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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박이 길어 올린 시간…혼밥도 수라상 같은 ‘독상’
두레박이 길어 올린 시간…혼밥도 수라상 같은 ‘독상’
  • 김재호
  • 승인 2022.01.07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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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시간 길어 올리기』(샘터 | 384쪽) 쓴 이경재 북일학원 이사장

흘러가는 시간을 그림과 음악에 담아 아름답게 길어 올리기
사람과 장소는 언어·이야기와 노래로 엮여 사색의 길로 이끈다

“재미와 알맹이가 있는 글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집필했다.” 최근 『시간 길어 올리기』를 출간한 이경재 학교법인 북일학원 이사장은 지난 27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2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책의 토대가 되는 글들은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렸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오롯이 담기 위해 단어들을 채집하며 사전 작업을 펼친 것이다. 이 저자는 빼곡히 적힌 비망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책에는 읽는 재미, 삶에 대한 작은 성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경재 저자는 ‘시간의 우물’에 미술, 음악, 이야기라는 두레박을 던져 이 책을 썼다. 시간은 찰나이지만 여기선 영원일 수 있다. 사진=김재호

책 제목은 ‘시간 길어 올리기’인데, 아무래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회한을 뜻하는 듯하다. 이 저자는 “‘절망’도 흘러간다”라며 “세월을 그림이나 음악으로 만든다면 나는 모두 아름다우리라 상상한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라는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서 조금이라도 길어올리려고 했다. 그게 바로 단어와 문장이고, 이야기의 힘으로 다시 탄생했다. 특히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이 저자는 책에 수많은 노래를 이야기와 QR코드로 녹여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에도 책과 그림들이 놓여 있었다. 

『시간 길어 올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3장 ‘시간 길어 올리기’ 중 ‘나이 듦…, 그리고…’이었다. 여기서 이 저자는 정물과 해골을 함께 보여주며 인생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바니타스(Vanitas)」 미술, 루이즈 애런슨 캘리포니아대(UCSF) 의과대학 교수의 『나이듦에 관하여』(비잉, 2020) 등을 통해 죽음 앞 인간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 또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기형도 시집의 제목 ‘잎 속의 검은 잎’을 지으며 해설한 대목도 인용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육체가 죽을 때,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없어졌을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이 저자는 “사람들은 아직 두 사람(김현, 기형도)을 잊지 않고 있다. 아직 그들은 한 번만 죽은 것”라고 적었다.   

 

서울대 교수 그만둔 한 풍수학자

책에는 유독 ‘구도’ 혹은 ‘구도자’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만큼 이 저자가 ‘구도’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불교의 선승들이야말로 구도자”라며 “흔들림없이, 초지일관 한 분야를 평생 파고들며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장인들은 구도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 저자는 중요 무형 문화재 100호 장주원(1937∼) 옥장(玉匠), 알프레드 브렌델(1931∼) 피아니스트, 전 서울대 교수였던 최창조 풍수학자 등을 책에서 소개했다. 장 옥장은 스승과 교과서가 없었으나 타이완 고궁 박물원을 수없이 드나들며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브렌델은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피아노에 정진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둔다. 본인이 피아노를 칠 만큼 쳤기 때문이다. 최 풍수학자는 서울대 교수직이 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어 그만두고 바람과 물을 연구했다. 그 결과 『한국 자생 풍수의 기원, 도선』(2016) 등 23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저자는 최 풍수학자의 ‘탐구력, 독서력, 집필력’을 높이샀다. 

 

‘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없이 혼란하기만 한 세상에서 이 저자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내가 헤매고 있는 것이구나, 라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 방황하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서 헤쳐나갈 수 있다. 여기서 사색이 중요하다.” 이 책은 꼭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더라도,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같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한 저자가 삶아온 궤적, 그 자체가 문화이고, 메시지이다. 그래서 이 저자는 더욱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기자는 이 책을 통해 「Back to black」(에이미 와인하우스, 2006)라는 노래를 발견해 즐거워졌다. 

“혼밥은 생각을 뒤집으면 뉘앙스가 전혀 달라지는 표현, 독상(獨床)이 된다” 혼밥·혼술·비대면이 일상이 된 요즘,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또 다른 메시지를 던져준다. 쓸쓸한 혼밥이 아니라 임금이 받았던 수라상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 저자는 “혼밥은 고독의 의미와도 이어지지만 여유와 음미와 사유도 담아진다”라며 “난 오늘도 별 약속이 없어 혼밥을 즐기러 나간다. 나는 독상 받는 자유인이다”라고 적었다. 산해진미가 아니더라도 “질리지 않는 슴슴한 맛은 요즘은 일부러 찾는 건강 밥상”이라는 뜻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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