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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학술정책 없었다…어떤 형태라도 ‘독자성’ 확보가 중요”
“제대로 된 학술정책 없었다…어떤 형태라도 ‘독자성’ 확보가 중요”
  • 김봉억
  • 승인 2022.02.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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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정책 연구기관 ‘한국학술진흥원’, 왜 필요한가

<교수신문>은 ‘인문사회 오늘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지난해 10월 18일자부터 12월 27일자까지 11차례에 걸쳐 기획연재를 했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 논란부터 인문대학의 비전, 학문후속세대 육성, 인문사회연구소 발전방안, 문화예술 교육·연구 현황, 전문대학 교육 문제, 학술연구 평가제도, 인문사회 학술정책 현안까지 다루었다.

마지막 연재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인사총)에 바란다’라는 기사에서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학술기본법 제정과 국가학술자문회의 설치, 학술정책 연구 전문기구 설립, 인문사회 분야 연구개발 예산 증액 등의 과제를 제기했다. 특히 학술정책 연구 전문기구 설립과 관련해 인사총에 ‘한국연구재단을 두고 또 다른 기관을 만들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공론장을 이끌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교수신문>은 학술정책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학술진흥원(가칭),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좌담을 마련했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열린 좌담에는 안병욱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가톨릭대 명예교수)과 위행복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대표회장(한양대 명예교수),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서울대 중어중문학과)이 참석했다. 

그동안 인문사회 학계에서 학술정책 연구 전문기관으로 학술진흥청, 고등인문사회과학원, 학술정책연구원, 인문융합혁신연구원, 국가학술위원회, 학술진흥원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번 좌담은 인문사회 학술정책 연구 전문기관 설립 제안 배경과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주로 했다. 

정부 수립 이후, 제대로 된 학술정책 없었다
한국사회 정체성은 무엇으로 확보할 것인가

교과부는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분리
한국연구재단은 분리되지 않고 과기부 산하로

인문사회 학술정책 연구기관은 전혀 없는 실정
정책연구 전문성 떨어져 학술예산도 곤경에 처해

과기부 산하 연구재단서 인문사회 분리해 추진
독자적인 정책 수립·추진할 수 있는 기능이 핵심

물질적 진보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갈등·위기 해결
인문사회 통찰로 삶의 질 향상,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사회 : 인문사회 학술정책 연구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학술진흥원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 배경부터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병욱 :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학술정책이 없었다는 문제를 먼저 제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7년에 촛불혁명을 통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100대 국정과제 등 A4용지 400페이지에 걸쳐 상당히 방대한 양의 중장기 국정기획안을 만들었어요.

이 문서를 검색해 봤어요. 학문을 쳐봤더니 단 한 번도 안 나와요. 학문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넣지 않고 400페이지 보고서를 만드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에요. 혹시 학술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싶어서 학술을 쳐봤어요. 딱 한 번 나와요. 어디에 나오냐하면 남북 학술 교류에. 이게 현재 한국의 현실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한국연구재단이나 옛날 한국학술진흥재단은 학술정책을 기획해서 집행을 하는 게 아니고 매뉴얼에 의해서 연구비를 배분하는 기관이에요. 그러니까 국가정책으로서 학술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데는 전혀 없고, 예전 청와대에 교육문화수석이 있어서 최소한의 역할을 맡았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없어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확보할 것이냐. 그게 고민의 출발이죠.

위행복 : 실제로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학술정책을 세우는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거죠. 1979년에 학술진흥법이 생기고 1981년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설립됐는데, 2009년에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 교육과학기술부가 생기면서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단을 통합해 한국연구재단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4년 뒤 2013년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분리됐지만, 한국연구재단은 분리되지 않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과학기술 분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있어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정책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사회 분야에는 학술정책과 관련된 연구기관이 전혀 없는 실정이죠.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없는 부처는 교육부뿐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5년 동안 국가 R&D 예산은 매년 8.9%씩 증액을 했는데, 인문사회 분야는 1.3%에 그치고 있어요. 만일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예산이 5년 동안 매년 8.9%씩 증액됐다면 현재 5천억 원이 넘어야 하는데, 여전히 3천억 원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구비 선정율이 3분의 1에 그치고 있는 것은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학술연구 예산이 현재보다 3배로 증액돼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의 예산은 이미 1조원에 육박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문제가 정말 심각하거든요. 전체 강사의 4분의 3이 인문사회 분야 강사입니다. 사실은 학문후속세대 문제가 인문사회 분야의 문제인데, 결국은 인문사회 분야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임교수 채용을 안 한다는 거예요. 무슨 강의전담이다, 연구전담이다 해서 비정년트랙으로 많이 뽑고 있어요.

