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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 이주영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재반론: 이주영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 김인호 목원대
  • 승인 2005.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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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돌론은 냉전론의 연장…자유라는 이름의 이분법적 발상

▲필자: 목원대 사학과 교수(한국사) ©
이주영 교수의 반론을 보면서 다시금 ‘역사란 무엇이고 무엇을 고민하는 것이 역사학자인지’를 생각하며 심호흡을 한다. 지난번 반론에서 ‘양민학살’ 등 몇 가지 ‘史實’에 대한 이 교수의 오해를 논박하지 않은 것은 사실 확인을 떠나 개인주의 연구 풍토가 만연한 현실에서 국사에 대한 이만큼의 ‘고민’을 담아준 데 대한 젊은 연구자로서 감사의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 위에 이 교수의 해명에 대한 나름의 소감을 말한다.

첫째, 이 교수는 우리 통일사학이 구호와 명분에 편향된 만큼이나 남․북간 역사 이해도 편향적이라고 하면서 ‘민간인 학살’을 예로 들어 일방적으로 북한의 비리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남한의 오류만 들추어낸다고 했다.

하지만 ‘균형’이란 남과 북의 역사를 1대 1로 지면 나누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학살’은 남북이 서로 죽이고 했던 절반씩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실제 사실에서 ‘민간인 학살’은 개전 초 정부가 보도연맹 가입자를 대대적으로 학살하자 이에 인민군 진주 이후 피해자들이 보복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 점에서 연구가 남한지역에 집중된 것이다. 그동안 반공지상주의 아래서 학살은 ‘무조건 인민군이 한 짓’이라는 왜곡이 심히 자행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연구를 마치 ‘북한 손들어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젊은 역사학자로서 참기 힘든 고통이다.

둘째, 이 교수는 문명충돌 혹은 문명사적으로 남북문제를 파악할 때 남북은 각기 대륙과 해양문화권 영향 아래 놓임으로써 어쩔 수 없이 국가 단위의 개별 연구가 불가피하며,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면서 통일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전통 문화의 유산이 해양 자본주의 시스템과 얼마나 강하게 결합하고 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정치나 기업 문화 속의 位階는 고사하고 韓流가 보여주는 우리 문화의 국제적 가치, ‘史劇’에 열광하는 국민정서, 長幼有序와 감성적이고 인화적 인간관계 중시 등 우리 문화에는 ‘문화충돌’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문화복합적 측면이 많다.

▲지난호에 실린 이주영 교수의 반론 © 교수신문

따라서 이 교수의 ‘문명론’은 두고 봐야겠지만 대륙문명권에 잔존한 북측과 해양문명화한 남측의 문명충돌이라는 도식이 ‘해양(=자유민주) 대 대륙(=전체주의)’라는 기존의 二分論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문화의 역사성(축적)과 복합성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대륙과 해양의 ‘문화충돌’에만 주목하여 우리 현실을 일도양단하는 도식은 위험한 발상이다.

아울러 같이 할 수 있다는 고민에서 다르다는 현실을 지적해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남북의 실상이 다르니(국가주의적 민족주의)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통일에 대한 역사적 고민은 ‘여망’일 뿐이라는 인식은 아무리 ‘1국사 유용론’의 변형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종합적 맥락을 거부하는 비역사이다. 이미 젊은 국사연구자들은 통일을 단순히 감성적 추구 대상이나 신념과 기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한국 사람들이 실체적으로 가지는 고민’의 일부이자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보고 분석하고 있다.

셋째, 이 교수는 일체의 전체주의적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려던 초창기 고전적 자유주의를 말했으며, 그것을 이념적으로 계승한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과 같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이 있었고, 그러한 경향이 해방정국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친미 보수적 관념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 부분은 이 교수 논의의 핵심인데도 ‘우리 역사에 대한 평가’인지 ‘자신이 창도할 역사 연구방법론’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이 교수가 자신의 친미적 학풍과 반공주의 성과에 대한 고마움을 냉전적 이분법적 세계관이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 대응하여 자유와 자유방임, 대한민국 정체성 등의 수사를 동원하여 설파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한다.

