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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에 투영된 전사의 용기와 리더십
플라톤 ‘국가’에 투영된 전사의 용기와 리더십
  • 서영식
  • 승인 2022.03.14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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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②_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그림=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그림=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서양의 경우, 체계적인 군사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직업적인 군사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성을 주장한 최초의 저술은 플라톤의 『국가』다. 플라톤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전쟁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현실화할 수 있음을 통찰했다. 그는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며 국가 통치자는 어떻게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가, 실전에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플라톤은 평상시 전쟁 방지를 위해 정치적·외교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전투 현장의 주인공인 전사(戰士) 즉 ‘수호자(phylax)’를 강건하게 양성해 국가방위의 버팀목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수호자들이 각자의 능력을 오직 공적인 차원에서 공공선과 정의를 위해 사용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다는 점을 절감했다. 이에 그들의 영혼이 타락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모색했다.

수호자는 전쟁에서 승리해 국체를 보존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기본임무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성격과 기질에서는 “온순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해야 하며, 또한 전사의 특성인 “격정과 담대함에 더해 기질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즉 수호자는 “혈통 좋은 강아지의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유사시에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동료 전우를 위해 용맹하고 격정적인 자세로 전투에 임해야 하지만, 평상시에는 인격 수양과 새로운 지식의 습득에 싫증 내지 않음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는 기질을 타고나야 한다. 그런데 플라톤에 따르면 이러한 기질이 현실에서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전사 후보자들이 유년 시절부터 단지 군사교육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문학과 예체능 교육을 체계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다른 한편 플라톤은 수호자가 ‘용기(andreia)’의 진정한 의미를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용기를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으로 규정했다. 물론 여기서 두려워할 것은 전사의 양심과 국민의 시선일 것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장에서의 위험과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플라톤이 보기에 수호자의 용기란 전투 현장에서의 과단성과 임전무퇴의 자세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즉 용기는 극단적으로 혼란스러운 전투상황 속에서도 영혼의 분열과 파괴를 방지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능력을 갖춘 경우에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용기란 영혼의 독립적인 능력이라기보다 ‘정의’, ‘절제’, ‘지혜’와 같은 덕목들과 연관 선상에 있다는 점, 다시 말해서 전장에서 승리하려는 사람은 우선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서 올바로 판단하고 자기절제를 생활화함으로써 모범적인 행동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함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러한 차원의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전장에서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전사로 키워주고 이제는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 즉 무력에 의한 ‘국가전복기도’(stasis)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서 플라톤이 강조한 수호자의 용기가 돋보인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사실상 양 군의 최전선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항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인스타그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서 플라톤이 강조한 수호자의 용기가 돋보인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사실상 양 군의 최전선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항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사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인스타그램

불행히도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전쟁 위협이 현실화돼 있다. 침공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언론은 전력상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며칠 안에 함락되거나 백기 투항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결사항전 중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무식한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조롱받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방세계의 피신 권유를 물리치고 푸틴의 암살 위협에도 단호히 맞서며 국민 앞에서 조국 수호 의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향후 그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와는 별개로, 적어도 그는 플라톤이 말한 용기의 본성, 즉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았던 지도자로 동시대인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스위스 루체른대에서 서양고전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과 출판문화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동서철학회 편집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공공성과 리더스피릿』(공저, 2022), 『고전의 창으로 본 리더스피릿』(공저, 2021), 『플라톤철학의 실천이성담론』(2017), 『청춘의 철학』(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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