사회 : 인문사회 학술정책 연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강재 :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정책을 연구하고 추진하는 별도의 기관은 없습니다. 교육부 내의 학술진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의 연구기획실이 있는데요. 제가 한국연구재단에 와서 느끼는 건 주무 부처인 교육부 내의 학술진흥과는 인력이 부족하고 순환보직을 특성으로 하는 정부조직의 한계로 학술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없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2020년 12월에 인문사회연구본부에 처음으로 인문사회연구기획실을 설치해 학술정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합당한 인원이나 부대 조직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인원이 딱 한 명 늘었어요. 게다가 작년에 말썽도 많았던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서는 아예 한국연구재단을 대행기관이라고 기관의 성격을 명시해버렸어요. 위탁기관이 아닌 대행기관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구재단은 그나마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안병욱 : 연구재단에서 정책을 연구하고 프로젝트로서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정책을 입안해서 실제로 반영하는 일은 또 다른 것이죠. 시행하려면 교육부 과장 만나고 국장 만나고 실장 만나서 계속 설득을 해야 되고 그 사람들이 안 되면 국회에 가서 국회의원들 설득해야 되는데. 특정한 일은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관철을 시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아까 얘기했던 국가운영정책과는 상당한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사회 : 미래사회 전망과 연관 지어 이 조직이 왜 필요한지 말씀을 해주신다면. 

이강재 : 새로운 학술지원 방향이나 지원의 구체적인 내용이 정확한 학술실태에 입각해 있지 않아요. 학술지원의 결과가 정확한 실태 분석이나 이런 것들이 이뤄지려면 학술의 질적인 심화로 이어져서 국가의 발전 동력으로 갈 수 있는 평가체계도 갖추고 있어야 돼요. 이 부분도 안 돼 있어요.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 기반의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여기에 대처해 정말 국가가 가야 될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학술정책이 나와야 되고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현재로서는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사회 : 학술진흥원과 같은 학술정책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면 가장 중요한 일이 뭐라고 보십니까. 

안병욱 : 한 나라를 운영하는데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학문정책이 우선순위에서 어떤 면에서는 첫 번째일 수가 있어요. 학술을 담당하는 정책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까지 교육부 속에 들어가 있고 전혀 독립적인 비중을 갖지 못한 거죠. 교육부 내의 한 과에 국한돼 있는 학술정책 가지고는 고도의 전문성 있는 걸 감당하지 못해요. 
두 번째로는 한국에 수많은 유학생들이 와요. 그런데 한국에 유학 올 때 학문을 하겠다고 한국에 유학 온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취업을 위해 한국에 유학 오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학문 때문에 유학 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생각해요. 그게 현재 한국의 위상을 말해 주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대로 아직 우리 사회의 문제를 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하나하나 한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문제점이 될 수 있는 거죠.

위행복 : OECD 국가 중에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잖아요. IMF 외환위기 이후 2002~2003년부터 자살률이 급격히 늘면서 OECD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돼버렸는데, 보통 대중들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체제가 무너져버린 거죠. 이거는 우리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 영역이 담당해야 할 부분인데, 최근에 ‘기생충’도 나오고 ‘오징어 게임’도 나왔습니다만, 세계화, 신자유주의 이후 격차가 굉장히 커지잖아요. 그걸 가장 첨예하게 한국 사람들이 앓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오징어 게임’이라든가 ‘기생충’이 바로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이 모든 것들이 사회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공동체적인 이념들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온 건데 인문사회 분야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우리도 반성을 해야 돼요. 그렇지만 국가에서 그런 것들을 내세울 수 있는 뒷받침을 안 하는 거죠. 

사회 : 안병욱 선생님은 예전에 ‘학술진흥청’ 제안도 하셨는데요. 위상이나 규모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고, 이강재 본부장님도 최근에 학술정책연구원을 제안했습니다. 

