쇼크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진 세계사의 흐름은 라틴아메리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의 실패를 라틴아메리카의 내재적 요인으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외환위기는 사실, 2019년 사망한 전 연준(Fed) 의장 폴 볼커의 이자율 인상과 관련이 있다. 1980년 21.5%까지 이자율이 올라갔고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는 미국에 차관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기에 이자율 인상은 부채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자율이 20% 이상이면 3년 반 정도면 원금이 2배가 되고 이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막지 못하게 되면 모라토리엄 혹은 디폴트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 1998년 국내 IMF 위기와 2009년 그리스 부채위기를 기억해보면, 위기에 자국의 화폐 가치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알란 가르시아 임기 말에 6,000%였던 인플레이션이 1990년 선거 시기에 가라앉는 듯 보였으나 후지모리 당선 후 13,000%까지 올라갔다. 출처=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알란 가르시아 임기 말에 6,000%였던 인플레이션이 1990년 선거 시기에 가라앉는 듯 보였으나 후지모리 당선 후 13,000%까지 올라갔다. 출처=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카스티요 탄핵 부결, 페루의 혼란은 현재 진행 중

사실 이전까지의 내용은 지금 소개할 페루 전 대통령을 소개하기 위한 서문이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전임 대통령은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으로 1924년 창설된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 APRA)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다.

APRA는 사민주의적 성격과 페루 특유의 원주민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도좌파 성향의 집단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족주의적 성향의 자주파 출신 대통령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85년 당시 36세의 젊은 대통령으로 당시에도 문제가 되던 외채 문제를 수출로 벌어들인 돈의 10%만 채무 변제에 사용하는 부분적 모라토리움을 실시하는 등 페루 내부 관점에서 유연한 정책으로 한때 9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경제 성장률 또한 1986년 기준 9%에 이르기도 했으나 외채 압박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87년에 은행 국유화 조치를 취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오히려 투자부적격으로 분류되어 외국인 직접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연쇄적으로 페루 화폐 가치는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은 치솟아 임기 말에는 8,000%까지 오르는 등 경제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인물이 후지모리였다. 가르시아 전 대통령과 카스티요 대통령이 상징하는 것과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게이코가 상징하는 정치이념은 아주 강렬하게 대조되는 듯 보인다. 엄밀히 보면 서로 대결 구도라기보다는 비판적 협조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과 후지모리 대통령의 관계는 정권 중기까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후지모리는 가르시아 대통령의 2기 집권기에 친미적인 모습도 보이며 당시 핑크 타이드의 중심 국가였던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를 비판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과거가 반복될 기미가 꽤나 보인다는 것이다.

1963년 라울 프레비시의 비판적 성찰은 결국 카스트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심각한 불평등 사회구조’였다. 중산층이 다수인 안정적인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레비시는 단언한다.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광산업계 종사자들과 플랜테이션 농업 관계자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이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경제구조 개편에 동의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하면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주의적 산업 부르주아 층이 등장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산의 격차가 있는 상황이라면 소득을 기준으로 한 부의 분배와 재분배가 아무리 이루어진다고 해도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피케티의 연구가 보여준 결과다. 이를 국가 간에 적용해본다면 종속 이론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미 연준은 이자율 인상을 예고했고 공급망의 문제로 인해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 압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떤 면으로 베트남 전쟁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이미 리터당 2천 원을 넘었다. 흡사한 상황이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현재 페루의 상황으로는 그리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페루 국회에서 카스티요 대통령 탄핵안이 찬성 55표에 그치며 부결됐다. 아마도 페루의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명호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스페인어문학과로 석사학위를 마친 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멕시코 시몬 볼리바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신화에서 역사로 라틴아메리카』(이른아침, 2010), 『멕시코를 맛보다』(산지니,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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