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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확장되는 영토 전쟁…자유주의 패권 넘어 현실주의 전략
우주로 확장되는 영토 전쟁…자유주의 패권 넘어 현실주의 전략
  • 유무수
  • 승인 2022.02.28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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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국경전쟁』 클라우스 도즈 지음 |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376쪽
『배틀그라운드』 H. R. 맥매스터 지음 | 우진하 옮김 | 교유서가 | 704쪽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국토 경계선 확장 의욕
조작·공작에 속수무책인 당리당략 따지는 파벌정치

 
영국 런던대학교 지정학 교수인 클라우스 도즈는 『국경전쟁』에서 인간의 역사에 대해 “경계를 긋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위협이라 느끼는 것들을 국경과 장벽으로 방어하는 일로 점철되어 왔다”라고 썼다. 경계선 안에 천연자원이 풍부하면 전략적 요지가 되며 대외적으로 독점권이 인정된다. 헝가리 국영방송은 날씨 예보를 할 때 굳이 현 국토보다 훨씬 넓은 분지까지 포함시켜 국토 경계선 확장의 의욕을 부추긴다. 

 

산악지대의 국경과 경계는 골치 아프다. 히말라야의 빙하지대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의 물 안보가 얽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혹한의 고산지대 국경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까지 위태로운 고생을 한다. 과거에는 얼음과 눈이 어느 정도 갈등을 예방해주었지만 빙하가 녹아 땅이 드러나면 영유권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얽힌 알프스 산맥의 국경은 천연의 분수계에 따른다는 원칙이 설정돼 있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며 국경지형이 물리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국경설정이 공식적인 법률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이는 하천의 경우도 비슷하다. 유럽에 만들어진 국제법은 하천에서 경계선을 나눌 때 탈베그(thalweg, 가장 심층부 수로)를 기준으로 제시했으나 하천의 가장 깊은 바닥은 물리적으로 변화한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의 하천국경에 퇴적물이 쌓여 자연적인 테라포밍(terraforming, 형질변경)이 이루어져 예상치 못했던 긴장이 발생했다. 

 

국경은 강물처럼 삶을 굽이치게 한다

국토 전역이 해발 1미터 수준인 몰디브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수몰위기에 처하고 있다. 수몰될 때, 1993년 몬테비데오 협정이 분류한 ‘승인 가능한 국가’의 네 가지 범주(△영구적 거주 인구 △확실한 영토 △제 기능을 하는 정부 △다른 국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에 의하면 그곳은 누군가의 영토일 수 없다. 섬이 사라지면 몰디브의 배타적 경제수역도 소멸되고 자원개발권과 어업권까지 상실하여 원양의 영역이 될 운명이다. 저자는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해역통제권을 주장하는 중국이 수몰지역에 준설선 함대를 파견하여 군사 또는 전략적 우위 확보에 활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중국에 의해 “반란 중인 자국의 땅”으로 간주되고 있는 대만은 중국의 외교공작과 압박을 받아 유엔에서 소외됐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불법점령하고 유럽연합과 미국이 영토권을 인정한 우크라이나의 보안군을 물리쳤다. 국경전쟁의 영역은 지구상의 남극과 해저뿐만 아니라 우주까지 확장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국경은 “마치 강물처럼 사람들의 삶을 굽이치게 한다.” 그 국경에 권력에의 의지와 탐욕, 이권이 크게 결부될수록 더욱 많은 사람의 삶이 더욱 격렬하고 극적인 영향을 받는다. 