또한 자유주의 중에서 유독 미국 공화당과 영국 보수당의 자유주의만을 한국의 자유주의 전통이며, 창도하려는 자유주의 사학의 토양이라는 주장은 이것이 ‘학문적’인가를 넘어서 대단히 恣意的이다. 즉, 이것은 거꾸로 이 교수가 원로학자들이 고민한 민족론과 서구적 민족주의를 세심히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관념과 여망의 산물로 비판한 방식과도 다르다.

넷째, 이 교수는 통일사학을 은폐된 사회주의자라고 매도한 적이 없으며, 기왕의 통일사학은 자신을 과학화할 이데올로기가 없거나 있어도 근대성이니 자주화니 하는 추상적 명제에 경도되어 사회재건의 프로그램과 결합하지 못한 명분과 구호로 끝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원 발표문 중 ‘그’ 부분을 아무리 다시 보아도 분명히 통일사학=사회주의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일단 그 진위를 불문하고 통일사학은 ‘낮은 단계 연방제’ 문제 혹은 통일 교과서 문제, 남북 경제 협력 제도화와 문화교류 및 역사왜곡 공동보조 등 그 실제 내용을 구체화할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다. 아울러 보다 높은 수준에서 통일 국가의 政體나 시장구조 혹은 사회 통합기구, 통일 법률 등도 남북한이 합심해야 가능한 고민으로 여긴다.  

또한 조동걸 교수가 우리 국사에서 이론이 부재하다는 발언을 자신의 논리에 차용하면서 민족주의의 불명확한 실체를 비판했다. 그리고 원로학자들의 글에서 ‘선지자적 사명’ 등과 같은 ‘秘敎’적 언사가 있었다고 하고, ‘죽은 자의 유산’이란 언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조동걸 교수의 비판과 원로 교수의 ‘사명’ 발언은 사실 과학적 분석시각이 결여된 채 ‘남한산성의 벽돌’ 숫자만 세고 있는 당대 국사학의 강고한 실증주의 학풍에 대한 지적이었다. 어쩌면 원로교수들의 비판 안에는 ‘친일이론’의 변종인 ‘고토회복론’이나 민족지상주의적 언술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 교수의 인용은 주객이 전도된 근거이다.

물론 이주영 교수의 지적에서 우리 국사학이 자국사를 연구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요소 즉, 자칫 과잉의 현실정치 참여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는 구호중심의 이념화 혹은 ‘역사지식의 정치수단화’ 그리고 사실의 ‘과잉’ 해석 등에 주의를 환기했다. 이 점은 늘 국사학자들이 주의해야 할 훌륭한 지적이고 필자도 마음에 새길 것이다.

그러나 ‘고증과 실증으로 복귀’라는 주장과 반하여 이 교수의 ‘사실’에 대한 불확실한 이해와 편견은 차치하고라도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점를 드러낸다. 그것은 중요한 논거마다 소수 권력의 성공을 찬미하는 엘리트(실증)주의와 냉전적 반공주의가 역사학이라는 명찰에 ‘자유와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위장 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 역사를 ‘문화충돌’이라는 수사로서 一刀兩斷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통일․민중사학은 누구나 ‘사실(史實)’을 자기 구미에 맞춰 함부로 개념화하려는 관념론적 개인주의 사학도 아니지만, 통일국가라는 강제된 목적에 따른 통제된 이념의 사학도 아니다. 아울러 민중만의 역사를 말하는 당파성의 학문도 아니고, 민족주의에 편향된 기대와 열정만의 역사도 아니며, 어떤 큰 가르침에 신들린 추종자의 구호(秘敎)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실체적 현실 문제’에 대하여 학자들이 논의에 나서고 그러한 고민을 자유롭고 다원적인 방식으로 교환한 결과 범주적으로 혹은 공리적으로 공감한 산물이다. 그렇기에 통일․민중사학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실제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는 그 이름값에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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