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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에도 '名物' 있다…양월강좌 23년 이어와 1백회 맞아
한양대에도 '名物' 있다…양월강좌 23년 이어와 1백회 맞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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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문, 학풍 고민하는 '25時祭' 제안

▲강신표 교수 ©
계명대의 명물이 철학과가 25년간 진행해온 '목요철학세미나'라면 한양대에는 인류학과가 23년째 해오고 있는 '양월강좌'가 있다. 이 양월강좌가 올해 1백회째를 맞았다. 1백회째의 강의는 지난 9월 7일 팔레스타인의 작가이자 저항운동가인 아이샤 오우다가 맡았다.

강신표 교수가 1983년 주도해서 만든 이 양월강좌는 학과에서 소규모로 진행해온 학술특강 및 세미나로서 그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도, 우리 학문의 존재이유와 인류학의 최신이론과 연구를 발빠르게 소화하는 역량을 갖추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1983년 첫회를 출범시키면서 강신표 교수의 '한국전통문화의 오늘', '한국사회와 문화변동', '대학의 역사와 학문풍토'로 기본 오리엔테이션을 치렀고, 이듬해부터 조동일, 김열규, 이성무, 최동식, 박병호, 김병모 등의 외부학자들의 특강, 해외 학자로는 안토니 루이슨, 케이스 하워드, 리폰스키, 리요단, 토마스 라일리 등 십수명이 연사로 초청되었다. 방송국 다큐멘타리 PD, 언론사 문화부장 등도 초청되어 강연했다.

공간적으로 폴란드, 독일, 영국, 미국, 모로코, 중동, 터키로부터 가까이는 중국, 일본,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망라했고, 학문 내용도 문화인류학, 고고학, 민족학, 민속학, 역사학, 종교학, 법학, 지역학, TV 다큐멘타리 제작 등 다양했다.

또한 양월강좌는 철학이나 역사와는 달리 그 연치가 짧은 학문으로서 인류학이 한국 대학에 확고히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석학들이 와서 최신 연구들을 쏟아놓고 간 것도 그렇거니와, 그 자리에 학계의 인사들이 초청되어서 학생들과 함께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23년간 이어져왔다는 것 자체가 온축하고 있는 역량이 얼마일지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양월강좌'가 주축이 돼 한양대에서 지난 1992년 '제1회 대학·학문·학풍 25시제'가 열렸다는 점도 뜻깊게 회고된다. 이것은 25시간 연속으로 세미나와 국악 판소리, 시낭송, 무당굿 등으로 진행되는, 마치 원시시대의 발라드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축제성 학술행사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팜플렛에 인쇄된 인사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대학의 본질인 학문과 학풍이 없고 죽었다.…이에 한양대 안산캠퍼스의 선생과 학생은 25 시간 동안 계속해서 대학과 학문과 학풍을 생각하고 반성하며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 …1992년 11월 6일을 11·6 대학혁명의 날로 선포하고자 한다."

비장한 각오와 순수한 열정으로 행사가 준비되었음을 충분히 짐작케하는 인사말이다. '대학이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에 대해 △교수와 학생문제 △환경문제 △지역사회의 공헌 △사회문제의 문화.학제적 접근 △예술문화 △공과교육의 효율화와 개선방향 △여성학 등에서 발제를 하고 패널토론을 한 뒤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을 골격으로 세미나가 진행됐고, 대학·학문·학풍이 무엇인지에 대한 원로들의 강의가 양념처럼 중간중간 끼어드는 이날 행사의 팜플렛은 오늘날 천편일률적인 학술대회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10월 25일 강신표 교수가 이 '25시제'를 부활시키자는 제안서를 안신원 교수에게 보냈다는 점이다. 이 제안서에서 강 교수는 △나는 양월강좌 100회를 초청받아 이 기회를 제1회 대학 학문 학풍 25시제 (1992년 개최, 제2회는 한양대 안산 학생회에서 개최하였음)를 부활시키는 것과 연계한다. △이는 한양대 안산캠퍼스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풍을 진작하고 학생들의 자부심을 고취하는데 일조가 되게 한다. △25시간 연속으로 세미나와 국악 판소리, 시낭송, 무당굿 등으로 진행된 제1회 행사의 포맷을 기본으로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기조강연 신영복(성공회대학 대학원장) “나의 대학시절: 인간, 사회, 역사, 학문” △김병모, 조흥윤, 정병호, 이희수 등의 주제 강연, 2시-6시. △ “대학 학문 학풍을 어떻게 진작 시킬 것인가”라는 주제로 참가학생들과 토론, 강신표 사회 및 진행, 저녁 8시~10시. △다음날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성호 이익 선생과, 상록수 최용신의 묘소를 찾아다니며 이 분들의 가르침인 '실학과 계몽'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성찰하고 토론.

강신표 교수는 1백회를 기념하는 특강문에서 "초정밀 현대 컴퓨터는 전자회로 판에 0.002미리의 미세한 나노 차원의 먼지로 기계가 작동을 멈춥니다. 인간의 두뇌는 어떤 초정밀 컴퓨터보다도 더 정밀한 조직이라고 합니다. “지금·여기”의 짧은 시간과 작은 공간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이 “번뇌·망상”의 작은 티끌로 작동이 멈추면, 이는 곧 이어 다음, 다음으로 축적되어 결국 퇴화되고 맙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맑게 닦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강 교수는 "우리가 대학 다닐 때 다른 대학의 좋은 선생의 강의를 청강하러 많이 다녔습니다. 예를 들면 동국대학의 양주동(국문학) 선생의 강의를 들으려 서울대학 학생들이 찾아갔습니다. 불문학자 손우성 교수 강의를 청강하려 성균관대학으로 찾아갔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으로 경기, 서울, 용산, 경복, 사대부고 학생들과 어울려 서울 사범대에 계시는 김기석 교수(前 김일성 대학교수로 월남하신 분)님 댁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공부는 학생들 사이에서 “홀로”와 “더불어”하는 것이지,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라며 찾아다니는 '尋學'을 주문하기도 했다.

과연 1백회째를 맞은 '양월강좌'가 이런 老 교수의 제안대로 새롭게 설계되어 대학, 학문, 학풍을 고민하는 자리가 될 수 있을 지 자못 기대된다.

****陽月은 한양대학의 陽자와 반월의 月자를 합한 개념으로 음양의 조화개념으로 만든 것이다. 태양의 陽과 달의 月자를 합한것으로, "반월로 온 학생들이여, 만월로 가자!"는 뜻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1992년에 열린 제1회 25시제 팜플렛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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