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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자기 선전'은 자제해 주세요"
"알맹이 없는 '자기 선전'은 자제해 주세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5.1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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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잇는 대학가 ‘강연 정치’ 이대로 좋은가

정치인들의 ‘특강 투어’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차기 대권주자들의 대학 특강형식을 빌린 경쟁적인 ‘강연 정치’는 의례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대학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과 대학에서도 묵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점이다.

최근 차기 대권주자들의 지역 순회 코스에는 어김없이 대학 특강이 이뤄진다. 젊은 지지층이 취약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 6월 경북대의 한 학생단체의 초청으로 특강을 한데 이어 최근에는 ‘블루오션 정치’를 내걸고 9월과 11월초에 숙명여대와 영남대 특강을 가졌다. 한나라당의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전남지역에 부쩍 잦은 행보를 가지면서 전남대 특강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도 대학을 찾는 경우가 잦다. 올해 상반기에만 경북대와 대구대를 비롯, 전남대와 강원대, 이화여대, 동서대, 목포대 등을 차례로 방문해 특강을 가졌으며 최근에는 성신여대와 성균관대에서도 특강을 가졌다.

이외에도 열린우리당의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정동영·김근태 장관도 ‘강연 정치’ 대열에 들어섰다. 대권주자들외에도 국회의원들의 대학나들이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거물급 인사일수록 특강 자체보다는 전략적인 언론플레이 성격이 강하다. 특정지역을 방문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자기 선전과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고, 일회적인 행사에 그쳐 교육적 효과는 의문이다.

정치인은 젊은층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자신의 지명도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특강을 활용하고, 대학은 숙원사업 해결이나 각종 지원사업의 혜택을 바라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대학 특강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알맹이’없이 자기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회장(사학과)은 “정치적 의도가 짙은 경우 내부 구성원간 갈등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면서 “현실정치에 이해관계가 깊은 정치인들이 대학을 자주 찾는 것이 오히려 대학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주 회장은 “마치 선거유세 하듯이 정관계 인사를 대동하고 정파적 입장에 치우친 대학 특강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학의 교육적인 측면을 배려하는 신중함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아대의 한 교수는 “상투적인 질문만 오가고 뻔한 소리만 한다면 대학을 정치수단으로 이용하는 꼴밖에 안된다”고 꼬집었다. 정치인의 대학 특강도 지정토론자를 지정하는 등 제대로 준비된 특강을 실시하자는 주장이다.

정치인이나 사회 명망가 중심의 ‘특강’이 대학특강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교육적 수단을 활용한 대학과 정치의 유착관계도 다시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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