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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칼럼: 프랑스 폭동은 ‘국가의 실패’…분배문제 경종 울려
해외통신원 칼럼: 프랑스 폭동은 ‘국가의 실패’…분배문제 경종 울려
  • 이충훈 미국통신원
  • 승인 2005.1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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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평등·박애의 기치를 내걸었던 프랑스 혁명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근대 국가형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종종 간과돼왔다.

프랑스 혁명과 공화주의적 이상에 공감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혁명 내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이후 반혁명 세력에 의해 프랑스인과 동일하게 처형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길게는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최근에는 아프리카계 이주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외국인들이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20세기를 풍미했던 프랑스 지성계의 ‘타자’에 대한 고민 역시 이런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알제리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면 샤르트르의 철학은 불가능했을 터이고, 푸코가 이란 혁명에서 그의 철학의 가능성을 발견했었다는 건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심지어 이주자들이 없었다면,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주자들의 집단행동은 이런 의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타적인 민족개념에 기반해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해왔던 이웃 독일과는 달리, 공통된 공간에서 어떠한 인종이든 상관없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공화주의적 이상에 기반한 시민권 개념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가, 더군다나 유럽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오랜 이주자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건 어쩌면 대단히 역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역설은 우리의 시선을 잠시 동안 만이라도 이주자로부터 떼어내지 않는 한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더욱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온 아랍계 이주자들이다. 물론 이들은 이미 1세기 전에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자들의 좀더 정확한 기원은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아랍계 이주노동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이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이중적 고통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이주자로서 이들은 인종적 편견, 문화 종교적 차이, 언어적 어려움, 시민권 문제 등을 겪어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로서 이들은 상대적인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이주자 공동체의 게토화 등에 시달려야 했다. 전자의 문제가 인정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의 문제는 분배와 좀 더 밀접하게 관련돼있다.

그간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주자들의 인정의 문제가 활발히 제기됐다. 이슬람 사원 문제에서 여학생들의 스카프 착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정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가 제기됐고, 이주자들의 인정투쟁과 더불어 심지어 의회에서도 이 문제들이 심각하게 다뤄졌다.

물론 프랑스 국가 종교였던 가톨릭의 제도적 유산과 공교육 체계, 그리고 르펭을 필두로 한 극우파의 공세 등으로 인해 많은 인정의 문제가 여전히 산재해 있긴 하지만, 유럽의 어떤 국가에 비해서도 이주자들의 인정의 문제와 투쟁에 포괄적으로 접근해왔으며, 세계의 다른 이주 국가들에 견주어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논쟁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주노동자들의 또 다른 측면인 분배의 문제는 종종 공적 관심에서 배제돼왔다. 1980~90년대를 통해 나타난 복지국가의 쇠퇴, 신자유주적 경제 모델의 전세계적 확산은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비스산업으로의 산업구조의 재편, 비정규직의 증가, 이에 따른 이주 노동자들의 실업의 증가와 복지 혜택의 축소는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도 계급적으로 하층을 구성하고 있던 이주 노동자들의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그 공동체를 게토로 만들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의 프랑스에서의 이주자들의 집단행동은 이주자로서의 인정투쟁이라기 보다는 노동자와 도시 빈민으로서의 분배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주자들의 집단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한 측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이주 노동자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인정과 분배, 모두의 문제가 포괄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에서의 이주자들의 집단행동은 분배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종의 센서로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로, 이주노동자들이 경종을 울리게 된 것은 국가의 실패 때문이지, 이주노동자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 초빙제도, 이전 사회당 정부의 도시계획, 복지국가 정책의 후퇴, 신자유주의적 정책, 노동의 유연화 등 이 모든 것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 분배 문제에 관하여 집단행동을 하게 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센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충훈 / 미국통신원·뉴스쿨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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