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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녀가 ‘썸타며 어장관리’하는 진짜 이유…철학이 분석하다
그·그녀가 ‘썸타며 어장관리’하는 진짜 이유…철학이 분석하다
  • 김재호
  • 승인 2022.03.10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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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최성호 지음 | 필로소픽 | 200쪽

썸타는 이유는 ‘인식적 불확실성’이 아니라 ‘의지적 불확정성’ 때문

맨 앞장에 나온 문장에 서늘하다. “탈진리의 시대,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제목은 대학 게시판에서 많이 보던 내용을 연상케 한다. 청춘들은 ‘썸’과 ‘어장관리’에 대해 가슴 졸이거나 울분을 드러낸다.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이 시대에 대한 독특한 주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럼 군대 다녀온 나는 비양심적이란 말이냐?』에선 청년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을 다뤘다. 아마도 최 교수는 이 땅의 청년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것 같다. 그는 이번 책에서 “썸타기와 어장관리라는 새로운 연애 문화의 본성이나 기원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수행”했다. 

최 교수는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의지적 불확정성’ 개념을 도입한다. 최 교수는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지닌 두 남녀가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의지적 불확정성에 대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썸타기의 핵심이라고 제안”하며 “어장관리의 핵심은 어장관리자가 피관리자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숨김으로써 피관리자를 기민한다는 사실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적었다. 

“나는 썸타기가 상대방을 향해 자꾸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하여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자신의 자아를 어떠한 의지와 욕구로 채워야 할지에 대해 명료한 답을 얻지 못한 우리 시대의 청춘 남녀의 사랑법이라고 제안할 것이다.”(25쪽)

 

너를 사랑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라

최 교수는 이정규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의 「썸타는 것이란 무엇인가?: 신조어 ‘썸타다’의 적용조건 분석」(<철학적분석> 41, 2019>에서 언급된 ‘인식적 불확실성’을 분석하고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가 ‘썸탄다’라고 할 때는 흔히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한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최 교수는 정보 부족이 상대방에 대한 게 아니라고 일갈한다. 거꾸로 ‘썸탄다’는 건 스스로를 향한 믿음의 문제라고 방향을 선회한다. 드라마 「알고있지만,」(JTBC, 2021)과 「썸」(소유·정기고, 2014), 「썸 탈거야」(볼빨간 사춘기, 2017)가 그런 사례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노랫말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 마 / 네 맘을 보여줘 아니 보여주지 마”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식적 불확실성’은 ‘의지적 불확정성’으로 바뀐다. ‘너’를 사랑하려면 우선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회의주의가 난무하고 진리가 벗어나 있는 시대에 사랑이라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사랑하기 위한 마음의 전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먼저 중요하다. 아니, 둘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부터 먼저 아는 게 우선이다. 

 

누군가와 현재 썸을 타고 있다면, 우선 자신의 내면부터 들여다보라. 사진=픽사베이

최 교수는 더 나아게 ‘썸타기와 밀당’, ‘썸타기와 공동 행위’, ‘썸타기와 어장관리 관계’, ‘썸을 타는 시대적 배경’ 등을 논의한다. 왜 이 시대 청춘남녀들은 확실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썸을 타는가. 이에 대한 최 교수의 철학적 분석은 엄밀한 논증으로 빛난다. 정말 안다는 것(인식론)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은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펼쳐보시길.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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