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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1921~1968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1921~1968
  • 김재호
  • 승인 2022.02.17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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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1921~1968』 김응교 지음 | 삼인 | 670쪽

김수영, 자신의 자서전을 시로 썼던 시인

2021년은 만 47년의 물리적 생애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시인 김수영(1921~1968)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1970년대부터 줄곧 김수영은 한국 문학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온 시인이었지만, 서거 50주년이었던 2018년부터 탄생 100주년인 2021년 사이에 그에 대한 주목과 논의의 열기는 절정에 이른 듯이 보인다.

 

이 책은 오랫동안 김수영의 시편을 연구해온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정교한 기획과 구성 아래 수년에 걸쳐 퇴고를 거듭해 완성한 ‘김수영론’이다. 200자 원고지 2,600매에 이르는 역작인 이 책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은 기존에 출간된 김수영론과 변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김수영의 문학적 생애를 철저히 시편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김수영이 남긴 시편이 그의 생애를 설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초라는 전제하에 김수영이 초기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열하게 쓴 전체 작품 120여 편 중 72편을 선별한 뒤 김수영의 연대기에 그대로 대응시켜 총체로서의 문학적 삶을 설명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책의 서문격인 「이 책을 읽으시려면」에는 이와 같은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제 역할은 최대한 김수영 시인의 의도 곁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겁니다. 다. 한 시인의 시를 해석할 때 저는 그 시인의 시가 그 시인의 시를 소개하도록 애쓰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백석의 시를 백석의 시가 풀고, 윤동주의 시를 윤동주의 시가 풀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수영의 시를 김수영의 시와 산문으로 풀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 다음에 김수영의 삶, 그 다음에 김수영이 살았던 역사적 상황과 비교해야 하겠지요. 외국 이론을 이용하여 시를 푸는 방식은 우선 그 시인의 시로 푼 다음에 한참 뒤에 해야 할 일이지요.”

시인이 남긴 시로 하여금 그 시인을 소개하게 한다는 이와 같은 태도는 이 책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자세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김수영의 삶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김수영이 살았던 시기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격변과 격동에 휘둘렸던 시기이다. 일제의 식민지 수도인 경성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습득하고, 해방을 맞은 것도 잠시,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단 이후 동족 간 처절한 전쟁이 발발하고, 이승만 정권에 의한 폭정과 부정선거가 이뤄지고, 민중에 의해 4·19혁명이 발발하고, 이를 짓밟는 5·16쿠데타와 군부독재에 이르는 이 시기에 김수영은 지식인으로서 결코 외면하기 힘든 사회적 비참에 직면했고 그것에 양심에 따라 온몸을 건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물이 바로 그가 남긴 시편과 산문들이다. 저자가 파악하기에 김수영은 자신의 자서전을 시와 산문으로 써온 것이다.

 

각 5부, 상호텍스트성을 가지며 긴밀하게 연결

이 시는 전체 5부로 나뉘어 있다. 각 부는 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텍스트성을 가지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심상이나 상상력은 단선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유기적이면서도 통합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걸맞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역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시대를 직관적으로 성찰한다. 근대적 지식인으로서 현대적 징후를 통찰하고 전통과 현대를 상호 길항하게 하는 것이 김수영 문학의 특질인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점을 섬세하게 배려하면서 각 부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응교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사진=숙명여대

1부에 앞서 「프롤로그」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 ‘메멘토 모리’ 편에서 1968년 6월 15일 밤 김수영이 귀가하다가 서울 마포구 서강의 집 앞에 다다라 시내버스에 치이고는 다음 날 새벽 삶을 마치는 장면이 긴박한 소설적 구성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여기엔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부인 김현경 여사의 회고가 중요한 자료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 프롤로그는 저자가 김수영의 골호骨壺(화장 후 유골을 담은 단지)가 안장된 도봉산의 김수영 시묘비를 참배하면서 그의 문학적 삶을 카뮈의 삶과 대비시켜 상기하는 책의 결미와 자연스럽게 수미쌍관을 이룬다.

