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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 김병희
  • 승인 2022.03.2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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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취업을 하게 됐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제자의 떨리는 목소리는 우리를 기쁘게 한다. 축하의 덕담을 하나 싶더니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라는 당부의 말을 어느새 전하고 있으니, 불현듯 스승인가 꼰대인가 하는 생각도 스쳐가지만 이런 자책마저도 기쁨 아니랴.

봄이 오는 캠퍼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돼 대면 강의를 시작하자 캠퍼스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조잘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것이 정녕 대학이다. 소리 없이 고요했던 그곳은 대학이 아니었다.

봄날의 따스한 숨결.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는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 햇발이 삐죽 나와 인사하는 그 잠깐의 순간은 우리를 기쁨에 들뜨게 한다. 아기들 잇몸에 이가 솟아나듯 고목에도 파릇파릇 새 순이 돋고 있다. 봄날 정오의 한 순간은 너무 찬란하다. 그 순간이 곧 끝날 것 같아 불현듯 다급한 헛헛함이 몰려온다.

그런 마음도 잠깐, 오후 4시가 되면 술집으로 불러낼 친구들 얼굴이 스쳐간다. 아무 용건도 없지만 불러낼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또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투고한 논문에 대해 ‘부분 수정 후 게재’라고 판정한 학술지 편집위원회의 메일을 여는 순간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연구 기획, 자료 수집, 통계 분석, 논문 작성, 투고 및 수정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숱한 고뇌의 터널을 얼마나 많이 지나왔던가. 출판사로부터 저서 원고의 첫 교정지를 받은 다음 빨간 펜으로 다시 깁고 꿰매며 수정하는 순간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어떤 아류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식 생산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마저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글씨 쓰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은 다르다. 글씨 쓰는 사람이 남의 글을 베끼는 서경(書耕)에 가깝다면,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남의 학설을 인용만 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역할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쁜 일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자식만 있지만, 우리는 책이나 논문 같은 ‘정신의 자식’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또 우리를 얼마나 들뜨게 하는가. 그 보람은 어떤 성취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며, 도서관에서 미지의 독자들과 만난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제자들이 보내오는 안부 문자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실무에서 막히는 게 있어서 여쭤보려고요.” 학생 때는 “물어보려고요” 하던 녀석이 어느새 이토록 여물었나 싶고, 졸업 후에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줄 수 있다니 이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한다. 간혹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제자가 선생을 다시 찾아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파릇파릇 새 잔디가 솟아나는 광경을 보며 겨울은 결코 봄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되니, 파릇파릇한 탄생의 냄새가 코끝을 스쳐가는 순간을 어찌 하릴없이 그냥 놓칠 수 있겠는가.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패러디해서 대학 사회의 기쁜 순간을 짚어보았다. 이 수필은 1953년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처음으로 실린 이후 1981년판 교과서에서 사라질 때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대학 사회의 혜택이 비단 이뿐이겠는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찾아보면 캠퍼스의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찾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찾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대학 사회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도 많으니,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과의 사이에서 어떤 시각을 갖느냐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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