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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애완동물 코너
문화비평: 애완동물 코너
  • 이병창 동아대
  • 승인 2005.1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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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투 마마’라는 영화가 있다. 멕시코 영화인데, 멕시코 지배층의 아들과 농민의 아들이 친구가 되어 망나니짓을 벌이는 내용이다. 그들은 우연히 한 결혼식에서 만난 지배층 아들의 사촌의 아내를 꼬여, 천국의 문이라는 가상의 해변을 찾아간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에 충격을 받아 떠나는데, 이미 암이 걸렸지만 감추고 자기보다 나이 어린 망나니 아이들과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 여행 도중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질투에 찬 두 아이들은 서로 상대의 애인을 따먹은 사실을 폭로하고, 결국 그 여행을 계기로 헤어지며, 그녀는 혼자 해변에 남아 암으로 죽어간다.

이런 쓸쓸한 줄거리야 크게 흥미롭진 않지만, 필자를 경악시켰던 건 감독이 여행 중 차를 타고 지나가는 세 사람의 시선 앞에 은근 슬쩍 집어넣은 멕시코의 현실이었다. 비밀스럽게 체포돼 어디론가 모르게 끌려가는 농민들, 국경을 넘다가 죽어간 손녀의 인형을 파는 할머니. 이런 장면들은 마치 안개 속에서처럼 세 사람의 시선을 스쳐지나간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이 보는 장면들의 의미도 모르지만, 관객은 자연히 묻게 될 것이다. 이게 진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인가 하고.

필자가 최근 우연히 봤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를 들고 나온 건 이 때문에 떠올랐던 어떤 기억 때문이다. 그때 97년 가을, 필자는 학교에서 안식년을 받아 평소에 그리던 독일로 갔다. 거기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형할인점을 보고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해 겨울 한국경제는 몰락해 IMF 수중에 떨어졌다. 그때 필자야 대학교수나 되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는데, 교류하던 유학생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도 기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정색하면서 어떤 유학생이 독일에 처음 와서 대형할인점에서 팔고 있는 애완동물 먹이를 모르고 사서 먹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농담 같은 얘기를 같이 들었던 사람들은 정말 몸서리를 쳤다.

일 년 지나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에도 독일처럼 대형할인점 붐이 일었다. 누구는 IMF 사태 극복의 공신 중의 하나가 바로 대형할인점이라 하던데, 정말 그럴 듯하다. 우선 자본의 성장을 떠받치는 그 풍요한 소비라니. 대형할인점엔 없는 게 없다. 머지않아 자동차나 아파트도 할인점에서 팔지 않을까 한다. 또 값싸기로 말하면, 대형할인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자기네 상품이 최고로 싸지 않으면 몇 배로 돈을 물어내겠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편리하기로 따지면, 대형할인점은 필자같이 게으른 이에겐 천국과 같다. 필자는 한 주일 먹을 걸 최단 시간에 구매하는 기록을 매주 갱신해 왔다. 이젠 이 분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니 천국이 어떻게 생긴 지는 모르지만, 대형할인점 없는 천국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필자에게 어떤 망상이 생겨났다. 아마도 대형할인점에 애완동물 코너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처음엔 그저 범상하게 생각했는데 점차 그 앞에서 강박감을 느끼게 됐다. 옆을 지나면서 뒷머리가 약간 댕겨지는데, 그쪽을 보고자 하면 온 몸에 긴장감이 생겨 가능하면 피하게 됐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동안 잊었던 그 농담이 다시 떠올랐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필자의 머리속에 윙윙거리는 물음이 떠올랐다. 왜 대형할인점에 애완동물의 먹이를 팔아야 하는 건가? 인간의 먹거리와 동물의 먹이가 같이 진열되어 있다니? 그래 우리가 개나 고양이와 같다 이건가? 그리고 또, 정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기른다는 말인가? 혹시, 정말 혹시나, IMF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주 대책 없는 사람들이 혹시 실수라도 아니, 실수를 위장한 채 저 동물의 먹이를 사먹으라고 그런 건 아닌가? 그게 니들이 자랑하는 월마트의 경제라는 거 아니냐? 대형할인점, 니들은 상품을 할인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할인하려는 게 아니냐?

이건 틀림없이 망상이겠지만, 그 생각 이후 필자는 더 이상 대형할인점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카트를 밀며 매장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그림자 같은 피투성이 비명이 일기 시작했다. 그건 비정규직노동자와 이민노동자, 제3세계의 민중과 아이들의 비명이었다. 마치 이투마마가 보여주는 멕시코의 현실처럼 말이다.

이병창 / 동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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