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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고민없는 냉전세력의 퇴행성 우려 ... 실사구시적 외교 필요
분단 고민없는 냉전세력의 퇴행성 우려 ... 실사구시적 외교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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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1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긴 분단시대를 살아오면서 겪는 질곡은 비단 지식인에게만 뼈아픈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뼈아픈 질곡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민족 화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역사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의 두 정상이 한 자리에서 민족의 운명을 진지하게 고민한 자리로 기억되는 것도 이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북문제는 도무지 화해와 평화, 교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 않다. 신냉전적 사고가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가하면, 한반도 주변 정세도 미묘하게 펼쳐지고 있다. 과연 ‘남북정상회담’은 그대로 폐기되어야 할 실패한 대북정책인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엄정하게 성찰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민족사적 과제로서의 접근이 필요한 지금, 교수신문은 학계 북한 전문가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 설문문항: 1. 정상회담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북한 연구의 과제는 무엇인가. 2. 정상회담이후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쟁점이 되고 있다.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방안은 있는가. 3. 부시행정부 출범으로 한반도 정세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공조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2차 정상회담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경제 성장 위한 북한의 행동전략 분석해야”

박순성/동국대·경제학

1. 전통적인 북한연구자들은 북한을 내부구성이 단일하고, 따라서 변화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사회로 상정해 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그리고 민족문제에 대한 정책적 판단에서 단선적인 사고방식을, 심지어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반세기가 넘은 북한 사회의 역사에서 변화를 파악해 내고, 이를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최근 소장연구자들의 10여 년에 걸친 연구결과는 이러한 방향의 연구가 더욱 많은 성과를 가져올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북한 연구의 발전을 저해한 북한특수성론과 주체사상절대론을 벗어나야 할 때이다. 북한 사회를 근대사회의 다양한 유형 중의 하나로, 그리고 주체사상을 불리한 내·외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지배전략의 산물로 파악한다면, 북한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회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남북한 사회는 각 분야별로, 또한 근대국민국가 형성전략의 관점에서 비교되어야 한다.
당면 과제는 북한의 실현가능한 개방개혁전략을 경제성장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근대의 후진사회에서는,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없으면, 경제성장도 없다. 경제성장을 위한 북한의 현실적인 행동전략을 찾아내어야 한다.

내면화된 고정관념 버릴 때

2. 국민적 합의는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무엇보다도 정치권은 민족문제를 파당적 이해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분단의 역사는 교훈을 주지 못하는, 버려진 역사이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정치문화의 결핍은 심각한 수준이다. 언론을 통한 여론형성과정에서 종종 사실은 왜곡되고, 민주적 논의는 거부당한다. 민주적 논의를 막는 언어폭력(예를 들면, 소위 ‘퍼주기론’)은 나날이 심화되고, 우리의 의식은 마비되고 있다. ‘어릴 때 좋은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을 위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볼 것인가, 과거의 관점에서 미래를 볼 것인가. 변환기 민족의 역사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정치권, 언론, 지식인, 일반 시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을 찾는다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 또는 정치사회(와 그 주변)의 영향력이 가장 직접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한·미공조원칙과 민족자주원칙의 대결은 관념적이다. 자주의 원칙만을 지키려고 할 때, 자주의 원칙은 지켜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미공조원칙만을 고수하려고 할 때, 공조는 추종이 된다.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첫째,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이긴 하지만, 언제라도 소수 이익집단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우리의 시민사회와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 우리 사회의 일부 언론, 전문가, 정치인들은 지나치게 미국편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미국적인 우리의 정신을 쇄신해야 한다. 한·미공조는 미국이 우리 외교의 중대한 자산이자 동시에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공조가 될 것이다.

4.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은 2차 정상회담을 막는 일차적 장애요인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도 그랬던 것처럼, 남북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이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은 남북관계가 얼마나 허약한가, 그리고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의 국익이 얼마나 큰가를 확인시켜 준다. 이제 일차적 장애요인이 제거된 상태에서, 남북 두 최고지도자는 각자의 노력으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정상회담 자체에 대한 국민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남한 최고지도자는 북한이 2차 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는 조건을 하루 빨리 국내에서 형성해야 한다. 민족사적 대의를 위해 정권 차원의 계산을 버려야 할 때다. 북한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이 결코 불균등하게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남한은 북한이 체제안정과 개방개혁으로 가는 하나의, 그러한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최소한의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질 때가 2001년 말이 아닐까. 2002년이 되면, 조건이 갖추어져도 남북은 또 다른 상황, 또 다른 손익계산서를 앞에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나친 한·미공조 요구는 종속 불러”