1부는 1945년 해방부터 1950년 한국전쟁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김수영이 해방기에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모더니즘이 그의 생애 전체에 걸친 시적 방법론으로 작동했다고 보면서 이 시기에 발표한 「공자의 생활난」,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 등 초기시 다섯 편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2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전쟁 직후 곤핍한 생활을 하던 1954년까지를 다룬다. 김수영은 이 시기 2년간이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고난의 세월로 인한 서러움의 감수성, 비참한 세계에 대한 비탄, 그리고 문학적 자의식에서 우러나오는 긍지 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자신을 스스로 거미 같은 벌레로 묘사하는, 저자가 ‘곤충시’라고 명명하는 계열의 시를 쓰기도 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편들의 소개 및 분석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모색 중인 김수영의 치열했던 30대 초기를 재현한다.

3부에서는 김수영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했던 서울 마포구 구수동으로 이주한 1955년부터 1960년 4·19 직전까지를 다룬다. 18편의 시가 소개된 이 시기를 저자는 김수영의 시적 특질이 만개한 시기로 본다. 저자는 김수영이 양계와 밭농사를 시작하면서 얻은 생활 체험에 주목하고, 「폭포」, 「눈」, 「봄밤」, 「채소밭 가에서」 같은 시처럼 자연에서 소재를 구하여 특유의 시적 성찰을 통해 미학적 형상화를 이룬 작품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저자는 “자연이 품고 있는 역동성을 김수영은 자기성찰을 위한 정신적 동력으로 끌어 쓰고 있다. 아직 직설적인 시대 비판은 없으나 자기성찰의 날카로운 지성이 돋보인다. 이러한 자기성찰로 끓고 있었기에 1960년 4월 19일에 이르러 김수영이라는 활화산은 폭발해버린다”라고 쓰면서 이 시기 이후 김수영의 시적 변개와 연결시킨다.

4부는 4·19혁명과 5·16 군사반란 직전까지를 다룬다. 이른바 ‘4월’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김수영 시의 폭발이 이 시기 일어나는데, 이 짧은 시기에 김수영은 9편의 시를 봇물 터지듯 발표한다. 이 시기의 시편에서는 민중에 의해 일어난 혁명에 격렬하게 환호하다가 점차 감지되는 혁명의 후퇴와 실패를 받아들이는 김수영의 모습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예감되는 혁명의 실패, 그 실패 속에서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 실패가 언젠가 혁명의 밑거름이 되리라고 통찰한다. 실패와 몰락과 좌절 속에서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굴하지 않고 “이유 없이 풍성”하고자 했던 의지가 모일 때 혁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닌가.

5부는 5·16 직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7년의 시기를 다룬다. 저자는, 기대했던 혁명이 실패한 것에 대한 울분과 40대에 들어선 중견이자 비주류 시인으로서 한국 시단에서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내던 시기에 김수영이 품고 있던 지적 관심과 고민의 양상이 잘 드러나는 시편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물신주의가 팽배하던 이 시기, 배우, 사물, TV와 라디오, 미디어 등을 시의 소재로 선제적으로 끌어들인 김수영의 비범함과, 한국 사회의 속물성에 대해 김수영이 가지고 있던 뿌리 깊은 혐오와 경멸, 모순적 감정 등이 잘 드러난 시편들을 자세히 분석한다.

 

김수영 살았던 공감 탐문하고 가족들 인터뷰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특별함은 저자의 부지런하고 꼼꼼한 취재 및 자료 조사에 따른 정보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김수영의 생애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기술하기 위해 김수영이 살았거나 거쳐간 공간을 샅샅이 탐문하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 여동생 김수명 여사와 수없이 인터뷰한다. 또한 김수영 연구 권위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학습, 정보 교류를 통해 기존의 김수영 연구가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도봉구 북한산국립공원 안에 조성된 김수영 시묘비의 40cm 뒤쪽에 깊이 50cm로 골호가 묻혀 있다는 것을 유족이 작성한 설계도와 함께 공개하는 부분,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수영의 두 남동생에 관한 김수명 여사의 증언 등은 그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카뮈와 니체, 하이데거 같은 외국 작가나 철학자들의 사유와 김수영의 시정신이 어떤 공통적 특질을 가지는지를 살핀 글들도 독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김수영과 박인환, 고은, 염무웅, 백낙청, 김현 등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 이어령과 치른 문학 논쟁, 신동엽 시인과의 인연, 김수영이 일부 여성 독자들로부터 여성혐오 시인으로 비판받는 부분 등에 대한 엄정하면서도 객관적 평가가 개별 시작품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긴밀하게 연동되면서 독자를 김수영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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