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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1)
교수의 착각(1)
  • 박구용
  • 승인 2022.01.04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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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교수로서 20년, 혹시 착각의 세월은 아니었을까? 책은 많이 쌓였다. 한 때 책은 신이었다. 고상한 물신이 아니다. 학문을 향한 열정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먼만큼 불안이 컸던 시절의 물신이다. 친해진 친구나 학생은 대부분 ‘이 많은 책을 다 읽었어요?’ 묻는다. 책장의 책을 죄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책보다는 더 많이 읽었다고 말한다. 대부분 놀란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다. 

책을 읽었다고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해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다고 사용이나 응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있는 사용이나 이용이 적절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했을까? 나만 이롭게 한 것은 아닐까? 세상에 득보다 실이 많은 지식을 활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무수히 많은 착각이 있었을 것이다. <교수신문> ‘딸깍발이’에 나와 같이 대학교수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착각에 대해서 몇 차례 글을 써보려 한다. 나를 포함한 교수들의 첫 번째 착각은 교수의 역할이다. 수많은 교수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교육자보다 연구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다. 더구나 우수 연구자가 우수 교육자인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대학에선 교육이 우선이다. 연구가 우선이라면 연구소로 가야한다. 최선은 연구와 교육을 다 잘하는 것이다. 둘 다 잘할 수 없다면 교육만이라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교수다. 학생들이 바라본 대학교육의 문제는 무엇일까?    

학생① “학생이 대학 입장에서 고객인지 상품인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느낍니다.” ② “대학이 일종의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에 걸린 듯합니다. 변화와 혁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새로운 학과를 개설하고 관련 시설과 프로젝트를 새로 구축하는 데 열심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학의 심장이라고 할 강의는 바뀌지 않습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강의 내용과 방법의 변화를 느낄 수 없습니다.” ③ “강의실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교수가 많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날 선 말들을 내뱉은 교수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④ “융합형 인재를 키운다는 선전은 많은데, 막상 다른 학과 수업은 듣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⑤ “대학을 다니면서 배우는 게 뭔지 잘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다니는 것 같았어요.” ⑥ “강의의 질이 가장 불만스럽습니다. 자료나 교재를 그냥 읽는 수준의 수업, 가십거리 수준의 단편지식 전달 수업, 교수의 감정이나 취향을 쏟아 붓는 수업, 중등과정 학원수준 수업이 너무 많습니다.”

대학의 주체가 교수와 학생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제1의 주체는 학생이다. 학생 없는 대학은 소멸한다. 학생이 있으면 교수는 반드시 온다. 교수는 제2의 주체다. 그런데 정작 대학의 주체는 학생도 교수도 아닌듯하다. 교육부의 행정 관료들이 대학의 강의를 규율하고 평가하고 증진시키는 메타 주체가 된지 오래다. 물론 그 책임은 관료가 아닌 교수들에게 있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학생이 강의실의 주체로 등극하는 것이다. 대학의 수업은 학생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실제는 반대다. 학생이 공부하는 수업보다 교수만 공부하는 수업이 많다. 최악의 수업은 교수가 자신이 공부한 지식을 장기 자랑하듯 열정적으로 쏟아내면서 학생들은 지식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경우다. 명 강의, 우수 강의는 어쩌면 학생들이 고른 (좋은 혹은 나쁜) 상품이지 않을까? 학생의 착각일까, 교수의 착각일까?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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