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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남북문화예술교류포럼 현장
[예술계풍경] 남북문화예술교류포럼 현장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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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6 10:36:43

아무리 완강한 갈라섬이라 해도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감성 앞에서는 대개 허물어지고 만다. 그만큼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겠지만, 때로 논리와 이성이 파고들지 못한 콘크리트장벽 같은 ‘차이’의 틈을 노래 한 소절, 시 한 수가 비집고 들어가기도 한다. 정치경제의 합일이 분단의 딱딱한 갑옷을 벗겨낸다면 문화예술 교류는 상처 입은 서로의 속살을 어루만져준다. 하루빨리 남북 문화예술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와 경제가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느라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문화예술계는 통일이라는 구체적인 명제 앞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지난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남북문화예술교류포럼’은 그 걸음 가운데 하나이다. 민예총 남북문화예술교류위원회와 한국연극협회가 함께 주최한 이 포럼에는 예술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남북문화예술교류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제를 맡은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극)는 남북한 문화예술교류의 ‘이벤트성’을 지적하면서 “홍보효과만을 노려 돈을 많이 들인 문화 교류, 경제적 논리에 따라 돈이 오가는 교류”는 진정한 문화교류라 할 수 없다면서, “궁극적인 예술교류란 감동의 교류이다. 자발적 감동 없는 문화 교류는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은 중앙대 교수(음악학) 역시 경제논리에 휘둘리는 문화예술교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제는 북한의 예술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직접 ‘체험’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면서, 북한 음악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음악교과과정의 개편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50년간 떨어져있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일방적인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학)는 “우리가 북한의 집단주의에 전율을 느끼듯이 북한은 남쪽의 개인주의에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일단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원 연극협회 회장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밖으로는 열려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틀 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오랜 반공이데올로기로 ‘자기검열’을 해온 정책을 비판하고, 또한 예술인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토론과 함께 진기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고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 당시 직접 극을 쓰고 연출까지 했다는 북한의 3대 혁명가극 ‘성황당’의 독회가 열린 것이다. 비록 실제 연극무대는 아니었지만 장두이씨를 비롯한 연극협회 회원들은 성심껏 극을 읽어나갔고, 북한 혁명가극의 독특한 예술성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이날 포럼은 앞으로 문화예술교류가 어떤 모습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토론자들은 앞으로의 남북 문화예술교류가 이벤트성 강한 일회용 행사나 정치경제의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이라는 본질에 맞닿은 것이어야 하며, 또한 통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노동은 교수의 표현대로 ‘체질적으로 굳어져버린 마음의 38선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문화예술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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