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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들 북치고 한나라당 장구치고
총장들 북치고 한나라당 장구치고
  • 교수신문
  • 승인 2001.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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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7 13:23:05
차일피일 지연되면서 개정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사립학교법. 이대로 9월 정기국회까지 미뤄진다면 또 다시 물 건너 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 두 부분이 있다. 그 하나는 극히 말을 아껴온 사립대 총장들이 사학법인과 일맥상통한 논리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개정 논의에 뛰어든 점이다. 두 번째 주목되는 부분은 한나라당의 돌발적인 입장변화. 지금껏 여당의 개정논의에 이렇다할 의견을 내놓지 못하던 한나라당이 총장들의 법 개정반대 의견을 수용하고, 개정 반대근거로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립대 총장들의 개정 반대 목소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개운치 않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첫 번째는 총장들의 발언이 사학법인의 목소리와 여러모로 닮았다는 점이다. 국회 교육위가 파행을 맞던 지난 20일,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총장 일동’ 명의로 “건전한 사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광고가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그런데 그 내용은 지난해 11월 한국사학법인연합회가 ‘건전 사학수호를 위한 전국 사학인의 결의’를 통해 밝힌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양쪽 모두 “법 개정이 사학의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다”는 사학법인의 주장을 총장들은 “일부 비리사학 부조리를 다수 건전사학의 문제로 확대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바꿔 들고 나왔다. 심지어 총장들은 교원의 임면권을 되돌려 주겠다는 법안의 내용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광고까지 게재하고 있지만 어느 대학 총장도 선뜻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사립대총장협의회란 이름만이 떠돌 뿐이다. 현재 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은 장상 이화여대 총장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화여대는 “법개정에 반대하는 보도자료나 광고를 낸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관계자도 “사립대 총장들간에 법개정에 관한 토론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서 반대 성명을 채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곧 총장들이 전면에 나서 반대의사를 피력할 경우 나타날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전체 명의를 빌고 있다는 얘기이다.

세 번째 의문은 수 천 만원이 들어가는 신문광고비를 총장들이 어디서 충당했느냐는 부분이다. 사실 빠듯한 살림형편에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고, 정부지원을 구걸하다시피 하고 있는 사립대의 형편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광고비를 선뜻 쾌척하는 대학을 찾기란 어렵다. 그것이 교비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비용은 어디서 충당되고 있는 것인가. 십시일반으로 거뒀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사립대총장협의회는 현재 명목상의 단체이다. 이점에서 사학법인과 총장들과의 결탁의 개연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법의 개정 과정에서 총장들이 직접 나서 의견을 개진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총장의 지위는 법인의 이해와 교수와 학생들의 여론을 적절히 수렴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같이 전면에 나서 완강하게 개정을 반대한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반대 여론은 어디까지나 사학법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 논의에서는 입장이 바뀌었다. 총장들이 앞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사학법인은 오히려 잠잠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문은 제쳐두고서라도 법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총장들의 논리는 대학구성원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 5월, 일부 사립대 총장들은 ‘고등교육법 및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문제점 분석’이란 내부 문건을 만들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총장들이 민주당의 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것은 ‘교수회의 법정기구화’다. 교협을 법정기구로 인정할 경우 대학이 곧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다수의 대학에서 교협은 이미 공식적 지위만 없을 뿐 실질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총장들이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결국 민주성과 공공성을 핵심으로 하는 대학운영의 원칙을 저버리고, 권위주의적 대학운영방식을 고집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현재 총장들의 의견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정치권의 여론몰이로 적절히 이용되고 있다. 한나라당 현승일 의원은 “대학운영 책임자인 총장들이 반대하는 법개정을 굳이 강행할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점에서 학계는 떳떳하게 개정토론에 나서지 않고 뒷전에서 남의 눈치나 보면서 기침만 하는 총장들의 그릇된 태도가 곧바로 사학운영의 암울한 앞날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김미선기자 whwoor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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