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보안분실의 인권보호센터로의 전환과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놀라운 사실(?)’로 밝혀진 것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김수근이 이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물론 건축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일부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하다.
어쨌든 이를 大 건축가의 ‘과오’나 ‘윤리’ 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그리 단순치만은 않다. 이를 따지려면 우선 당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김수근에게 설계를 요구했는가를 밝혀내야만 하고, 실제로 김수근이 건물의 용도를 얼마나 알고 설계했는가에 대한 확인 작업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남영동 보안분실 1976년 대간첩 수사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세워진 남영동 보안분실에는 지난 7월 27일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다. 과거에 민주인사들의 고문장소로 사용된 곳이 ‘인권’의 상징적 장소로 탈바꿈한 것. 현재 3개의 시민단체, 즉 인권수호위원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시민감사위원회가 모여 향후 보존과 활용방안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06년 연말 즈음에는 일반인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할 예정이다. |
건축계 일부에서는 남영동 보안분실을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박길룡 국민대 교수(건축설계)는 “김수근 작품이라 해서 모두 뛰어난 건 아니고 ‘졸작’도 있다. 보안분실이 김수근의 것으로 알려지지 않은 건 대표작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즉, 졸작에 속하는 남영동 보안분실을 새삼스레 ‘김수근의 건축’이라며 부각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 나아가 박 교수는 “건축가의 설계와 그것이 사용된 사회적 의미를 억지로 연결시키지 말 것”을 강조한다.
정인하 한양대 교수(건축사)도 건축설계자와 그것의 활용용도를 즉각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정 교수는 “김수근은 치안본부를 설계했던 건축가로 남영동 보안분실도 패키지로 설계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러나 치안본부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비난 받을 사항이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라고 본다. 정 교수는 또한 “실무자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건축가의 설계를 실무자가 변경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보안분실 내부를 확인하지 못한 정 교수는 “만일 문의 배치, 동선 등을 공간적으로 분석해볼 때 건축가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확신이 든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공희 국민대 교수(건축설계)도 “건축가가 그 용도를 알고 설계한 것이 증명이 된다면 이는 건축계에서 공론화해야 할 이슈다”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건축가는 故人이기에 당시의 관계자들을 통해 충분히 증언되고 증명되어야만 한다는 것.
건축평론가 전진삼 씨는 김수근과 당시 군부정권과의 결탁에서 이 문제를 접근한다. 사실 김수근은 당시 라이벌 급에 속했던 건축가 김중업과는 달리 군부정권과 가까운 사이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수근은 당시 남산의 타워호텔, 자유센터 빌등 등도 세웠고, 그 외 군부정권에 연루되어 만든 건축들이 다수다. 즉 김중업은 당시 정권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7~8년간 프랑스로 추방당한 것과 비교한다면, 김수근이 당시 정권의 수주를 많이 받은 것은 ‘동원’이라기보다는 ‘결탁’에 가깝다는 게 건축계의 반응이다. 따라서 전진삼 씨 역시 “도덕성과 윤리성의 문제로 접근하자면, 당시 정부의 일을 많이 한 김수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들은 보안분실 건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본다. 그러나 전 씨 역시 “이 문제는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 확립되지 않으면 향후 와전될 수 있는 문제”라며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