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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외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刊┃ 2005┃ 368쪽)
화제의 책: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외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刊┃ 2005┃ 368쪽)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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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비판은 오독에서 비롯”

토머스 쿤에 대해 국내에 알려진 건 고작 그가 1962년에 남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 한권뿐이다. 하지만 쿤 자신이 말년에 지지자나 비판자들 모두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음을 한탄한 것처럼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영미권에서도 아직 초보단계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사회학자 웨슬리 샤록과 철학자 루퍼트 리드가 쿤의 저서들을 조심스레 독파하고, 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대 논쟁들을 꼼꼼히 검토한 연구서를 내놓아 새로운 논쟁의 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책을 통해 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옹호하려는 샤록과 리드는 쿤에 대한 오해와 오독의 역사에 정공법으로 맞선다. 우선 1부에서 이들은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코페르니쿠스 혁명’, ‘흑체복사이론과 양자의 불연속성’을 세심히 비교·독해한다. 쿤은 과학사적 사례연구를 통해 자신의 과학철학적 입장을 세워나갔는데, 저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과학혁명의 구조’를 쿤의 과학사적 사례연구인 ‘코페르니쿠스 혁명’, ‘흑체복사이론과 양자의 불연속성’과 함께 읽음으로써 쿤 사상의 일관성을 파악해낸다. 

2부에서는 쿤의 저작들로부터 파생됐던 논쟁들을 재검토한다. 쿤과 포퍼의 대결, 파이어아벤트의 논쟁과 더불어 쿤의 ‘공약 불가능성’ 개념을 중심으로 그가 상대주의자였는가를 따지고, 나아가 그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방법론을 다른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살핀다. 포퍼와 파이어아벤트의 논쟁을 살핀 결과는 이렇다. 둘은 쿤이 과학활동의 내외맥락을 포함하고 있는 구조적 개념으로 상정한 ‘정상과학’ 개념을 과학자 개인차원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했을 뿐더러, 쿤이 ‘정상과학’ 내부에서 이뤄지는 모든 탐구과정을 총칭한 ‘퍼즐 풀이’를 과학적 활동의 극히 일부인 것으로 독해했다.

따라서 둘의 ‘쿤 읽기’는 ‘오독’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한 포퍼와 파이어아벤트가 주지주의에 치우쳤음을 비판한다. 다시 말해 둘은 과학이 이론과 실험의 뚜렷한 경계없이 서로 뒤엉키며 발전한다는 것과 당대 과학자들의 상호논의와 합의를 통해 발전된다는 것을 간과했으므로 과학발전의 구조를 거시적으로 파악하는데 실패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쿤의 입체적 읽기를 통해 두 저자는 ‘과학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쿤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입장을 생생히 재현해내며, 결론적으로 쿤의 과학철학 작업은 ‘과학철학을 과학이 절대적 진리의 담지자라는 영웅주의적 미망에서 구해내 과학사라는 튼튼한 토대위에 올려 놓으려는 치유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쿤에 대해 비판도 가한다. 쿤의 자연주의적 성향을 문제 삼는데, 즉 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일종의 과학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철학을 과학이라 생각했으며 이는 과학주의로 퇴행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쿤에 대한 저자들의 비판이 자신들이 쿤을 옹호한 논리에 비춰볼 때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는 향후 학계가 따져봐야 할 과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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