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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카타리나, 교황을 움직인 여성의 리더스피릿
시에나의 카타리나, 교황을 움직인 여성의 리더스피릿
  • 양정호
  • 승인 2022.03.31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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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④_양정호 장로회신학대 조교수
그림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그린 「성 카타리나」. 사진=빈 미술사 박물관
그림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가 그린 「성 카타리나」. 사진=빈 미술사 박물관

1970년 10월 4일에 교황 바오로 6세는 시에나의 카타리나를 교회 박사이자 이탈리아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아빌라의 테레사에 이어 교회 박사로 선포된 두 번째 여성인 카타리나는 ‘일치의 박사’라는 호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녀가 ‘일치의 박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이주해 있으면서 프랑스 왕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시기, 이른바 ‘아비뇽 유수’ 기간 중의 마지막 교황인 그레고리 11세에게 편지를 보내어 로마의 주교좌를 아비뇽에서 다시 로마로 옮기도록 호소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이후에 두 명 이상의 교황이 난립하면서 진행된 ‘서방 교회의 대분열’이 시작될 때 아비뇽에서 선출된 대립 교황을 반대하고 그레고리 11세의 후임자이며 로마에서 선출된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우르반 6세를 지지한 것 때문이다. 이에 카타리나를 교회의 박사로 선포한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 4월 30일 성녀 카타리나 축일에 있었던 수요 일반 알현에서 다음과 같이 카타리나의 업적에 대해 치하했다.

“(아직 40대이던) 프랑스 출신의 젊은 교황 그레고리 11세, 건강이 좋지 않고 마음이 약한 그를 설득해서 아비뇽을 떠나게 한 사람은 바로 카타리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레고리 11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 대립 교황 클레멘트 7세의 선출로 시작된 ‘서방교회의 대분열’의 첫 번째 중대한 사건에서 그레고리 11세의 후임자였던 우르반 6세를 지지한 것도 카타리나입니다.”

바오로 6세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카타리나의 편지글이 교황을 움직여 ‘아비뇽 유수’를 끝냈다는 점에서 일치의 박사로, 서방교회의 대분열 기간에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카타리나가 그레고리 11세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그녀의 나이가 아직 30세가 채 되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이다. 과연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남성 중심의 중세 교회와 중세 사회가 부과했던 제약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과연 어떠한 이유로 20대 여성이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위를 통해서 교회 정치에 직접 참여했을까? 또한, 이러한 참여가 교회사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의 세 가지 질문들은 ‘어떻게 20대의 젊은 여성이 교황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대 여성이 40대의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고, 교회 정치에 관여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을 주목해 본다면 리더십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인 존 맥스웰은 리더십의 본질을 ‘영향력’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카타리나가 교회 정치에 참여했던 일과 관련해 여성의 리더십을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리더십’에 대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리더의 역할, 리더라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을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카타리나의 경우에는 리더의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카타리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세 여성의 경우 수녀원장을 제외하고는 리더의 역할을 맡지 않았다. 따라서 중세 여성을 연구할 때 ‘리더십’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때 유용한 개념과 용어가 ‘리더스피릿’이다.

‘서양 중세 여성’을 연구하다 보면, 비록 그들의 직책이 ‘리더’의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영향력이 실제적인 ‘리더’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여성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그들의 영성에 있다고 할 때, 특별히 카타리나가 보여준 영성은 리더의 역할이 교황이나 주교 등과 같은 교회 내에서의 포지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오히려, 리더로서의 스피릿 또는 리더의 정신과 영성이 리더십의 본질 그리고 역할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수도 생활을 하는 카타리나가 교황에게 편지를 보내어 교황청을 아비뇽에서 다시 로마로 옮기도록 역할을 한 것은 리더스피릿을 발휘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카타리나가 보여준 리더스피릿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그녀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가 속해 있었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녀가 속해 있었던 국가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기반인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었다.

모든 리더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애정을 가지고 그 공동체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리더가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리더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정체성의 토대가 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카타리나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영성으로 영향력을 발휘해 실제적인 리더인 교황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리더스피릿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정호 장로회신학대 조교수

중세 여성 영성을 전공했으며, 미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교회 협동목사로 있으며, 공저로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여정』(한국장로교출판사, 2018), 역서로는 『기독교 인물 사상 사전』(홍성사, 200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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