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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과학기술’ 전담기관이 아니다
대학은 ‘과학기술’ 전담기관이 아니다
  • 이덕환
  • 승인 2022.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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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고등교육 정책
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육부 역할·기능의 축소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교육’을 ‘과학기술’에 통합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은 어떤 경우에도 대학이 포기하거나 왜곡시킬 수 없는 핵심이다.”

이덕환 논설위원

윤석열 인수위원회에서 교육이 사라져버렸다. 과학기술교육분과의 인수위원 3명이 모두 과학기술 전문가들이다. 교육부 관료를 포함해서 3명의 전문위원이 위촉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던 교육이 대책 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대학에서의 고등교육이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 양성과 기초·원천 연구개발에 압도되어 통째로 무너져버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사실 윤석열 당선인의 화려한 공약집에서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AI 교육의 강화, 교사 업무부담 경감, 학습권 보호에 대한 선언적 구호가 고작이다. 나머지 교육 공약은 대학의 직업·평생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실무중심의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미래 지향적 대학 발전 생태계를 조성해서 과학기술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모든 국민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생애단계별 직업능력과 경력 개발을 지원한다. 중소기업 맞춤형 직업훈련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기다리고 있는 교육 현실은 암울하다. 민주화 이후 교육은 더 이상 국가백년대계가 아니었다. 강한 이념적 성향을 내세웠던 단임 정권들이 저마다 교육을 쥐고 흔들었다. 이념과 포퓰리즘에 포획된 교육은 지향점을 상실해버렸고, 교육정책은 누더기가 돼버렸다.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강요하던 교육은 느닷없이 등장한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구호에 밀려나버렸고, ‘창의’와 ‘창의·인성’이 격하게 충돌했다. 과연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의 습격에 무너져버린 공교육을 되살리는 일은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의 ‘반값 등록금’과 ‘역량평가’에 짓눌렸던 대학의 현실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의 재정은 파탄지경에 빠져버렸다. 그동안 구명줄이라고 믿었던 교육부의 대학지원 사업은 온전하게 썩어버린 동아줄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학령인구 절벽에 길을 잃어버린 전국의 사립대학들은 벚꽃 피는 순서에 따라 문을 닫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당장 7월에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한다. 임기 2년의 위원 21명으로 구성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은 막중하다. 공교육의 비전, 학제·교육 정책, 대학입시 정책을 모두 결정해야 한다. 심지어 학급당 적정 학생 수를 정하고, 초중등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국가교육위원회의 몫이다. 그런 국가교육위원회를 아무 대책 없이 출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초중등 교육의 시도교육청 이관도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교육부 역할·기능의 축소는 필연이다. 교육부 폐지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교육부 폐지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19대 대선에서부터 목청껏 외치던 핵심 공약 사안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교육부 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다. 교육부와 과기정통부에 분산되어 있는 대학의 연구·혁신·평생교육 기능을 통합해서 부총리급의 ‘과학기술혁신전략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위 분과의 명칭에 따라 ‘과학기술교육부’가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렇다고 ‘교육’을 ‘과학기술’에 통합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뼈아픈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학을 과학기술 전담 기관으로 전락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은 어떤 경우에도 대학이 포기하거나 왜곡시킬 수 없는 핵심이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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