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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도피처로 삼은 ‘망상’…예술로 탄생하다
시인이 도피처로 삼은 ‘망상’…예술로 탄생하다
  • 김재호
  • 승인 2022.01.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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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 앙리 마티스 엮음·그림 |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48쪽

정신적 위기가 불러온 고독·무기력·침잠 속에서
시인이 꿈꾼 건 인간의 한계 벗어나는 이상향뿐

예술과 예술이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바로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와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만남이다. 최근 문예출판사를 통해 번역된 『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앙리 마티스가 직접 고르고 에칭화를 넣어 편집한 원전을 저본으로 삼았다. 책의 그림들은 단순하면서도 초현실적인 영감을 보여준다. ‘목신(Faune)’은 반인 반수의 신화 속 신이다. 목신은 숲과 목축을 맡은 신이다.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는 시인이자 번역가, 작가, 문학 평론가, 미술 평론가, 영어교사의 삶을 살았다. 사진=위키백과

말라르메는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인 보들레르(1821∼1867)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악의 꽃」(1857)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말라르메 역시 시작(詩作)을 하며 20세기 프랑스 문학계에 영향을 끼쳤다. 말라르메는 『목신의 오후』(1876), 『시집』(1899) 등 시집과 여러 번역서, 산문 등을 출간했다.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몽상은 / 슬픔의 향기에 묘하게 취했었네 / 후회도 환멸도 없다 해도 / 꿈이 꺾인 가슴에 슬픔의 향기가 남게 마련이니. / 낡은 포석만 내려다보며 배회하던 내 앞에 / 머리에 햇살 두르고, 그 거리에, / 그 저녁에, 환히 웃으며 네가 나타나 / 응석받이 아기였던 그 옛날 내 단잠 위로” - 「환영」 중에서. 이 시에는 묘령의 여인이 그림으로 함께 실려 있다. 어디선가 본듯한, 우리들 꿈에 종종 나타나는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의 여인은 우리를 헛된 희망으로 이끈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말라르메는 시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극도의 정신적 위기를 겪었고, 무로 돌아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라고 한다. ‘정신적인 죽음’에서 시는 말라르메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일까. 그는 20대에 비정규직 영어교사를 하면서 고독, 무기력, 침잠이 일상이었다. 말라르메게 친구에게 직접 쓴 편지에는 도피처가 ‘망상’뿐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에 담긴 시들은 상당히 몽환적이다. 

 

옮긴이인 최윤경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말라르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 교수는 “‘미친놈’으로 말라르메를 정의하고 싶어졌다”라고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 밝혔다. 지고지순한 시라는 칭호와 더불어 광기가 말라르메 작품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간절한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것이 그의 광기이다”라며 “삶과 죽음을, 지상과 천상 혹은 지하를, 흑과 백을 넘나드는 역동성이다”라고 적었다. 

말라르메의 시집은 미완성이었다. 그런데 화가 마티스가 그림을 통해 입체화해냈다. 일종의 승화이다. 마티스의 그림에는 얼굴과 몸이 많다. 특히 여인의 아름다운 육체들이 곡선으로 드러난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들의 신체가 몽상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아닐까.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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