정해구/성공회대·사회학

1.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맹목주의적인 반공주의적 감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감성에 기반하고 있다. 연구에서도 이런 상반된 경향이 일정 반영된다. 그러나 이제 북한 연구는 일단 이 같은 이데올로기적 감성을 지양할 필요가 있으며, 보다 보편적인 준거에 의해서, 또는 현실적인 준거에 의해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증의 감성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에 의해 북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2.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형성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북한에 대한 태도는 상당 정도 사전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즉 국내 정치지형에서 볼 때 보수세력은 항상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반면, 진보세력은 언제나 긍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형성은 국내 보수-진보간 갈등의 해결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이다. 오히려 그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국민적 합의의 추구보다는, 특히 보수언론의 경우에 자신의 주장을 위하여 사태를 과장하거나 악의적으로 해석, 보도하는 일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사태과장하는 보수언론이 문제

3. 한미공조의 말을 잘 해석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상호 대치했던 냉전시대와 같은 상황에서는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가 불가피하게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냉전이 진행되고 남북화해와 협력이 진전되는 속에서 한국과 미국은 이제 보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상호간의 의견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견해는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존중되면서 필요하면 상호 조율돼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스스로가 빈틈 없는 한미공조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의 종속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4.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8·15도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북한과 부시행정부와의 관계가 유동적인 만큼 남북정상회담의 시기 역시 유동적이라고 본다. 우리측의 국내정치적 일정으로 본다면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년은 아무래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안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서두를수록 정책 신뢰성 약화돼”

김연철/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치학

1. 정상회담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으나, 연구는 정체되어 있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천박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북한에 관한 냉전적 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로 가장한 이른바 ‘보수’세력은 신념적 반북 인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민족해방론적 시각은 북한의 현실과 고민을 무시한 ‘공상의 북한’을 그리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줄어들고, ‘가상의 북한’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쟁투만이 난무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연구대상으로의 북한은 여전히 미개척지다. 첫째, 비교 사회주의적 시각이 필요하다.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와 변화 현실을 바탕으로 북한식 사회주의의 특수성을 보편적 개념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농업정책, 금융 및 재정정책을 비롯한 각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총론의 과잉과 각론의 부재는 북한 연구의 공허함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2. 포용정책에 대한 전반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퍼주기식 논란, 북한 상선의 제주도 해협통과에 대한 인식차가 지속되고 있다. 여야대립과 지역주의 등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너무 뿌리 깊다. 근본적으로 분단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일부 냉전세력들의 퇴행성이 문제다. 게다가 더욱 장기적인 시각에서 남북관계를 중계할 수 있는 언론이 부족하기에 국민적 합의는 너무 어렵다. 물론 정부가 대북정책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그것이 현실화되지 못했을 때,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서두른다는 인상을 심어줄수록 정책의 신뢰성은 약화된다.
과제는 여야가 대북정책을 일반 정책과 분리하여 초당적 합의구조를 창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클린턴 행정부 시절 월리엄 페리를 조정관으로 임명했듯이 남북관계에 식견이 있는 중립적 인사들로 ‘21세기 한국의 대북정책’을 작성하기 위한 위원회 같은 것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3. 한반도 문제는 국제화돼 있으면서 동시에 민족 내부의 일이다. 대량살상무기는 국제적인 현안이며, 한반도 평화정착 역시 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풀 수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북한은 남북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의 원칙을 남측이 한미 공조를 통해 깨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역시 한국정부의 독자적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경계하고 있다. 한미 공조에 대한 시각의 전환부터 필요하다.
한미 공조가 아니라 남북한과 미국의 3자관계를 확실히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한미 공조는 3자관계에서 남북대화와 동등한 위상과 역할을 가져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연히 한미공조 방향은 한반도의 화해협력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 부시행정부의 근본주의적 대북인식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다. 미국문제의 객관적 현실과 한반도의 중장기적 비젼을 혼동하지 말고, 쟁점현안에 대한 보다 실사구시적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선택이 중요하다

4. 2차 정상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화해협력 관계의 질적 전환을 위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부시행정부의 존재와 2002년 한국의 대선 일정을 고려했을 때, 올해안에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져야 의미가 있다. 문제는 북한의 선택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위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중에는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클린턴 말기 북한의 기회상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0년 울브라이트의 방북과 조명록 방미과정에서 테러 지원국 해제와 미사일 문제의 진전이 있었다면, 부시행정부가 출범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2003년이후 한반도 정세의 불투명성을 고려한다면, 올해안에 답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미 관계의 진전이 있다면, 평화정착에서 보다 구체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의 공고화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한 당국간의 신뢰가 질적으로 제고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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