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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나오는 것만 관심” … 어려운 수업 ‘閉講’
“시험 나오는 것만 관심” … 어려운 수업 ‘閉講’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5.10.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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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진단_ 수학교수 50명, 수학교육을 말하다

대학생 數學실력 이대로 안된다  잊을만 하면 언론을 장식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수학실력 이야기다. 미분, 적분도 모르는 학생들을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는 푸념에서부터,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강의 외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다양하다. 교수신문은 이에 일선 대학 교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현장에서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향후 대책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해보기 위해서다./편집자주

현재 몇몇분의 대학에서는 2000년 이후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학시험을 봐, 통과못한 사람을 따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두고 있다. 기초학문 능력의 저하가 대학제도를 바꿀 정도다. 이같은 제도는 실제로 큰 효과를 거둔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일부 상위권 대학에서만 실시되고 있어 전반적인 수학실력 저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학생들의 수학실력 저하 현상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돼 점점 심화되는 추세라고 교수들은 진단한다. 이는 주로 대학 1학년 공통과목인 미적분학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영원 서울대 교수(복소)는 “고등학교에서 미적분학을 전혀 배우지 않고 진학한 학생이 제법 있으며, 배워서 진학한 학생들 역시 너무 약하게 배워 과정을 쫓아가기 힘들다”라고 전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1994년 시행된 수학능력고사와 계열간의 교차지원 가능, 그리고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계승혁 서울대 교수(함수해석)는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수능시험에서 자연계열 학생들이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른 영역에 비해 별도의 선행학습이 필요해서 까다로운 ‘미분과 적분’은, 수능점수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당연히 고등학생들에게 외면된다는 게 계 교수의 진단.

또한 수능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고등학교 수학교육도 수학실력 저하의 큰 원인이다. 김인강 서울대 교수(미분기하학)는 최근의 강의실 분위기를 말하며 “수업시간에 증명을 많이 하면 집중이 떨어지고, 예제를 좋아하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전한다. 이어 김 교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빨리 답을 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객관식 문제를 푸는 수능위주의 학습법이 수학실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기형 카이스트 교수(위상수학)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고 교수는 “예전에는 원리 위주로 설명을 많이 했는데, 근래에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관심을 갖는다”며, “수시시험을 보면 선택형 문제만 접해서인지 문제를 제대로 기술하며 풀기보다 요령으로 풀이하는 학생이 많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구자경 카이스트 교수(수론) 역시 “예전에 적잖게 도전하고 풀었던 문제를 요즘에는 답을 쓰긴 하지만 논증이 뒷받침되기 보다 대충 미뤄짐작하는 편”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석진 서울대 교수(대수학)는 “고교과정이 완화되는 대신 창의력과 사고력이 길러진다고 하지만 이는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50분에 30문제를 풀기보다 2시간에 10문제라도 서술형으로 풀고, 쉬운 문제도 반드시 풀이과정을 써야 수학”이라고 강조했다. 단시간에 객관식 위주의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은 사고의 깊이도 기르지 못한다는 것.

앞에서 지적된 ‘완화된 교과과정 개편’, ‘변별력 없는 객관식 위주의 입시’는 대학 내부의 문제로 확산되고 나아가 이공계의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한다. 위인숙 고려대 교수(확률론)는 “대학에서 기초교육을 하다보면 전공교육, 특히 이공계 교육이 소홀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전한다. 서론만 하고 본론은 못한다는 얘기다. 학부제를 시행하면서 어려운 강의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최부림 고려대 교수(복소)는 “전공강의를 듣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어 어려운 강의가 거의 폐강되거나 그나마 있는 수업도 질이 떨어진다”라며 씁쓸한 분위기를 전한다.

학부의 이런 현상이 5~6년이 지나면서 대학원에도 당연히 타격을 가한다. 강석진 서울대 교수는 “대학원 학생들이 예전 학부의 고학년보다 못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한다.

대부분 교수들이 수학실력 저하현상이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해외에서 여러 학자들을 만나보니 같은 고민을 하더라는 것이다. 하승열 서울대 교수(응용수학)는 “상대적으로 컴퓨터 등 미디어의 발달이 손으로 문제를 풀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인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런 중층적인 악조건에서 수학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교수들은 중등교과과정 개편과 본고사 실시, 그리고 대학내 자구책 찾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우영 서울대 교수(해석학)는 “수학실력 저하는 제도 탓이다. 제도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보완돼야 한다”라며 앞으로 있을 교육과정 개편에 기대를 걸었다. 이어 김광익 포항공대 교수(수론)는 “중등교육 과정을 기획할 때 대학 교수들과 함께 해야 중등교육과 연결돼 대학교과정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중등교과정 개편시에 대학의 실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포항공대의 한 교수는 “커리큘럼이 여유로운 것은 좋지만, 수준에 따른 교육방법의 다양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못하는 학생에게는 흥미위주의 동기 유발을, 잘하는 학생에게는 고도의 학습기회를 줘야 전반적인 수학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본고사 등의 학생선발의 자율권 문제도 해법 중의 하나다. 5지선다형 객관식인 수능의 미비점을 본고사로 보완한다는 의미다. 현재 풀이과정을 못보게 교육부에서 일체 막고 있다는 점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서울대의 모 교수는 “대학생들의 실력저하를 운운하는 현상 이면에는 입시정책을 흔들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의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심영선 포항공대 교수(편미분방정식)는 “못 배우고 진학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적호기심을 자극하여 수업분위기가 좋다”라며,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교수들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문제도 제기된다. 김창호 서울대 교수(대수기하학)는 “학생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게 노력한 대학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라고 반문한다. 중등과정 이후 교육은 대학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동우 서울대 교수(수치해석)는 “교육과정과 입시정책을 바꿔도 현 추세를 변화시키기는 힘들다”라며 미디어가 끼치는 영향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조교, 과제, 강의 외 시간을 활용해 하드트레이닝 시키면 충분히 적응한다”라고 전한다. 예전보다 훨씬 바쁘게 공부시키면서, 커리큘럼을 모색해가자는 것.

하지만 이같은 시각에 적지 않은 교수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조교가 충분히 확보되는 것도 아닌 실정에서, 과제 체크나 수업시간 외에 보강을 한다면 교수평가에 크게 작용하는 SCI급 논문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 사생활을 접으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도움주신 분들 : 김영욱, 위인숙, 최부림, 황윤성(이상 고려대 수학과 교수) 강명주, 계승혁, 김도한, 김영원, 김인강, 김창호, 김혁, 박종일, 변순식, 신동우, 이우영, 정자아, 조영현, 지동표, 천정희, 최재경, 하승열, 한종규(이상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고형준, 기하서, 김정훈, 김효범, 민경찬, 박용문, 박은재, 이승철, 이준복, 이지현(이상 연세대 수학과 교수) 고기형, 구자경, 김동수, 김진홍, 서동엽, 진교택(이상 카이스트 수학과 교수) 곽진호, 권용훈, 김광익, 박종국, 박지훈, 변재형, 심영선, 최성섭, 홍승표(이상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김완세, 김희식, 장호종(이상 한양대 수학과 교수) (총 50명, 학교·성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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