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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중심으로 두 번 태어나다..."미국인 이야기"
변방에서 중심으로 두 번 태어나다..."미국인 이야기"
  • 김재호
  • 승인 2022.02.0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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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미국인 이야기』 1~3| 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 이종인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1464쪽

어제의 미국을 알면 오늘의 세계가 보인다

250여 년 전, 대영 제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울려 퍼진 이 외침은 이후 세계사를 바꿔놓았다. 미국 혁명에서 싹튼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신은 이후 유럽을 뒤흔들고 프랑스 혁명을 가능케 했으며,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 영향 끼치고 있다.

 

 

『미국인 이야기』는 이처럼 제국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두 번 태어난 미국인의 탄생과 건국까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다. 이 책은 옥스퍼드 미국사의 첫 책인 『The Glorious Cause: The American Revolution 1763~1789』를 3권으로 분권해서 펴냈다. 

미국 혁명은 영국의 강압적인 세금 정책에 맞선 식민지의 경제적 저항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점차 식민지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위대한 대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확대된다. 이후 기나긴 토론과 협의 끝에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까지 장대한 역사를 저자는 시종일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유머와 재치를 곁들여 풀어간다.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는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알기 쉽게 이야기체로 소개하는 시리즈로, 미국 독립 전쟁부터 현대 미국까지 미국 역사 전반을 다룬다. 현재까지 출간된 12권 중 3권이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2권이 최종후보작에 선정됐을 정도로 엄밀한 역사적 연구 성과와 대중적 서사를 결합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미국인 이야기』 1~3의 원작인 『The Glorious Cause: The American Revolution 1763~1789』 역시 1983년도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견제 없는 권력은 모든 자유를 파괴한다

“인간은 선택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우연과 강압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 체제를 누군가에게 부여받아야만 하는 존재인가? 아메리카인들은 혁명 동안 스스로 정치의 질서와 사상을 수립했고, 이 답안은 이후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남았다.”

『미국인 이야기』 의 마지막 문장은 미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미국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 이미 민주주의를 최초로 실험한 나라이며, 미국 혁명은 민중이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선에 선 전쟁이었다. 

 

퀘백 원정에서 몽고메리 장군의 죽음. 대륙군의 한 축을 이끌던 몽고메리 장군은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했다. 그림=사회평론아카데미

독립 전쟁 당시 아메리카인들이 논쟁했던 대의 민주주의의 형태, 연방제, 중앙정부와 주 정부의 관계, 다수결 정치의 폐단, 인민의 범위와 자율성 등은 현재의 미국, 나아가서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는 사안들이다. 

이런 쟁점이 미국 혁명에서 어떻게 싹트고 전개됐는지, 로버트 미들코프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시적인 분석과 거시적인 서사의 우아하고 유려한 결합을 통해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우리는 250년 전 미국이 막 싹을 틔우던 시점의 갈등과 논쟁을 통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정치 체제의 문제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영웅이 있고, 『미국인 이야기』에는 민중이 있다

『미국인 이야기』 는 탁월한 이야기체 역사서라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로마인 이야기』 를 연상시킨다. 딱딱한 역사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명암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사건을 박진감 있게 끌고 간다는 이야기체 서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미국인 이야기』는 영웅 중심의 서사보다는 다수의 민중에 초점을 맞추고, 산개한 민중이 거대한 혁명 앞에서 어떻게 국가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한다. 스스로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던 그들은 영웅 뒤의 이름없는 군중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로버트 미들코프는 이처럼 미국 독립사에서 영웅 몇 명의 신화에 주목하기보다는, 입체적인 민중사를 복원하려 했다. 그는 전쟁을 이끈 사회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전쟁 속 이름 없는 병사부터 전쟁의 외곽에서 소외되었던 인디언과 여성, 흑인 노예들의 삶까지 모자이크처럼 집대성해 거대한 역사화를 완성했다. 

 

제국의 변방에서 신대륙의 중심으로, 두 번 태어난 사람들

『미국인 이야기』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인들이 제국의 변방인 식민지인이라는 지위를 거부하고 신대륙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다. 『미국인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식민지인들이 어떤 사회적, 심리적 변화를 겪었는지 다양한 사료와 사건을 통해 깊숙이 들여다본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한 것처럼, 독립 전 미국인들에게 대영제국은 ‘훌륭하고 고귀한 도자기 꽃병’ 같은 선망의 대상이자 세상의 중심이었다. 자신을 제국의 변방에 놓고 예속 관계를 받아들였던 미국인들은 자유와 독립을 자각하면서 비로소 신대륙의 중심이자 주인으로 자각한다. 

그 변화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영국이 아닌 미국 ‘내부의 적’이었다. 식민지에서 독립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미국인들은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는 불안과 다시 과거로 후퇴하기를 종용하는 내부의 적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집단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기까지 치열한 갈등이 존재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비전을 공유하고 타협을 끌어낸 리더들의 활약은 21세기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시 식민지 시기를 거쳤고, 세상의 변화에 뒤처졌다는 조바심 속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내부의 적과 끊임없이 싸워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보내는 서문에서 “20세기에 들어와 한국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 미국인이 그와 유사 체험을 한 역사가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가치 있는 사례가 되리라고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지도와 도판을 추가해 역사서를 읽는 재미를!

『미국인 이야기』는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미국사를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컬러 도판과 지도를 추가하여 한국판을 펴냈다. 국내 독자들에게 낯선 미국 지명 및 인물 정보를 지도와 컬로 도판에서 추가했다. 모든 지도에는 해당 지역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별도의 작은 지도를 함께 배치하는 등 국내 독자를 배려했다. 

특히 원작의 세밀한 전쟁 묘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각 군의 배치와 이동 동선을 표시한 전쟁 지도를 보강하여 독자에게 역사서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21세기의 우리는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미국의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법칙 안에서 세계는 움직이고 우리 역시 그 흐름 속에 있기에, 우리는 미국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 미국은 세계 중심이자 패권 국가라고 생각할 뿐 미국의 뿌리가 무엇이며, 그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탄생의 역사에는 관심이 적다. 

『미국인 이야기』는 미국의 독립혁명기, 그 보잘것없던 미국의 시작을 주목한다. 누가 미국인이고 그들은 어떻게 미국이라는 국가로 하나가 되었는가를 탁월한 역사적 식견과 흥미로운 이야기체 서사로 정리한 이 책은 국내 독자들에게 미국만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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