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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혼종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
[디자인 파노라마] 혼종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
  • 최범
  • 승인 2022.02.17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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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⑤_최범 디자인 평론가 
현대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거실은 전통 한옥의 마루 구조가 현대화된 융합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종이미술관(왼쪽), 픽사베이(오른쪽)
현대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거실은 전통 한옥의 마루 구조가 현대화된 융합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종이미술관(왼쪽), 픽사베이(오른쪽)

문화의 국적?

“1980년대 초 생활문화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의식주’ 전반에 걸쳐 무국적 서구화에 물든 우리 일상을 바꾸는 게 목표였다.” (이기연, <한겨례> 2013년 4월 7일자 인터뷰)

19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 중에 생활미술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종의 민중판 디자인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유행했던 생활한복도 생활미술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앞의 발언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유명 생활한복 브랜드의 설립자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의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현대 한국인의 삶은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생활문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대 한국문화는 정말 무국적 서구화인가? 문화의 국적이란 무엇이며 고유한 생활문화란 무엇인가? 양복을 벗고 한복을 입어야 하나?

이와 관련해서는 많은 물음이 던져질 수 있는데, 아무튼 여기에 현대 한국인들의 의식에 일편이 담겨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국적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무국적의 삶을 버리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현실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의식이 잘못된 것일까. 어느 쪽이 잘못됐든 간에 현대 한국인의 의식이 심하게 분열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물론 급격한 근대화에 원인이 있을 터이다.

 

우리 것과 남의 것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그것도 변화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이 이렇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서구적인 외양과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왠지 지금 이 모습은 진정한 우리 것이 아니고 우리 것은 뭔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것과 남의 것을 나누는 의식 역시 뿌리 깊은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 것과 남의 것을 칼로 자르듯이 나눌 수 있을까. 문화는 끊임없이 흐르고 섞이는 것이다. 우리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남의 것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 문화의 과정이다.

이러한 문화의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무조건 좋다는 사고방식에 갇히게 된다. 이는 역으로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폐쇄적인 사회에서 살았는가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근대화를 하나의 문화 변용 과정으로 이해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그렇지 못하면 여전히 몸은 근대를 살지만 머리는 근대가 아닌, 아노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혼종의 풍경

근대화가 하나의 거대한 문명 전환의 과정인 만큼 삶의 풍경 또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백 년 전 한국 사회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디자인은 일단 그런 한국 근대의 외양을 비춰주지만 여기에 내면이 담겨 있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한국인의 외양과 내면 사이에는 커다란 불일치와 간극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학자 최봉영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잡종 지향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절충과 타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 인간에 의한 진보의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잡종화의 과정을 거친 신종의 탄생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잡종화의 과정에 뒤따르는 일정한 정도의 혼란과 무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성에 가치를 두는 실용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잡종 지향적 태도는 상대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다.”(최봉영, 『본과 보기 문화이론』)

그렇다. 한국의 근대화는 문화적 잡종화·혼종화 과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문화 융합이고 창조다. 나는 한국의 근대가 낳은 최고의 문화 산물로 부대찌개를 든다. 부대찌개야말로 전통과 근대의 창조적 융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도 부대찌개와 같이 뒤섞인 디자인, 혼종적인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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