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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개인화될 수 있는 개인
탈개인화될 수 있는 개인
  • 강수미 미술평론가
  • 승인 2005.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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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배종헌 展(목인갤러리, 11.2~15, 인사미술공간, 11.2~20,)

▲'석가탑, 다보탑, 그리고 분황사 모전 석탑으로부터', 사진 위에 아크릴릭 라인드로잉, 2005 ©

S-B-청계천-변방-유물, 이는 작가 배종헌이 자신의 미술로 다룬 주제이자 그가 관찰한 현실의 대상들이다. 이렇게 늘어놓은 목록만으로는 쉽게 어떤 주제를 어떠한 시각으로 어떻게 미술 작품화했다는 것인지 작가 자신이 아닌 이상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내적 자율성’인데, 이 때 ‘내적 자율성’이란 미술이 스스로 규정한 문법 속에서 창작되고 작가 혹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과만 폐쇄적으로 소통한다는 비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배종헌의 작업 또한 일견 그렇게 와 닿을 것이다. ‘S’나 ‘B’와 같은 문자 기호를 내세우거나, ‘변방’이나 ‘유물’과 같이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역을 표방하니 제목만 보고는 구체적 형상물을 떠올리기 힘들다.

그러나 점차 세계미술의 담론 유행에 편승해 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에서 배종헌의 작업만큼 구체적인 현실생활에 기반 해서 시각적 형상물을 길어 올리는 작업도 드물다.

그는 예컨대 센티미터까지 표기된 줄자가 아니라 자기 몸의 보폭이나 팔 길이로 자신이 전시할 공간을 측량하고, 그 과정 자체를 작품화한다.(S는 그 전시장 이름의 이니셜이다) 또 자신이 매일 끼니때마다 사용하는 밥공기와 국 대접을 “문화사적인 관심에서부터 크기며 형태, 성분 따위를 분석하는 등 내 나름으로 이러저러한 탐구를 해보자는 심사”로 더듬어 멀쩡한 과학적 자료처럼 제시한다.(B는 당연히 ‘밥’의 이니셜인가?)

그런데 작가에게 전시할 공간과 작업할 자신의 몸뚱이만큼 구체적 현실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 육신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섭생이 필요하고 밥과 국을 담는 그릇이 그 일반적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여기까지 배종헌의 작업은 사적으로 “노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첫 번째 예에서 작가의 놀이 너머 우리가 관념이 아닌 몸과 공간의 현상학적 만남을 얘기할 수 있고, 두 번째 예에 우리가 각종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론(전제된 진리의 의심, 작은 내러티브, 픽션과 논픽션의 혼성)을 대입해 볼 수 있다하더라도 그렇다. 말하자면 이때까지 배종헌의 미술은 작가가 표현하듯이 “제자리에서의 여행”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사물에 대한 몸의 지극한 관찰의 방법론은 유지하되, 점차 그 대상이 나, 너, 우리의 사회적 현실로 나아가고 있다.

배종헌의 작업이 사적으로 노는 것에서 사회적 문맥으로 확장된 분기점은, 지난 2003년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청계천 프로젝트-물 위를 걷는 사람들’전에 출품한 ‘청계천변 멸종위기 희귀생물 도감’인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은 당시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될 즈음에 맞춰 2005년 현재는 사라져 버린 청계천 삶의 복잡다단한 현장을 조망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 배종헌은 마치 인류학자처럼 청계천 뒷골목을 탐사해 주운 각종 넝마들을 가져다 그 버려진 사물들이 생물인양 도감화한 작품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잡초-오천고 가는 길', 112×112.5cm, 함석에 아크릴릭, 2005 ©

예컨대 이 도감에서, 누군가 버린 누더기 텔레토비 인형은 “텔레투비스”라는 학명을 부여받고, 출토장소(주운 곳)와 추정용도가 표기된 목록 표와 함께 박물관용 유리 진열장에 전시되는 식이다. 일견 어린아이의 전문가 흉내 놀이처럼도 여겨지는 이 미술이 사회문제를 환기시키는 힘을 갖는 이유는, 청계천이 복개-복원으로 부침한 역사의 공간이라는 것과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이 짧은 생명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작품이 유머 속에서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이로써 배종헌은 자신의 사적 발화형식으로 공적 담론을 담기 시작했으며, 미술의 내적 침잠이 아니라 대중적 공감을 가능케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나는 탈개인화될 수 있는 개인의 미술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번 인사미술공간과 목인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 배종헌의 개인전은 앞서 언급한 배종헌만의 미술 방법론과 내용의 지평 속에서 보면 연속성을 갖는다. 목인갤러리 개인전의 제목을 작가는 ‘시간의 스펙트럼-유물 프로젝트’라 붙였는데, 배종헌의 청계천 작업을 알고 있다면, 여기서 ‘유물’이 박물관의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사적으로 발견한 현대의 폐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가가 일신상의 변화로 경주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유물-폐품’을 채집하는 공간이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21세기 메트로폴리스에서 수행했던 작업이 천년고도로 변경된 것인데, 맞춤하게도 그 곳이 경주인 한, 작가의 유물 프로젝트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시간의 스펙트럼까지 비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서는 도시의 산중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송전탑이 다보탑과 유비될 수 있으며, 슈퍼에서 산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 신라시대 무관의 칼과 대비되어 시간의 자장을 넓혀 줄 수 있다.

앞서 작가의 일신상의 변화를 슬쩍 언급했는데, 그는 서울에서 작가로 활동 하다가 2004년 위덕대 미술학부 교수로 임용되어 경주로 내려갔다. 작가의 일신상 변화를 이리 자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 변화가 인사미술공간 개인전 ‘변방으로의 욕망-잡초프로젝트’전의 골간이며 서사이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굳이 재론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배종헌은 그 곳에 재직하면서 ‘변방’과 ‘잡초’의 감각을 배웠으며, 그것들에 주목하게 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자꾸 보인다. 길모퉁이의 잡초들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말하자면 지방대의 변방적 위치와 거기서도 끈질기게 커나가는 미술에 대한 욕망을 비로소 자신의 몸이 그 상황에 거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의 면면에서는 작가 배종헌이 교수로서 고등학교에 대학을 홍보하기 위해 다녔던 고단하고 복잡한 변방 길과, 그러나 그로부터 어떤 질긴 잡초의 힘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힌다.

따라서 우리가 배종헌의 미술에서 보는 것은 작가 개인의 몸의 실천이 서사가 되고, 그것이 사적인 이야기 너머 동시대 사회의 담론으로 혼융되는 스펙트럼이다.

강수미 / 홍익대·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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