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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철학’…대화·에세이 철학을 꿈꾸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철학’…대화·에세이 철학을 꿈꾸며
  • 최승우
  • 승인 2022.01.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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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판』 이종철 지음│수류화계│461쪽

유년기때 위기철의 『논리야 놀자』를 읽은 적이 있다. 최초의 어린이 철학서적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는데 상당히 쉽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종철의 『철학과 비판』을 읽으며 『논리야 놀자』가 오버랩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의 대중화라는 목표에 이 책이 매우 훌륭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철학의 대중화는 왜 필요한가. 인간이 주체적으로 오롯이 서기 위함이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논리적이고 비판적이며 합리적인 자기만의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고 철학의 대중화는 우민화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소크라테스는 산파술로 대화의 철학을 지향했다. 그림=픽사베이

현재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지성계의 결과물은 학위와 논문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수많은 주석과 형식에 얽매여 자유로운 창발성이 억눌린다는 저자의 의견에 기자는 적극 동의한다. 논문은 각주를 비롯한 일정한 틀이 있으며 소위 말해 ‘논문어법’이 있다. 정확하고 간결하며 때로는 합리적일 수도 있으나 구어체의 생동감과 느낌을 전달하기는 어렵다. 심지어는 역설적으로 논문의 틀이 글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지성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종의 공고한 벽이 있고 아무래도 대중과 유리된 측면이 없지않다. 한국철학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이유다. 이종철의 『철학과 비판』은 이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책이다. 에세이로 철학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체계에서 생경한 방식이기도 하고 얼마든지 대중의 언어로도 고도의 철학을 설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고대철학의 시원은 대화였다. 소크라테스도 붓다도 논문을 쓰지 않았다. 논문은 근대의 양식이다. 이전까지 철학은 비유와 서사로 세상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해석해왔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종철의 시도를 ‘고대철학으로의 회귀’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에세이 철학은 고대철학으로의 회귀

앞서 말했듯 철학의 시초는 지금처럼 텍스트가 아니라 “말”이었다. 아테네 광장에서 열변하는 소크라테스가 그랬으며 산상수훈을 하는 예수, 흡사 시인을 방불케 하는 붓다의 숫타니파타까지 활어처럼 생동하는 언어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이종철의 책(부제: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위해)은 고대철학의 순수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원형에 다가가려는 시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세이 형식은 지성계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저평가된 장르다. 우리가 가진 편견 중에 하나는 논문은 전문적이며 무겁고 에세이는 가볍고 알맹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책 『철학과 비판』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명쾌하게 반박한다. 깊고 무겁고 난해하며 때로는 도발적인 주제들을 날카롭게 풀어나간다. 마치 ‘나는 구태여 논문 아니어도 이렇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책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물질 현상계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주제까지 건드린다. 물론 살짝 발만 담갔다는 인상을 받기는 하지만 에세이가 가진 잠재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효율성과 전달력의 측면에서 논문에 못지 않다는 가능성은 논문은 전문적이며 무겁고 에세이는 가볍고 알맹이가 없다는 기존의 편견에 펀치를 날리는 명쾌한 정타같은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저자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우리 시대에 철학이란 무엇인가. 당연하지만 철학도 굉장히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아주 단순하게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으로 구분할수도 있을테고 깊이 들어가면 언어철학이나 현상학까지 갈수도 있겠다. 기자 같은 문외한들은 철학을 대강 훑어볼수 있겠지만 제대로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우리보다 먼저 생각했던 천재들의 생각을 대리경험해보는 것이다. 인간사고 한계의 끝을 알고자한다면 반드시 철학을 겪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맛만 보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읽고 생각하는 순간 세계의 폭이 달라진다. 그야말로 인식의 확장인 것이다. 철학이야말로 지엽적이고 초라한 사고가 넓고 거대한 지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정통하며 본질적인 방법이다. 철학함을 위해서는 철학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문제는 철학만이 가진 특수한 폐해들인데 자칫 지적허영으로 빠지거나 독학자의 오만,본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사조를 읊어대는 장식품으로 전락했을 때이다.

혹은 사이비 이론을 정당화하는 껍데기가 될수도 있다. 도처에 즐비한 철학관들을 보라. 그들은 동양철학을 빙자하여 점이나 성명학 또는 주술로 이득을 취하지 않는가. 진정한 철학을 호도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철학을 팔아먹으며 어떠한 제지도 받지않고 심지어는 ‘철학이란 그런 것’으로 대중에게 인식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철학에 무관심하고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철학의 적은 또 있다. 철학을 ‘그들만의 언어’로 벽을 치는 자들. 지성계의 오만과 자폐적 세계관이다.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할 철학을 독식하는 독점권력이다. 산기슭에 흐르는 시냇물을 누구는 마시고 누구는 마실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되듯 철학 역시 나이,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학교수만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점상이나 육체노동자들도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철학은 만인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되도록 어렵고 특수한 전문용어보다는 누구나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과 언어로 통용되어야 한다. 이종철의 ‘철학과 비판’을 높게 평가한 이유가 그 것이다. 철학계에 만연한 외래어와 엉터리 번역투를 지양하고 순수하고 솔직한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철학함을 모르는 철학자들

글 도입 부분에 그는 자신의 저작을 ‘전문적인 논문과 거리가 있다’며 담담하게 술회한다. 그리고 철학은 관념에만 그치지 말고 반드시 현실에 기반을 해야 한다고 실천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찍이 칸트가 이론공부만 하는 학생들을 개탄하며 던진 ‘요즘 학생들은 철학공부를 열심히 할 뿐 철학함을 모른다’는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아포리즘일 것이다. 저자는 철학자인 동시에 사색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며 주제가 전방위적이다. 우리가 디디고 사는 현실에 대한 <현실과 사유>, 탈레스와 하녀의 일화를 통해 알아본 <배움과 탐구>, 독특한 글쓰기 철학이 담겨있는 <글쓰기와 인문학>, 동아시아 사상과 서구적 세계관을 훑어보는 <철학과 동서> 폭력과 죽음에 대한 짧은 에세이 <고통,폭력과 죽음>, 논리에 대한 사유 <분석과 비판>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 클라이막스 <한국사회탐구>로 귀결된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진실들을 지성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매력적이다. 한국지성사회에 던지는 일갈도 사뭇 흥미롭다. 이쯤 되면 에세이가 아니라 고발 르포르타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분명 이 책을 읽고 낯 뜨거워질 사람도 있었을 터. 필자가 읽고 느낀 저자 이종철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일종의 탄광 속 카나리아같은 존재다. 위험이 오기 전에 울부짖는, 정확히 말하면 탄광 속 산소농도에 민감한 카나리아 덕분에 광부들은 일찌감치 질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점차 대중과 유리되고 자폐적으로 잠식한, 심지어는 자가복제 단계에 접어든 지성계의 만행과 갑갑함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인 것이다. 자기 주장은 없고 외국철학을 베껴와 본 뜰뿐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지식인들을 보며 ‘왜 우리만의 주체적인 철학은 없냐’고 통탄해 마지않는다. 

‘모든 사고는 자유로워야 하며 권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당당하게 주체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관념과 사변철학을 뛰어넘어 우리가 발을 디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다.’ 아마도 『철학과 비판』의 내용을 축약한다면 이런 문장이 아닐까 싶다. 사대주의에 빠져 새로운 이론과 주의 주장만 수입하는 오퍼상으로 전락한 한국철학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킬 것 같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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