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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대학의 미래
20년 후 대학의 미래
  • 박혜영
  • 승인 2022.03.0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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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논설위원

때는 2045년,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유엔이 IMF사태 이후 쭉 자살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정부에게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합당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며 출세가도를 달려온 펀드매니저 출신, 당연히 자살의 사회적 책임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죽고 싶어 죽는데 그것이 왜 사회적 책임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자 대통령은 교육부장관을 불러 대학의 사회학과와 연결해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뿔싸, 전국의 사회학과는 2020년에 서울대를 마지막으로 모두 폐지되고 없었다. 그럼 인문학이라도?

하지만 인문학 관련 학과는 그보다 먼저 구조조정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경제부총리가 부가설명을 한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입만 열면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떠들어 경제발전에 해만 끼치고 학생들의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 그런 학문들이 대학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 우화는 기업 마인드로 돌아선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추적한 『진격의 대학교』(오찬호 저, 2015) 첫머리에 나온다. 다행히 이 우화와 달리 아직 서울대 사회학과는 남아 있고, 인문학 관련 학과도 전멸하지 않았다. 이 우화는 신자유주의 이후 가속화된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비판한다.

‘대학의 기업화’란 대학이 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거나 기업과 산학협력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대학이 알아서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재고관리를 하고, 인력수급을 유연화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지금 대학은 마치 스스로가 기업인 것처럼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다보니 투자와 투기 사이의 줄타기에 실패한 대학의 경우 기업처럼 파산선고를 받기도 한다. 이것은 물론 학생이 교육서비스의 구매자로 돌아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학생들은 이제 교육시장에서 합리성을 따지는 소비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졸업장의 상품가치는 대학 진학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물론 코로나는 이런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비대면 수업환경으로 학생들은 스승과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나 선후배와도 배움의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비대면의 대학환경에서 경제성은 더욱 중요한 현실적 잣대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령인구 감소라는 더 큰 쓰나미까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는 약 27만 명이다. 내년이라고 뾰족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가성비와 효율성, SWOT(장점, 단점, 강점, 약점)분석 등을 연마하며 소비자로 단련된 청년들에게 결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연애조차도 취업이나 소확행 측면에서 보자면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전을 겪는 나라만큼이나 출산율이 떨어지는 데도 사람들은 별로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자기 발밑도 알 수 없는 청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대학과 기업, 학문과 비즈니스, 제자와 소비자를 점점 구별하기 어려워질 때, 대학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년 후를 상상하는 게 두렵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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