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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금욕을 강조…정작 욕망 채운 중세 신부들
서민에게 금욕을 강조…정작 욕망 채운 중세 신부들
  • 진성
  • 승인 2022.02.23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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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 진성 옮김 | 도서출판 린 | 672쪽

당대 최고의 산문문학, 신곡과 대비되는 인곡
근대의 리얼리즘 정신 구현한 100편의 이야기

세계사 책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팬데믹 사태를 작금의 현실에서 겪게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20세기 초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과 14세기 전 유럽을 할퀸 흑사병(페스트), 수백 년간 전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와 함께 큰 피해를 남긴 최악의 팬데믹으로 불린다. 

 

스페인 독감은 당시 세계 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대 5천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된다. 희생자 중 전도가 촉망한 스물여덟의 에곤 실레(1890∼1918)가 요절하였고, 그의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쉰다섯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반면, 죽음의 도가니에서 살아남은 월트디즈니는 아이러니하게 전염병의 주범(쥐)으로 몰린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키마우스’를 탄생시켜 암울했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천연두는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개안한 우두(소의 두창) 고름을 이용하는 우두법으로 예방이 되었으며,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천연두는 인류가 처음으로 완전히 박멸한 질병이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은 수년에 걸쳐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흑사병으로 인구 7천5백만~2억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는 지역 주민의 70~80% 이상이 몰살한 곳도 적잖았다.

 

미사여구 없이 거친 문장들로 구성

피렌체의 소설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페스트가 세상을 어떻게 황폐시키는지를 직접 목격하곤 1351년 『데카메론』을 완성했다.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비교하여 ‘인곡’이라고도 불리는 당대 최고의 산문문학으로, 또한 당대의 사회상을 담은 일종의 생생한 역사서로도 읽힌다.
흑사병으로 인한 참사로 온 도시가 신음하며 민중들이 죽어 나갈 무렵, 성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검은 상복은 입은 젊은 여인 일곱 명이 찾아온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정숙하며 기품 있는 귀족 가문의 총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2주 동안 다채로운 100편의 이야기 향연을 벌인다.    

 

피렌체의 소설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 사진=위키피디아

『데카메론』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정신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작품 속에선 아름답게 꾸민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대체로 문장표현이 거친 편이다. 이야기에 때때로 나오는 외설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 생활을 솔직히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나오게 된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선 100편의 이야기는, 인간 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스운 이야기로부터 도덕적인 훈화,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의 수도자들에 대한 풍자, 그리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 등 아주 다채롭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저변에 깔린 정신은 봉건적인 세력에 대한 신흥 부르주아 서민층의 쌓이고 쌓인 울분이 깔려 있고 그것이 뼈있는 골계(滑稽)정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섹스의 해방과 기쁨, 성직자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조소, 낡은 지배계급에 대한 서민의 평등한 감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근대문학의 빼어난 걸작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장점인 여성성에 대한 탁월한 의미 부여를 빼놓을 수 없다. 작품에서 저자는 여성의 매력은 플라토닉한 베일을 벗겨버리고 육욕과 직결되는 매력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조차 과감히 차용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性情)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신의 권위로 서민에겐 금욕과 인내를 강요하면서도 성직의 특권으로 현세적인 인간의 욕망에 도취되어 있던 교회나 신부의 타락과 기만성이 비웃음거리로 통렬히 폭로했다. 이것은 이윽고 하나님 최후의 심판까지도 의심하는 부르주아의 허무적인 의식이 현실적으로 죽음이란 보편적인 사실과 대치된다. 

『데카메론』은 앞선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그들을 문학작품 속에서 재탄생시킨 작가(작가 개인 또는 민중)들이 한 생애를 살아온 자신들의 감정과 경험, 지식을, 외부 세계에 대응하는 내밀한 속내를 문학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놓고 있다. 

진성 작가, 한중미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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