1947년 8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가 종교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을 때 심각한 유혈사태가 터졌다.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 삶의 터전을 바꿔야 했다. 혼란기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냉전 승리 후 미국은 자아도취에 빠져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으며 역자학자인 맥매스터가 『배틀그라운드』에서 잘못된 세 가지 가정을 지적했다. “(1) 냉전에서 서방측의 승리로 이념을 둘러싼 싸움은 막을 내렸다. (2)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3) 미군은 그 어떤 잠재적 경쟁자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수 있다.” 냉전과 걸프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이러한 가정에 젖어든 것은 자아도취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러시아는 차세대전쟁작전(RNGW)을 발전시켜왔다. 경쟁자 약화 생존전략인 RNGW는 거짓된 정보와 사실에 대한 부정을 집요하게 활용하는 사이버정보전을 포함한다. 러시아연방군 총참모부정보총국(GRU) 휘하의 비밀조직인 인터넷연구기관(IRA)은 미국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며 분열과 갈등의 확산 시도를 한다. 

러시아는 저렴한 방공망, 무인항공망, 사이버공격 등을 통해 크림반도 합병에서 크게 재미를 봤다. IRA는 상대국가의 사이버 공간에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좌우파 가리지 않고 퍼뜨리고, 미국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대중 신뢰를 떨어뜨리고자 했다. 조작된 내용에 현혹되는 미국인이 많아질수록 IRA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며, “당리당략만 따지는 파벌정치는 크렘린궁의 이런 공작효과를 더 크게 만들어주었다.”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경향은 푸틴의 대담성을 키워주었으며,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고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침범했다.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는 중국을 과학기술 혁신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은 지적 재산권과 제조기술을 인민해방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에 일상적으로 양도하고 있다. 이는 방대한 규모의 기술 이전이나 도용을 통해 중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군사 및 경제적 이점을 제공할 세계 경제부문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 국가안보부 해킹부대인 APT 10은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한국 등의 인터넷 연결 업체에 침입해 고객의 지적재산과 개인자료를 뽑아갔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타이완의 성공은 본토의 독재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타이완은 철저하게 회유, 압박, 고립의 대상이다. 중국은 2012년부터 남중국해의 암초와 인공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해 이 지역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경제가 취약한 스리랑카는 중국의 무자비한 부채의 함정에 빠져 스리랑카 항구를 중국 국영기업에 99년 임대계약을 체결해야 했고, 중국은 필요할 때 잠수함을 정박시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미국 행정부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당면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저자는 이전의 대북정책에서 두 가지 잘못된 가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첫째, 북한의 개방이 정권의 본질을 바꿀 것이라는 햇볕정책의 개념이며, 둘째, 북한 정권은 지속불가능하고 붕괴직전에 있다는 예측이다. 저자는 정의용 한국대사와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햇볕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짜로 제공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햇볕정책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의 “달빛정책”과 미국이 생각하는 “최대한의 압박”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일각은 ‘통일되면 북한 핵이 우리 것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는데, 저자는 북한핵과 미군철수가 동시에 있을 때 한국은 김 씨 일가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고 주장했다. 회담장에서 정의용 대사와 함께 만난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은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김정일은 “핵무기가 한미동맹을 무너뜨리고 전쟁 발발시 한국 원조에 대해 미국을 망설이게 만들 수 있는 보검”이라고 말했다. 저자에 의하면 “단기적으로는 최대 압박 전략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파괴적인 무기 없이도 외부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능동적인 자유주의 패권전략과 전쟁 예방

  
하버드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M. 월터는 『미국 외교의 대전략』에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유세계를 지키려 하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역내((域內) 국가가 주도적인 책임을 지게하고 미국의 사활이 걸린 이익이 직접 위협을 받을 때에만 해당지역에 힘을 투입하는 현실주의적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개념에서 빠진 것은 ‘예방’이다. 맥매스터에 의하면 오바마 행정부가 그런 고립주의 전략을 선택하여 시리아 내전에서 방관자 입장을 취했을 때 푸틴은 더욱 대담하게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다. 

독재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낙관주의 또는 무사안일주의는 독재자들에게 국경을 확장하는 용기와 역량을 키우는 시간을 보태준다. 34년간 군에 몸담고 전쟁의 현장체험을 하고 육군 대위 시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던 맥매스터는 능동적인 자유주의 패권전략으로 전쟁의 ‘예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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