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의 발행인인 러플린 총장과 편집주간을 맡은 정재승 교수. © |
‘크로스로드’의 창간소식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원고료다. 2백자 원고지 1장당 5만원을 주는데, 20매만 써도 1백만원인 것이다. 국내 최고의 필자대접을 통해 최고 수준의 글을 싣겠다는 것이 ‘크로스로드’의 창간정신이다. 러플린 총장은 ‘발간사’에서 “과학을 다루고 있지만 문학을 얘기하듯 친근하며 잔잔한 여운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사이트 구성을 보면 ‘Feature Articles’(3편), ‘Essay'(2편), 'Science Fiction'(1편), 'Cartoon'(1편) 등으로 간단하며 수록글도 7편으로 단촐하다. 하지만 각 글들이 담고 있는 깊이는 만만치 않다.
‘끈이론’의 과학적 매력에 대해 학설사적으로 규명해 올라오는 이수종 서울대 교수의 글, '영재교육‘에 대해 수학이론과 결합시켜 서술한 박경미 홍익대 교수의 글, 아인슈타인의 천재적 발상이 ‘경계에 대한 탐구’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직업환경에서 찾은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글은 과학이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역사나 철학, 생활현실 같은 콘텐츠를 능숙하게 끌어들인 고급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에서 발행하는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사라지지 않을 10대 기술’에 대해 논하고, 그 목록을 한국의 과학문화를 표본으로 해서 대체하는 정재승 교수의 글쓰기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물리학계의 원로인 김제완 前 서울대 교수가 23명의 교수 중 11명이 노벨상을 받은 콜럼비아대 물리학과로 유학 가서 공부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글은 소중한 경험기록으로 다가온다. 다만 과학자들의 글에서 매번 나타나는 과학에 대한 가치부여 지향성은 모든 필자들의 글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가령 이들의 글에는 모두 ‘常識’과 ‘創意’가 서로 상반된 지적 능력으로 전제돼 있다. 물론 창의성이 과학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식에 호응하는 사유를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가령 우리는 실생활에서 상식의 역사적 기원이나 논리구조를 알고서 놀라게 되는 체험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수족관에서 거북이 빨리 움직이는 것을 보고 “거북이가 성큼성큼 간다”라고 쓴 아이의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북이가 엉금엉금 긴다는 일반성을 깨닫는 과정도 -그것이 암기에 의한것이 아니라면- 사유능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휴머니즘이 되려면, 상식이라는 인류사의 지혜를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현재 과학담론이 소비되는 양상을 볼 때 "상식이 뒤집히는 인식론적 충격효과"에 너무 쉽사리 기대고 있다는 점과 연관시켜 지적될 부분일 것이다.
‘크로스로드’는 독자와 필자가 논쟁과 토론을 벌이는 인터랙티브한 사이트를 지향한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대중주의를 피해나가면서도 지식인들이 골고루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크로스워드’ 창간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