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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대학
대선과 대학
  • 신희선
  • 승인 2021.12.27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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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위 내용은 사실과 다름 없음.’ 이력서에 최종 서명하기 전에 쓰는 문구다. 이력서에 기술한 학력사항, 경력사항, 수상실적 등이 모두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의미다. 이력서 내용을 입증하는 각종 증명서도 함께 제출한다. 이는 일종의 ‘상식’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이 겸임교수 지원을 위해 대학에 제출한 경력들이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학에 아는 분들 있으면 한번 물어보라”며 “전체적으로” 별문제가 아니라는 듯 말하다가, 가짜경력 논란이 계속 이어지자 사과를 했다. 대선 길목에서 여야 간 공방이 진흙탕 싸움처럼 진행중인 가운데 소환된 한국 대학의 민낯을 돌아본다.

표절과 위조에 주목하는 이유는 ‘공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논문 표절은 고위직에 발탁된 인사나 유명세를 타는 인물들에게서 빈번하게 발견될 만큼 표절 공화국이다. 클릭 몇 번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복사해 붙여놓기 쉬운 세상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표절에 대한 부끄러움과 연구 윤리를 덮고 있다. 비단 겸임교수 임용을 위해 허위이력서를 제출했던 것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논란과 저작권 침해 문제로 시끄러웠다. 남의 것을 도용한 것이기에 열심히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경우와 동일하게 인정될 수 없다. 

표절을 미국에서는 범죄로 본다. 미국 대학은 오래 전부터 표절에 대해 무관용 정책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학문적 정직성’에 입각해 연구 부정행위가 발각되면 마치 법정의 재판과정과 유사하게 표절 정도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심할 경우 퇴학을 시키기도 하고 졸업 이후에라도 표절이 들통 나면 학위를 취소하는 등 엄정하게 다룬다. 학문탐구 과정에서 연구윤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임을 글쓰기 교육에서 중요하게 강조한다. 이는 미국 대학사회의 질 높은 연구 성과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 분위기는 어떠한가? 돈과 권력이 아카데미즘을 포섭하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의 전통과 권위가 실종되었다. 최고 학력과 교수 경력으로 포장하길 원하는 욕망이 충족될 수 있는 장이 되어버렸다. 학벌 만능주의 사회에서 학위장사를 하는 시장처럼, 학부생보다 못한 실력의 대학원생을 뽑고 편법 수업과 부실한 논문 심사로 석·박사 학위를 남발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를 따져 대학에 힘을 실어줄 인물들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하고 졸업장을 내주기도 한다. 연구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포함된 경우가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족벌 사학의 비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경영 못지않게 친인척이 쉽게 교수가 되어 대학 사회를 좌지우지해도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다. 

대선정국이 대학을 흔들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각 캠프는 대권후보에게 줄을 대려는 폴리페서들로 넘쳐난다. 무슨 배경인지, 짜깁기한 논문을 통과시킨 허술한 심사 과정이 용인되었고 허위이력을 제출했어도 겸임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점에서 대학의 반성이 필요하다. 대학이 함량미달 논문에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위조문서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이 교수 자리를 내 준 또 다른 부끄러운 실체다. 학생교육보다 정치권에 줄을 대고 논문표절과 문서위조로 시끄러운 상황은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망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의 대학이 과연 이러한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힘이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불거진 모든 의혹을 ‘보도 기획설’, ‘정치공작’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모양이다. 비전은 없고 비방만 있다. 정권 획득에 대한 욕망만 있지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한다. 명분이 서지 않으면 말이 올바르지 못하고, 말이 올바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이 대학다워야 하고 교수가 교수다워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영부인은 영부인다워야 한다. 공자가 말한 정명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상식이다. 공정의 잣대가 입장에 따라 달라지고 국민의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며, MZ세대들이 말하는 ‘정치혐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우울한 세밑이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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