안병욱 : 규모는 작더라도 독자적으로 정책을 입안해서 시행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전국 기관이 필요해요. 하나의 국무부서가 안 된다면, 청 단위의 학술진흥청이 만들어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독자적으로 정책을 입안해서 예산을 편성해 펼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랄지 국립박물관 같은 데를 생각하면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부 소속 기관이어서 교육부 조정과 통제를 받아서 독자적인 학술정책을 펴지 못하고 상당 부분 제약을 받고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죠. 

이강재 : 제가 가칭 학술정책연구원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이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의 이름이나 그런 것보다도 안병욱 선생님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게 독자적인 학술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느냐, 그게 가능하냐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예산과 조직, 인원의 독자적인 확보와 운영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게 가능해야 어쨌든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학술정책연구원과 함께 계속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청와대 학술연구수석을 두자라고 했거든요. 이게 학술경국이라는 말하고도 연관돼서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합 속에서 학술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큰 그림 속에서 하려면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성의 문제를 생각하면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 정도를 둬야 된다고 보거든요. 

독자적으로 그게 청이 됐던 원이 됐던 그러한 것들을 끌고 갈 수 있는 독자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이름이 무엇이든 학술진흥청이라 하더라도 교육부 산하에 있으면 안 됩니다. 문제는 독자적인 정책 수립과 추진 체계를 갖고 있느냐 그게 가장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게만 된다면 어디에 들어가도 된다고 봐요.  

안병욱 : 방송통신위원회는 완전히 독자적이죠. 문제는 이 본부장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어느 부처의 소속 기관으로 하게 되면 연구재단이랑 거의 차이가 없고 국가가 학술경국의 뜻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없느냐 차이예요. 

이강재 : 우리가 예산 문제를 많이 얘기하지만 가령 이 연구원 100명 정도 규모의 소규모로 가지고 한다고 할 때, 초기에 세팅하기 위해서 시스템 갖추고 건물 하고 뭐 하고 해서 돈이 일부 많이 들어가겠지만 한 200억 원 정도에서 300억 원이면 운영이 될 수 있는 조직이에요. 기존에 있는 연구비 빼고 그러면 우리가 순수 학술연구비 인문사회 예산 200억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올해 인문사회 순수 학술 예산이 3천630억 원이라고 나왔는데 여기에서 10% 늘어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랬을 때 나머지 현재 집행하고 있는 3천630억 원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찾아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산의 증액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게 이 부분이라는 거예요. 길게 볼 때.

위행복 : 10년 동안 연구재단 이사장을 인문사회 분야에서 한 번도 안 했잖아요. 사실은 연구재단을 분리를 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요즘 융합을 굉장히 강조하는 시대지만 융합이라는 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적으로 흡수하는 게 융합이 아니고 서로가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분야 간의 협조가 있을 수도 있고 부처 간의 협조가 있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한쪽이 발전을 해야만 보다 더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실 연구재단을 지금 분리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난 10년의 경험이 그렇습니다.

사회 : 선진국 담론에서 성숙 사회 필요성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강재 : 과학이나 공학을 통한 물질적 진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갈등과 위기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통찰을 통한 삶의 질 향상으로 성숙한 대한민국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는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성숙을 얘기하고 성숙이 또 하나의 성장 동력임을 얘기해야 된다고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선도 국가가 되는 거고요.

안병욱 : 프랑스에서 한국학을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프랑스 7대학인가에 400명이에요. 입학생 중에 중국, 일본 지원은 100여 명밖에 안 돼요. 한국학과에 들어오기 위해서 재수 삼수를 해요. 저는 그게 반갑기도 하지만 너무나 불안한 겁니다. 이게 몇 년 가겠냐는 거예요. 지금, 한류 열풍 이 따뜻한 봄날이 얼마나 계속되겠느냐는 겁니다. 굉장히 늦었어요. 

위행복 : 요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청년 취업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지금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 문제가 필요하다고 수렴이 돼 가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새로운 사회 환경, 경제환경에 맞는 이념을 만들고 사람들이 거기에 맞는 의식을 지녀야 하고, 또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되거든요. 그게 바로 성숙사회로 가는 길 아니겠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이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도 그런 비전을 가지고 인문사회 분야가 이념을 제시하고 제도를 만들어가고 사람들의 의식을 높여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정글이 될 거예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됩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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