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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대만 민주주의와 정치 양극화
[글로컬 오디세이] 대만 민주주의와 정치 양극화
  • 이광수
  • 승인 2022.03.03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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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지난해 12월 17일 밤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에서 열린 집권 민진당 주최 유세에서 지지자들(사진 왼쪽)이 4대 안건에 모두 반대하자는 깃발을 흔들고 있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 등 국민당 지도부(사진 오른쪽)가 같은 달 12일 펼침막을 들고 거리에 행진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4대 안건에 모두 찬성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7일 밤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에서 열린 집권 민진당 주최 유세에서 지지자들(사진 왼쪽)이 4대 안건에 모두 반대하자는 깃발을 흔들고 있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 등 국민당 지도부(사진 오른쪽)가 같은 달 12일 펼침막을 들고 거리에 행진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4대 안건에 모두 찬성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은 4년마다 선거를 하고, 결과에 따라 행정부의 책임자 즉 총통이 바뀌고, 국회의 여야가 바뀐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린다는 점에서 승자에게는 웃음과 여유를, 패자에게는 슬픔과 좌절을 안겨다 준다. 그리고 유권자에게 자신의 한 표가 국가의 변화를 이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하지만 선거가 매번 좋은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선거를 통해 양극화된 여론이 극심하게 표출되는 경우에는 선거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대만은 중국에 맞서 체제 유지를 위한 최대의 무기로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다양성의 존중이다. 지난해 12월 초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112개 국가를 연결한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of Democracy)를 개최하면서 대만을 초청하자, 대만은 주미 대표 샤오메이친과 정무위원 탕펑이 대표로 참여했다. 샤오메이친은 아버지가 대만인이지만 어머니는 미국인이고, 여성으로 처음 주미 대표에 임명되었다. 탕펑은 어릴 때 컴퓨터 전문가로 디지털 부문을 담당하는 장관이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만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유교적 질서에 반하는 두 인물을 보내어 대만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를 국제사회에 표명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는 정당 활동에도 나타난다. 한국은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이 49개인데, 대만은 내정부에 등록된 정당만 자그마치 113개다. 인구로 보면 우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당 수는 우리의 2배 이상이다. 대만은 정당으로서 기본적인 책무인 선거 출마와 당대회 개최를 4년에 1회 이상만 하면 정당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정당 존속이 쉽다. 정당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대만국 선포를 주장하는 대만기진당부터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로 통일을 달성하자는 중화통일촉진당까지 존재한다. 대만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민진당은 양극단의 사이에 있는데 각각 통일파와 독립파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를 남녹(藍綠) 대결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좌우 이념 대결과는 달리 대만은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이념 대결의 핵심 변수다.

중국 변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하는 대만 정치에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총통선거와 지방선거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국민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는 네 가지 의제에 대해 찬반 의사표시를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안건으로는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제4원전 재가동, 산호초 보호를 위한 천연가스 시설 이전 설치, 국민투표와 전국 선거 동시 실시 등이 있다.

 

시비 가리기보다는 이념만 남은 정치

통일파 정당인 국민당, 신당, 중국청년당은 전부 찬성 입장이었고, 표어로 “4개 모두 찬성 투표해 대만을 더욱 아름답게”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반면 독립파의 집권 민진당, 대만기진당은 전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은 “네 개 모두 반대해 대만을 더욱 힘있게”라는 표어를 내걸고 치열한 투표 여론전을 벌였다.

사전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건강을 이유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를 찬성하고, 원자력 재가동을 반대한다는 안건에 찬성하고, 환경보호를 위해 천연가스전 설치를 반대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등 국민당 등 통일파가 미는 전부 찬성이 여론의 다수였다. 하지만 수입 반대에 찬성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이고 결국 중국의 위협으로 인해 대만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는 인식이 커져갔다. 결국, 4개 의제 모두 반대가 찬성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하면서 국민투표가 부결됐다.

결과에 대해 대만의 한 네티즌은 “대만에는 시비(是非) 가리기는 없어졌고, 오직 이념만 남았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원자력발전의 재가동이나 환경보호 의제도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양극화된 진영의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대결적 정치가 대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만의 민주주의는 다양성, 개방성, 복합성을 존중하면서 발전해왔다. 중국의 부상과 통일 압력은 대만의 민주주의를 시험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광수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양안 관계와 통일 모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의 일국양제와 대안 모델에 대한 고찰」(2020), 공역서 『중국 정책결정: 지도자, 구조, 기제, 과정』(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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