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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와 시각] 신체에 관한 두 개의 해프닝
[문제와 시각] 신체에 관한 두 개의 해프닝
  • 교수신문
  • 승인 2001.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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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6 10:41:44
이종찬 / 아주대·의학사상

‘시골’ 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과 아내의 알몸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한 미술교사의 작업이 사회적 사건으로 바뀌게 되고 검찰과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신청됐으며, 마침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한국통신이 그의 홈페이지를 폐쇄시켜 버리더니 급기야 정든 직장으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하게 됐다. 거의 한달 동안 진행됐던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몸이 매우 첨예한 정치적인 아젠다가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술교사와 개그우먼의 ‘몸’
사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행하는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 무심해왔다. 일상 생활에서 이를 닦고, 몸을 씻고, 밥을 먹고, 소변과 대변을 볼 때, 우리들은 자신의 몸에 구체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한 노동 행위는 인간의 노동에서 가장 일차적이며 직접적인 노동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술교사의 자신의 몸에 대한 예술적 노동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의 예술 행위는 학생들에게 참으로 진솔한 미술 교육이 되는 것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부모회장이 말한 것처럼 교육과 미술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 사회에서 몸이 재현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 권력에 의해 철저히 지배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 권력은 몸이 자연스럽게 재현되는 방식보다도 상품화되고 규격화된 방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매스 미디어에 의해 전폭적으로 다루어진, 한 여성 개그우먼의 ‘엽기적인’ 지방흡입수술은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문화 권력에 의해 몸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자 가수의 가슴을 과대 포장하고 있는 브래지어 광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의 몸은 ‘육체적 자본’으로서 투자할 대상이다.
우리가 지금 다이어트라고 부르는 섭생술과 성형은 원래 그리스 문화와 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 일찍부터 몸을 관리하는 테크네(t럄hne)에 해당했다. 그런데, 몸이 상품화되고, 일상 생활이 의료화되면서 다이어트와 성형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생산하기 위한, 몸을 관리하는 기술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 사이에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는 다이어트와 성형은 몸의 상품화와 의료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교사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 기관들이 일제히 나섰던 데 반해, 개그우먼은 수술을 담당했던 성형외과 의사와 사적인 문제로 축소되고 있다. 왜 전자는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고, 후자는 사적인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미술교사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권력인 유교적 신체관에 정면으로 대항했기 때문이며, 개그우먼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이 시대의 상품 자본주의의 욕망을 충실히 대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든다면, 현행 호주제는 유교적 신체관을 문서화한 것이기에 호주제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이 시대의 문화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집단적으로 몸을 조직하라”
한국 사회는 지금 몸의 재현 방식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 가고 있다. 이번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은 한 개인의 몸의 재현 방식에 관한 것이다. 만일 이런 방식이 한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한 집단으로 확대된다면, 문제의 해결은 더욱 복잡해진다.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파룬궁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로 중국 사회처럼 몸의 재현 방식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인식했던 사회는 없었을 것이다. 연전에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탄압했던 것은 1억이나 넘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파룬궁을 통해 재현하고자 했던 몸의 테크닉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보다는, 파룬궁을 통해 중국인의 몸이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화되는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 견줄 바는 아직 못되지만, 미술 교사 사건을 통해서 보듯이, 한국 사회에서도 몸을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직은 산발적이며 파룬궁 집단처럼 조직적이지 못하다. 상품 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몸을 재현하는 방식이 변화되고 이런 변화를 통해 몸이 집단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면, 이에 기초한 문화 운동은 사회 운동에서 새로운 위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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