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스럽게 부사 사전』 yeondoo 엮음 | yeondoo | 272쪽
타인을 위한 말은 관계적인 인간 존재를 표현
부사 ‘시방’이 알려주는 지금·주관적 시간의 뜻
동시대에 한 공간에서 살아도 말이 다르면 개념화가 다르다는 의미이며, 똑같은 것을 보고 들었어도 개념화하는 언어가 다르면 경험하는 내용 자체가 달라진다.
조르주 귀스도르프는 실존 현상학적 관점에서 언어철학을 소개한 『파롤』에서 인간과 동물을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특성은 ‘말’이라고 했다. 동물은 신호만 알뿐 기호는 알지 못한다. 귀스도르프는 논어에서 자로가 공자에게 국정을 맡길 때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 부분을 길게 인용했다. 공자는 훌륭한 질서는 전적으로 올바른 언어에 달려있으므로 이름과 사실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먼저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름이 바를 때 말이 사리에 맞고, 말이 사리에 맞을 때 일이 바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귀스도르프는 공자의 명실일치(名實一致) 학설은 인간 파롤의 초월적 효력을 생생하게 밝혀주었다고 해석했다. 귀스도르프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언어 차원에서 혁명이었다. 세속 랑그로 성서는 번역되었고 신자들은 각자의 랑그로 신의 파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라틴어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중세 크리스트교는 파열되었다. 어떤 말이 어떻게 유통되는가에 따라 시대의 격변이 초래되기도 한다.
귀스도르프는 “내가 말을 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보다는 타자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파롤은 이음줄 같은 것이다. 언어는 사이에 있는 것이며 관계적인 인간 존재를 표현한다. 타자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언어는 그의 언어여야 하기 때문에 타자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오직 자신이 언어만 우선권을 차지하려 할 때 타자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고로 원활한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은 충실한 경청일 것이다.
『부사스럽게 부사 사전』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30인이 각각 하나의 부사로 각자가 살아가는 세계를 성찰한 글을 모았다. 주형일 비평가는 ‘시방’이라는 부사에서 ‘필연적 죽음과 생생한 삶’을 떠올렸다. 시방은 말하는 바로 이 때를 의미하는 부사다. 말하는 이 때가 있으니 인간은 지나갔거나 다가오는 저 때를 생각하곤 한다. 비평가는 시간의 중요한 속성으로 ‘움직임과 변화, 되돌릴 수 없음’을 언급한 후, 시간을 내적조건으로 가진 인간에게 삶이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종착역으로 두고 쉼 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는 시방 죽음은 삶을 압도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도히 흘러가는 크로노스로서의 객관적 시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카이로스로서의 주관적 시간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시방을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석 일본문화연구자는 오늘날처럼 ‘빠르게’, ‘급작스레’ 움직이는 이들이 늘어난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미완성의 나를 포옹하는 행위로서 ‘멍하게’ 있을 필요성을 제안했다. ‘바람만바람만’은 어린 아이가 뒤뚱거리는 걸음에서 내달리기를 시작할 즈음에 엄마가 그 아이의 뒤를 ‘바람만바람만’ 따라간다고 할 때 사용하는 부사다. ‘생게망게’는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다’는 의미의 부사다.
말은 말하는 자의 세계관을 담는다. 말의 논리구조는 선택과 체험에 의해 조성된다. 말의 품격과 한계는 각자 살고 있는 세계의 품격과 한계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